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중앙회의 ‘노동 유연성 확보’ 요구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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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중기중앙회의 ‘노동 유연성 확보’ 요구 틀렸다 재계단체 흉내, 재벌논리 그대로…공정한 ‘차별적 조치’ 요구했어야

기사입력2017-05-11 16:34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중소기업중앙회를 포함, 중소기업단체장협의회의 단체장들은 11일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의 제1호 업무지시가 일자리위원회 구성일 정도로 일자리 문제는 중요하고 긴급한 과제”라며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대기업에서 중소기업 중심으로 경제구조를 개혁하고, 노동 유연성을 확보하며, 신산업 육성 등을 통한 성장동력을 확충하고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수단이 아니더라도, 대기업 중심의 수직계열화된 산업생태계의 전면적인 개편은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수급기업(중소기업)은 원청 대기업의 관행화된 불공정거래로 적정한 이윤을 보장받지 못함으로써 자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자본·역량 자체를 축적하기 어렵다. 물량과 낮은 인건비를 기반으로 생존하기 때문에 중소기업의 근로조건은 열악하고, 저임금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중소기업 중심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중기단체들의 주장은 ‘재벌대기업만의 경제’가 아닌 ‘국민경제’를 나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지난 5년간 신규 창출한 100개의 일자리 가운데 89개가 중소기업에서 만들어진 반면 대기업은 11개만을 만드는데 그쳤다(2016 중소기업 위상지표).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굴레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때만이 중소기업도 살고, 근로자와 가계도 살 수 있다.

일자리 창출과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신산업 육성도 필요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불필요하거나 과잉된 규제를 개선함으로써 중소기업에 활력을 불어 넣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

여기까지다. 중기단체장들이 새정부에 요구한 ‘노동의 유연성 확보’는 아니다. 일자리 창출과 노동의 유연성 확보가 어떤 인과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이번 탄핵대선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반복했던 억지주장에 중기단체장들이 동조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정규직을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을 바꾸면, 비정규직 사용도 줄어들고 기업들이 쉽게 고용할 수 있다는 것이 홍 후보의 궤변이다.

중소기업 고용은 ‘경직’돼 있기보다 ‘유연’하다. 사람이 없어 공장을 가동하지 못하고, 이러한 인력난으로 국내 체류 외국인근로자가 200만명이다. 중소기업에 필요한 것은 고용 ‘유연’이 아니라 임금을 올리고, 근로조건을 개선해서 고용이 ‘경직’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일이다.<이미지 출처=이미지투데이>

재벌대기업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옛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노동의 유연성을 주장하는 것은 전경련만의 타당한 이유가 있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에 비해 임금과 근로조건이 좋아, 한번 입사하면 자발적인 사유로 근로자들이 퇴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또 대기업의 근로자들은 노동조합의 울타리로 인해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돼 있다. 대기업 사용자 입장에선 고용이 ‘경직’돼 있다고 불평할 수 있다.

중소기업의 현실은 완전히 다르다. 고용은 ‘경직’돼 있기보다 ‘유연’하다. 중소기업에 사람이 없어 공장을 가동하지 못한다는 것은 통계치 인용이 필요없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중소기업 인력난으로 국내 체류 외국인근로자가 200만명이다. 중소기업에 필요한 것은 고용 ‘유연’이 아니라 임금을 올리고, 근로조건을 개선해서 고용이 ‘경직’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일이다. 어설프게 ‘재계단체’ 흉내를 내며, 재벌대기업이 주장하는 논리를 그대로 옮겨서는 중기단체도 죽고, 중소기업도 도태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중소기업 중심의 산업생태계를 만들겠다고 했고, 대기업의 불공정 갑질을 뿌리뽑겠다는 공약도 제시했다. 중기단체장들이 새정부에 요구해야 할 것은 ‘노동의 유연성 확보’가 아니라 대기업에 대한 ‘차별적 조치’였다. 생산과정에서 대기업에 편중된 과실이 중소기업에 분배될 수 있는 공정한 시장을 비상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빨리 만들어 달라고 해야 했다.

문 대통령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납품단가 공정화를 위해 최저임금 인상 등 노무비 변동시 하도급 조정요구권을 인정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대기업 눈치를 보지 않고 활용할 수 있는 납품단가 조정요구권을 하루라도 빨리 도입하라고 요구해야 했다. 조정요구권을 통해 납품단가를 인상하고, 중소기업에 돈이 들어갈 수 있는 법과 제도를 중기단체와 함께 만들자고 촉구했어야 했다.

문 대통령은 대기업과의 공정교섭을 위해 중소기업 단체의 교섭력을 강화하겠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이에 중기단체들은 노동3권에 준하는 중소기업의 단결권·단체교섭권 나아가 단체행동권을 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하는 것이 먼저다. 300만 중소기업이 산업·업종·지역별 연합단체를 조직, 대기업과 대등한 협상을 통해 생산의 정당한 몫을 받을 수 있는 산업생태계 조성이 우선이란 얘기다.

생산에 따른 부가가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아니라, 대기업으로 쏠리는 대기업 중심의 구조가 문제다. 국민경제가 생산한 부가가치가 적정하게 분배될 수 있다면 중소기업은 자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자본과 역량을 축적할 수 있다. 아울러 임금을 올리고 근로조건을 개선하면 중소기업의 최대 숙제인 인력난 또한 해소할 수 있다. 먼나라 얘기 같지만 대통령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중기단체장이 해야 할 것은 근로자를 마음대로 해고하자고 할 것이 아니라, 이들이 오래 근무할 수 있도록 근로조건을 개선하겠다는 다짐이다. 근로자의 임금을 인상하고 근로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추가적인 비용은 대·중소기업이 함께 생산한 부가가치를 적정한 수준에서 나누면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중기단체장이 지금 새정부에 요구해야 할 것은 대·중소기업이 공존하는 시장에서의 적정한 이윤보장이다. 새 대통령에게 ‘공정한 대한민국’을 빨리 만들어 달라고 촉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