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주 제공 교통수단만 産災…헌재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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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정보 ㅣ 인사노무 사업주 제공 교통수단만 産災…헌재 “불평등” 산재보상법 심판대상조항 위헌…출퇴근 도보·대중교통 사고도 산재

기사입력2016-11-16 17:16

박현진 기자 (kpla123@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늦어도 내년 말까지는 출퇴근 수단이 도보든, 자가용이나 대중교통이든 관계없이 출퇴근 행위 중 발생한 사고는 모두 산업재해보험이 적용된다. 지금까지는 사업주가 출퇴근용으로 제공한 교통수단으로 출퇴근하다 발생한 사고 등 ‘사업주의 지배관리’가 인정되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산업재해보상을 인정했다. 다만 공무원의 경우 일반 근로자와 달리 사업주의 지배관리와 상관없이 출퇴근 중 재해를 당한 경우 ‘공무원연금법’에 따라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늦어도 내년 말까지는 출퇴근 수단이 도보든, 자가용이나 대중교통이든 관계없이 출퇴근 행위 중 발생한 사고는 모두 산업재해보험이 적용된다. ©중기이코노미

헌법재판소는 지난 9월29일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등 사업주의 지배관리 아래 출퇴근하다가 발생한 사고만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1항 제1호 다목(이하 심판대상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내렸다(헌재 2016.9.29. 선고, 2014헌바244결정). 헌재의 이번 결정은 지난 2013년 동일한 내용의 사건에 대한 합헌 결정(헌재 2013.9.26. 선고, 2012헌가16결정)을 3년만에 뒤집은 것이다.

다만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을 단순위헌으로 선고하는 경우 출퇴근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최소한의 법적 근거마저도 상실되는 부당한 법적 공백상태와 혼란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2017년 12월31일을 시한으로 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불합치 판정에 따라 국회는 헌재가 시한으로 제시한 내년 말까지는 심판대상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심판대상조항이 국회에서 개정되기 전까지 출퇴근 중 사고가 산재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여전히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근로자가 입증해야 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연 평균 680여건의 출퇴근 사고에 대해 산재 신청이 있었지만 ‘사업주의 지배관리’ 문턱을 넘지 못해 10건 중 6건(66.5%)이 산재로 인정받지 못했다.

◇사건개요=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전기기사로 근무하던 근로자 A는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다가 넘어지면서 버스 뒷바퀴에 왼손이 깔려 왼손 둘째·셋째 손가락이 부러지는 상처를 입었다. A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정한 요양급여를 신청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요양불승인처분을 통지했다.

이에 A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법원에 요양불승인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소송 계속 중 불승인처분의 근거가 된 심판대상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했으나 기각됐다. 법원의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 기각에 대해 A는 헌법재판소에 심판대상조항과 산업보험법 시행령 제29조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의 쟁점=심판대상조항에 따르면,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이나 그에 준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등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서 출퇴근 중 발생한 사고만 업무상 재해다. 또 다른 심판대상인 산재보험법 시행령 제29조(출퇴근 중의 사고)는 앞서 언급한 심판청구대상인 산재보험법 제37조 제1항 제1호 다목을 구체화한 조항이다. 이에 대해 헌재는 대통령령인 산재보험법 시행령 제29조는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따라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각하했다.(헌법재판소 2001.4.26. 선고, 99헌바108 등 결정)

산재보험 가입대상은 산재보험법에 따라 근로자 개인이 아닌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장이다. 사업장이 산재보험 의무가입 대상이기 때문에 사업장의 산재보험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업무상 재해를 당한 근로자라면 누구나 산재보험법에서 정한 산재보상 신청권을 보유한다.

그런데 심판대상조항은 근로자가 사업주의 지배관리 아래 출퇴근하던 중 발생한 사고만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사업주 지배관리’ 존재 여부에 따라 업무상 재해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근로자간 차별이 발생하는 것이다. 더욱이 사용자로부터 교통수단을 제공받은 근로자(이하 혜택근로자)는 산재가 인정되고, 교통수단을 제공받지 못한 근로자(이하 비혜택근로자)는 산재마저 부정되는 역차별 상황이 벌어진다.

헌재 결정문에 따르면 쟁점이 됐던 부분은 ▲혜택근로자와 비혜택근로자간 차별이 평등의 원칙에 반한 것인가 여부 ▲통상적인 이동경로의 측면에서 보면 출장과 출퇴근은 그 성격이 동일함에도 출장만 산재로 인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해석인가 여부 ▲출퇴근으로까지 산재인정을 확대하는 것이 산재보험 재정상황 등을 고려할 때 합리적이고 타당한 방향인가 여부 등 3가지다.

