불공정에 맞서 하도급업체에 ‘파업권’ 주는 방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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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불공정에 맞서 하도급업체에 ‘파업권’ 주는 방안은 불공정한 시장질서를 공정하게 재편하기 위해 ‘힘의 균형’을

기사입력2016-07-18 10:28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농협하나로유통 등 4개 대형마트는 납품업체에 대해 불공정행위를 한 임직원을 해고하기로 하는 등의 자율적 개선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번 개선안은 대형마트들이 ▲부당감액 ▲부당반품 ▲납품업체 종업원 부당사용 등 대규모유통업법 위반행위로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이 부과된 데에 따른 후속조치다.(홈플러스 220억원, 이마트10억원, 롯데마트 8억5000만원)

개선안에 따르면 4개 대형마트는 임직원들이 법을 위반한 경우 관련자 모두에게 정직·해고 등 중징계를 내리도록 했다. 납품대금을 부당하게 감액하는 관행을 막기 위해 공정거래시스템도 구축하기로 했다. 공정거래시스템이 구축되면 광고비·물류비·판촉비 등은 사전약정에 따라 전산시스템에 등록된 건만 공제된다. 담당자는 시스템에서 산출된 건과 금액 외에 임의적으로 공제금을 감액할 수 없다. 반품의 경우에도 법상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전산시스템에 등록하도록 했다. 반품기한을 초과하거나, 담당자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른 반품 소지를 없앤 것이다. 납품업체 종업원을 부당하게 사용하는 문제 역시 전수 점검을 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대형마트와 하도급업체 중간에서 또 다른 갑질의 당사자인 유통벤더의 불공정행위 개선안도 마련했다.

이번 개선안은 공정위가 적발한 불공정행위 유형별 대책이라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개선안에 담긴 취지와 목적에 맞게 개선안이 운영되는가는 시간을 두고 지켜 볼 일이다.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이번 개선안이 하도급 관계의 본질에 주목하지 못해 대형유통업체의 불공정행위를 근절시킬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하도급 관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불공정행위는 대형유통업체가 ‘시장에서의 우월적 지위’가 평등해야 할 거래관계에 개입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다. 숨을 곳이 전혀 없는 좁은 링에 플라이급 선수와 헤비급 선수를 동시에 올린 데 따른 구조적인 문제다. 해법 중 하나는 헤비급 선수의 체중을 줄이는 방법이고, 대규모유통업법상 각종 규제가 여기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미 헤비급에 이른 체중을 플라이급으로 줄인다는 것 자체도 어렵고, 선택할 수 있는 감량법도 한계가 있다. 대형유통업체의 불공정행위 개선을 위해 정부가 숱한 대책을 연이어 내놨음에도 근절은 고사하고, 개선조차 잘 이뤄지지 않는 이유다.

하도급 거래 관계에서 헤비급의 중량을 빼자는 것, 규제라는 것은 그 성질상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또 다른 해법, 플라이급 선수가 경쟁력을 갖도록 시장의 성격 자체를 바꾸는 적극적인 방법은 어떤가. 플라이급 선수가 단기간 내에 몸을 만들 수 없다면 다수의 플라이급 선수를 링에 올려, 헤비급 선수와 싸우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상대적 약자인 근로자가 연대란 우산 아래서 사용자와 대등한 힘을 갖도록 하는 노사관계 개념을 하도급 거래 관계에 도입할 수 있다. 산업·업종별, 지역별이든 중소·영세 납품업체가 연대해 대형유통업체와 납품단가를 포함 거래 관계 전반에 대해 대등하게 협상할 수 있는 힘을 가지면 된다. 필요한 경우 납품가격 보장을 위해 하도급업체들의 ‘파업’도 가능하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할 수 있다. 고질적이고 관행화된 대형유통업체들의 불공정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불공정한 시장의 질서와 관행을 공정하게 재편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대규모 유통업체와 중소·영세 납품업체가 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양자간의 힘의 균형을 맞춰주는 것이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에 대한 공정한 조정, 정부가 할 일이고 경제민주화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