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해법의 시작과 끝은 ‘사업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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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비정규직 해법의 시작과 끝은 ‘사업장’에 있다 한국·민주노총 참여·협력 있어야…속도와 디테일 필요

기사입력2017-05-15 16:42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문재인 대통령이 천명한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ZERO)화’ 정책의 성공여부는 속도와 ‘디테일’에 달렸다. ‘정규직 고용 원칙과 예외적인 비정규직 사용’이란 대통령의 의지는 인천공항 방문과 함께 확인됐다. 남은 것은 강력한 드라이브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규직 전환 로드맵을 얼마나 짜임새 있게, 그것도 단시간내에 준비하는가다. 인천공항을 시작으로 대다수 공공기관들이 기관내 비정규직 축소 또는 정규직 전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현실도 고무적이다.

아직 정권 초기이고 문 대통령의 광폭행보에 따라 대놓고 반발하지는 않지만 기관별 인력운용의 특성, 재정문제 등을 이유로 한 반대 움직임도 있다. 또 재벌대기업 관계자 이름을 빌어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이 민간부문으로 확산되는 것을 저지하려는 일부 언론의 시도도 있다. 짐작컨대 정규직 전환 로드맵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재벌대기업과 일부 언론의 공세는 더 거세질 것이다. 벌써부터 이른바 ‘신의 직장’의 고임금 정규직근로자를 거론하며, 이들의 임금수준과 임금체계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래서 속도도 중요하고 디테일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로드맵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정규직의 ‘양보’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시작도 하기 전에 정규직에 대한 임금삭감을 전제하는 것은 그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입으론 비정규직 차별 해소에 동의한다고 하지만, 이들이 의도하는 바는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갈등으로 몰아가고자 함이다. 비정규직 직접고용 또는 자회사 고용을 통한 정규직 전환 등 확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로드맵 확정과 함께 정규직 전환에 따른 재정규모가 확인되면, 그에 맞춰 정규직의 고통분담도 논의될 수 있는 것이다.

공공부문에 한정된 것이긴 하지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반가운 이유 중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소득주도 성장 원칙을 현실의 정책으로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투기 등 부채주도의 성장전략을 폐기하고, 근로자들의 호주머니에 돈을 채워주겠다는 것이 이번 정규직 전환 정책이다. 또 기업의 곳간에만 쌓이고 있는 돈을 가계로 돌아갈 수 있도록 법·제도를 정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정규직 전환 정책은 반드시 결실을 맺어야 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2월 정규직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 총액은 362만3000원인 반면 비정규직 임금은 40%(146만9000원) 수준에 불과하다. 같은 직장에서 사실상 동일한 노동을 제공하고 있음에도, 비정규직의 임금이 정규직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것은 불공정 차원을 넘어 인권의 문제다. 헌법이 보장한 인간다운 삶의 질을 근로자에게 보장하기 위해서도, 소득주도의 성장을 위해서도 비정규직에 대한 대폭적인 수준의 임금인상은 불가피하다. 국가재정만으론 이들의 임금을 정규직과 동일한 수준으로 일시에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더라도 마중물로써 상당한 수준의 재정투입은 필요하고, 그래야만 정규직에게 고통분담도 요구할 수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연착륙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당사자들의 얘기도 들어야겠지만, 노동조합 등 정규직의 참여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과 정규직, 양자가 물리적 통합을 넘어 화학적 결합을 완성해야만 국민들에게 양질의 공적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은 지난 대선에서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문재인 당시 대통령후보에 대한 지지를 결정했다.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을 포함 새 정부의 노동정책을 협의할 수 있는 수준의 대화채널은 열려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지난 대선에서 정의당의 심상성 후보와 민중연합당의 김선동 후보를 지지했다. 그렇더라도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최저임금 1만원 공약,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노동정책에서 상당부분 같은 입장이라는 점에서 대화와 협력 여건은 갖춰져 있다.

한국노총과 비교해 대기업 노조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것 등을 이유로 민주노총을 ‘귀족노조’라고 비난하는 일부 시각도 있다. 또 최근 비정규직을 조합원에서 제외해 ‘귀족노조’ 행태를 보였던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의 사례 등 양노총 모두 혁신이 필요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사회에 비정규직 어젠다를 제시하고, 비정규직 차별해소를 위해 가장 많은 활동을 했던 것 또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라는 점이다.

비정규직 해법의 시작과 끝은 모두 사업장이다. 해당 사업장의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하나로 통합하는 방식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다. 당사자의 참여가 전제될 때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유의미한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그래야만 비정규직 제로화는 공공기관에서 민간부문으로 확대될 수 있다. 지금 당장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민주노총을 협상의 파트너로 정하고, 그에 맞는 대접을 하는 것이다. 민주노총과의 실질적인 협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가시적인 조치를 취해줄 것을 당부한다. 민주노총 역시 비정규직 해법을 찾기 위해 진정어린 자세로 정부와의 협상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