헌법재판소는 “대법원은 출장행위 중 발생한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데, 이러한 출장행위도 이동방법이나 경로 선택이 근로자에게 맡겨져 있다는 점에서 통상의 출퇴근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고 밝혔다.<이미지 출처=이미지투데이>

◇평등의 원칙에 반한 것인가=다수의견은 “도보나 자기소유 교통수단 또는 대중 교통수단 등을 이용하여 출퇴근하는 비혜택근로자는 사업주가 제공하거나 그에 준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출퇴근하는 혜택근로자와 같은 근로자인데도, 사업주의 지배관리 아래에 있다고 볼 수 없는 통상적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하던 중에 발생한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차별취급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근로자가 통제할 수 없는 ‘사업주의 지배

관리’ 유무를 이유로 업무상 재해 인정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은 ‘합리적인’ 차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반면 반대의견(소수의견)은 “비혜택근로자가 출퇴근 재해에 대하여 산재보험법상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불이익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불이익은 개별 사업장의 근로조건 및 복지수준 등의 차이에서 오는 불가피한 결과일 뿐이고, 심판대상조항 자체의 위헌적인 요소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비혜택근로자가 받는 결과적인 불이익은 개별 사업장의 차이, 특성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일 뿐 심판대상조항이 평등의 원칙에 반하기 때문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헌재의 결론은 혜택근로자와 비혜택근로자간 이같은 차별이 “합리적 이유 없이 비혜택근로자에게 경제적 불이익을 주어 자의적으로 차별하는 것”이어서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며 위헌으로 판단했다.

◇출장만 산재로 인정하는 것이 합리적인가=다수의견은 출퇴근 중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야 하는 논거에 대해 “근로자의 출퇴근 행위는 업무의 전 단계로서 업무와 밀접·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사실상 사업주가 정한 출퇴근 시각과 근무지에 기속된다”며 “대법원은 출장행위 중 발생한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데, 이러한 출장행위도 이동방법이나 경로 선택이 근로자에게 맡겨져 있다는 점에서 통상의 출퇴근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고 밝혔다.

반면 소수의견은 출장의 경우에도 “사업주의 지시위반, 사적 행위, 정상경로 이탈 등의 사유가 있으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지 않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양자를 구별하여 보상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밝혔다.

헌재의 결론은 “오늘날 산재보험제도는 산업재해로부터 피해근로자와 그 가족의 생활을 보장하는 기능이 중요해졌다”며 “통상의 출퇴근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여 근로자를 보호해 주는 것이 산재보험의 생활보장적 성격에 부합한다”며 양자를 구별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산재보험 재정상황 등을 고려할 때 타당한가=반대의견은 “비혜택근로자의 보호를 위하여 통상의 출퇴근 재해를 업무상 재해에 포함하는 것이 바람직하더라도 이것은 국가가 앞으로 산재보험의 재정상황, 사업주와 근로자의 사회적 합의, 전체적인 사회보장의 수준 등을 고려하여 단계적으로 입법을 통하여 해결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타당한 방안”이라고 밝혔다. 비혜택근로자가 받는 불이익은 심판대상조항이 갖고 있는 위헌적 요소가 아닌 개별 사업장의 특수한 조건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산재보험법 개정을 통해 해결하라는 얘기다.

반면 다수의견은 “통상의 출퇴근 재해를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경우 산재보험 재정상황이 악화되거나 사업주 부담 보험료가 인상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고 전제하고 “이는 보상이 가능한 출퇴근 재해의 범위를 합리적 경로와 방법에 따른 출퇴근행위 중 발생한 재해로 한정하는 방법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반면에 통상의 출퇴근 중 재해를 입은 비혜택근로자는 가해자를 상대로 불법행위 책임을 물어도 대부분 입증의 어려움 등으로 충분한 구제를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고, 심판대상조항으로 초래되는 비혜택근로자와 그 가족의 정신적·신체적 혹은 경제적 불이익은 매우 중대하다”고 덧붙였다. 보험재정 악화 등 산재인정 확대에 따른 어려움은 출퇴근 재해에 대한 업무상 재해 인정 범위를 조정하는 등의 합리적인 방안이 있는 반면 업무상 재해 불인정에 따른 비혜택근로자의 불이익은 매우 중대하기 때문에 비교형량의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다.

이외 찬성의견은 출퇴근 재해를 산업재해에 포함하도록 한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일본의 입법례를 위헌 결정의 이유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