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갑질’에 맞선 中企 집단교섭 인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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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대기업 ‘갑질’에 맞선 中企 집단교섭 인정하자 불공정 거래 관행 근절위해 사적자치·계약자유원칙 일부 제한

기사입력2016-09-12 14:23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하도급 거래 ‘관행’ 중 하나인 ‘납품단가 후려치기’는 사실상 고유명사가 됐다. 공정거래위원회 등 단속기관에 걸리지만 않으면 불법임에도 ‘관행’이란 이유로 묵인된다. 원사업자인 대기업은 사적 계약에 따른 당연한 권리로 여긴다. 반면 수급사업자인 중소기업은 그나마 거래처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위안삼아 저항하지 않는다.

불법적인 관행이 판치는 하도급 시장에선 납품단가를 후려치지 않는 기업만 손해를 본다. 탈법·위법을 하는 탐욕스런 대기업에만 이익을 보장하는 현재의 하도급 시장에선 법을 지킬 아무런 유인이 없다. 어차피 공정거래위원회가 수백 또는 수천개가 넘는 대기업의 불법행위를 모두 들여다 볼 수 없을테니 말이다. 걸리면 재수없다고 치부하고 과징금 몇푼내면 될 일이고, 안걸리면 늘 하던대로 중소기업을 후려치면 된다.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포함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갑질은 수직·종속적인 하도급 관계, 그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실에선 수직·종속적인 거래·계약관계임에도 공정거래법 등 일부를 제외하곤 양자간의 관계를 대등·수평적 거래·계약관계로 보기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대기업의 갑질을 근본적으로 척결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이 대기업과의 관계에서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방법 이외의 다른 방법은 없다.

노동시장에서 사용자에 비해 상대적 약자인 근로자들은 헌법상 보장된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통해 현실에서 사용자와 대등한 협상력을 보장받고 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간 수직·종속적인 하도급 시장에서 노동3권과 유사한 권리를 중소기업에 보장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중소기업에 대한 보호·육성의무를 명시한 헌법 제123조 제3항을 정부가 사문화시키지 않을 요량이라면.

중소기업이 대기업과의 대등한 교섭을 통해 적정한 납품단가 보장 등 여타 불공정한 거래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들이 협동조합 등 자신들의 이익단체를 조직해 집단적인 협상에 나설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행 공정거래법 제19조는 중소기업 협동조합이 대기업과 납품단가 조정 등 집단교섭을 행하는 것을 부당 공동행위(담합행위)로 규정하고, 집단교섭 과정에서 납품중단 등의 행위를 하는 경우 형사처벌한다. 따라서 공정거래법 제19조를 개정해 중소기업이 대기업과의 집단교섭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한다.

입법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독일의 경우 중소기업 카르텔은 구매공동체와 판매공동체가 있는데, 중소기업은 납품 등에 있어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동으로 대기업에 납품함으로써 협상력을 높이고 있다.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1990년대 이미 약 1500개 이상의 업체가 180여건의 공동행위에 대해 중소기업 카르텔로 승인받았다.

중소기업에 노동3권과 유사한 권리를 어느 수준까지 보장할 것인가는 입법정책의 문제다. 중소기업과 대기업간 지금과 같은 불공정한 거래 관행이 더 이상 지속된다면 우리사회의 미래는 없다. 대기업의 곳간에 쌓인 돈이 중소기업으로 내려와 중소기업의 저임금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소비시장은 살아나지 않는다. 대·중소기업간 불공정 거래 관행을 포함 극단적인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는 사적자치, 계약자유원칙은 일정 부분 제한돼야 한다.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 성장과 적정한 소득분배,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방지,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헌법 제119조 제2항). 사적자치, 계약자유원칙만 고집해선 대·중기업간 관행화된 불공정 거래는 더 악화될 뿐이다. 사적자치, 계약자유란 이름으로 대·중소기업간 불공정한 거래 관행을 계속 묵인할 것인가, 아니면 대·중소기업간 불공정 거래 관행의 근절을 위해 헌법상 보장된 경제민주화를 위해 규제·조정권을 발동한 것인가, 정부의 선택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