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분단에 뿌리 둔 반목과 갈등을 사진에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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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전쟁과 분단에 뿌리 둔 반목과 갈등을 사진에 담다 [장정민 미술평론가의 포토 리뷰] ⑧노순택 작가

기사입력2016-08-18 14:10

장정민 객원 기자 (viumgraphy@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노순택은 한국 사회의 표피로 곪아 터져 나오는 갈등과 폭력의 현장에 카메라를 향해 왔다. <분단의 향기>, <얄읏한 공>, <붉은 틀>, <비상국가>, <좋은, 살인>, <망각기계> 등의 작업까지 그가 누빈 현장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므로 제한된 지면에서 그의 모든 작업들을 살펴보기보다는, 그의 작업을 가로지르고 있는 공통된 문제의식과 사진가로서 그가 지닌 독특한 정체성 그리고 사진에 대한 그의 태도 등을 살펴보기로 한다.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주최 ‘올해의 작가상’ 선정

앞서 언급했듯 노순택은 반목과 갈등의 현장을 기록해왔다. 겉으로 드러난 갈등의 원인은 제각기 다르지만, 이 모든 대립들은 전쟁과 분단이 보여줬던 구도에 그 뿌리를 둔다는 점에서 하나이다. 탈이념의 시대라 정의되고 있는 오늘날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많은 사회 문제들의 대립 양상을 이념의 대립으로 수렴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유 없이 희생당한 아이들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행위를 닳아빠진 이념의 대립으로 몰고 가는 현실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the strAnge ball, 2004~2007, 80 x 110cm, 45 x 60cm_1

실제로 노순택은 여전히 우리 시대는 이념의 차이가 가장 중요한 갈등을 빚어낸다고 말했으며, 그의 작업은 이를 충실히 반영해 왔다. 평택 대추리에서 작업한 <얄읏한 공>, 전쟁 무기에 대해 작업한 <좋은, 살인>,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되돌아 본 <망각기계>, 연평도 포격 사건을 다룬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까지 그의 사진은 종전 아닌 휴전 상태의 사회가 보여주는 폭력적 국면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특히 민주주의라는 이념의 수호를 위해 반민주적인 억압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지점들을 그의 사진은 명징하게 재현했다.

그의 카메라가 재현하는 현장들을 생각할 때 그는 사진가로서 독특한 정체성을 가진다. 사실 이런 현장을 기록하는 사진가는 대개 언론을 통한 보도를 목적으로 한다. 다시 말해 이들은 사진을 통한 사건의 전달을 위해 대중매체와 공모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방식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노순택 또한 대중매체와 인터넷 등에 자신의 사진을 노출시킨다는 점에서 이들과 얼마간 닮아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그의 사진은 미술관이나 갤러리라는 예술 제도 내에서도 보다 활발히 유통된다. 그가 이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지점이다.

특히 그는 지난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주최 ‘올해의 작가상’에 선정됨으로써 작가로서 확실한 자리를 굳히기도 했다. 요컨대 그는 현장에서 촬영한 사진에 오롯이 하나의 ‘임무’만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것은 때로 기록사진의 목적에 봉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예술사진으로 전시장 벽면을 채우기도 한다.

망각기계, Forgetting Machines I_류영선, 2011, Archival pigment print, 140 x 100cm (each)

그가 만약 단순히 현장을 기록하는 데에만 집중했다면, 그의 사진은 이와 같은 다양한 공명을 동시에 울리지 못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해 그는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 오던 상징과 은유를 활용하고, 피사체의 선택과 배제를 적절히 혼합하기도 하며, 텍스트를 사진과 병치하기도”(박평종, ‘매혹하는 사진’, 포토넷, 2011, 74쪽) 하면서 사진에 다성성(多聲性)을 부여했다. 대추리 곳곳에서 쉽게 목격되는 군사시설 레이돔을 ‘공’에 은유하여 분단이 야기한 폭력의 현재성을 이야기했던 <얄읏한 공>은 바로 기록과 예술을 넘나드는 그의 사진세계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예라 할 수 있다.

망각하고 싶은 기억, 기억하고 싶은 이미지

하지만 그 무엇보다 그를 다른 현장 사진가들과 구분 지었던 것은 사진 곳곳에 숨어 있는 사진에 대한 메타 비평적 목소리였다. 일찍이 그는 사진 찍는 사람을 가리키는 은어인 ‘찍새’에 착안해 <조류도감> 연작을 선보였다. 그는 이 작업에서 사진을 촬영하는 다양한 행태들을 재현함으로써 서로 다른 목적에 따라 사진이 생산되며, 결국 그 목적이 사진의 의미를 결정한다는 것을 드러냈다.

무능한 풍경의 젊은 뱀 #P-XIV010601, 2014, 1 Pigment on fine art paper, 100x147cm

또한 <망각기계>에서 그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된 이들의 훼손된 영정사진을 사진으로 재현함으로써 ‘기억’이 아닌 ‘망각’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사진을 통해 나타나는지 보여주었다. 더 나아가 이 작업은 복제와 유포가 자유로운 사진의 특성이 망각하고싶은 기억을 기억하고 싶은 이미지 더미 아래 묻어버릴 수도 있음을 드러냈다. 비교적 최근 작업인 <무능한 풍경의 젊은 뱀> 또한 현실의 일부만을 교활하게 잘라내 보여주는 사진의 측면을 드러냄으로써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한 그의 태도를 여실히 드러내기도 했다.

노순택은 폭력으로 점철된 처절하고 잔혹한 풍경을 담은 사진이 대단한 작품으로 여겨지는 경험 앞에서 사진이 얼마나 초라하게 대단하냐고 자조한다. 하지만 예술이란 겉으로 드러나는 심미성을 탐닉하는 것이라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의 구조를 드러내는 사명을 다할 때 가장 예술적이다.[장정민 한국사진문화연구소 연구원,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