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항소가 아니라 노조와 협상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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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기아차, 항소가 아니라 노조와 협상을 해야 한다 노조는 소송의 결과를 가난한자·비정규직·中企와 함께 나눠야

기사입력2017-09-01 11:48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불교용어로 업보이고 사자성어로 자업자득이다. 노동계 특히 경영계가 애태우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기아자동차 통상임금소송 결과가 나왔다. 서울중앙지법은 기아차 근로자 2만여명에게 4223억원을 지급하라고 31일 판결했다. 4223억원 가운데 이자금액만 무려 1097억원에 이른다. 재판을 하지 않고, 제때 임금을 지급했다면 1097억원은 절약할 수 있었다. 금액의 크고 작음과 무관하게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기에도 벅찬 상황이 돼버렸다. 호미면 충분했을 것을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판 당사자는 기아차 경영진이다.

최근 몇 년간 통상임금 관련 소송이 봇물처럼 터지기 훨씬 이전부터, 기아차 경영진을 포함 경영계 모두는 통상임금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 폭발성에 대해 충분히 인지했음에도 뇌관에 해당하는 임금 및 근로시간 관리를 관성적으로 종전과 동일하게 유지했다. 여기까지는 ‘용서’가 된다고 해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정기상여금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통상임금’이라고 선언한 이후에는 바꿨어야 했다. 대법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기아차 경영진과 경영계는 여전히 법원이 정치를 할 것으로 믿었다. 근로기준법에 정한 명문의 규정보다 국가·국민경제로 화장한 대기업의 이익을 우선시 할 것이라 오판했다.

정치를 할 것이라는 경영계의 기대와 달리 법원은 법률에 따라 말 그대로 재판을 했다. 판결문을 통해 법원은 “근로자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임금을 이제 지급하면서 중대위협이라고 보는 건 적절치 않다”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근로계약에 따라 사용자가 노무를 제공받았다면, 근로계약에서 정한 임금을 근로자에게 정상적으로 지급하라는 것이다. 동네 구멍가게 주인도 알고 있는 ‘사회통념’을 법원이 다시한번 명백히 확인해 줬음에도 경영계는 여전히 ‘사정을 봐 달라’고 떼를 쓰고 있다

중앙지법 판결 직후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논평을 통해 “회사가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이번 판결로 3조원이 넘는 우발채무를 지게 돼 적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은데도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취지에 따른 것인지 의문”이라고 강변했다. 이어 경총은 “그 부담이 해당 기업과 협력관계를 맺은 수많은 중소기업에 영향을 미친다면 우리 제조업 경쟁력에 미칠 여파가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며 사실상의 경고도 함께 덧붙였다. 경총 이외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역시 유사한 내용의 입장을 통해 재판결과에 대한 유감을 표했다.

구조화된 저성장 기조, 중국의 사드보복, 장기적인 내수침체 등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고려한다면 경영계의 우려에 수긍이 가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그렇다면 왜,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아닐 때에는 ‘근로자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임금’을 주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그보다 더 경영계가 회초리를 맞아야 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주장하는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스스로 자초했다는 것이다. 특히 자신들만의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넘어, ‘제조업 경쟁력에 미칠 여파’에 대한 우려까지 자아낸 경영계의 무능력과 무책임은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점이다.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문제인지 한번 돌아보자. 통상임금을 가장 짧게 정의하면 ‘기준임금’이다.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연장·야간·휴일수당 등 법정수당 그리고 퇴직금 등 임금이 정해진다. 통상임금이 올라갈수록 제수당과 퇴직금은 점점 커진다.

이에 법정수당과 퇴직금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영계는 얕은 꾀를 찾아냈다. 해마다 반복되는 임금협상에서 노동조합(근로자)에게 은밀하게 통상임금을 올리지 말자고 제안했다. 대신 통상임금이 아닌 (정기)상여금과 각종 수당 형태로 임금총액을 보전해 준다는 약속도 함께 했다. 노조는 다소간 고민은 했겠지만 받아들였다. 매일 얼굴을 부딪치는 사용자에게 선심도 쓰고, 조합원들에게는 임금을 이만큼 올렸다고 포장함으로써 면피가 가능했기에 가능했다.

노사간 담합에 고용노동부까지 가세하면서 통상임금 문제는 더 복잡하고 심각해졌다. 대법원의 전합판결 훨씬 이전부터 법원은 소정근로의 대가로서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하는 금품은, 그 명칭에 관계없이 모두 통상임금이라고 판단했다. 정기상여금은 물론이고 명칭이야 제각각이지만, 대부분의 수당은 통상임금이란 사실을 사용자와 고용노동부만 외면했다. 전합판결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이라는 못을 최종적으로 박은 것이지, 전합판결에 의해 비로소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된 것이 아니란 얘기다.

늦었긴 하지만 잘못된 관행은 바로잡아야 한다. 경영성과에 따라 지급여부가 불확정적인 성과급, 근로시간이 많고 적음에 따라 변동되는 임금항목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근로의 대가다. 수십가지가 넘는 수당항목을 만드는 편법으로 기본임금을 적게 줌으로써 연장·야간·휴일근로를 사실상 강제하는 장시간근로 관행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저임금을 보전한다는 명목으로 매월 또는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정기상여금 또한 기본임금에서 제외될 이유는 단 한가지도 없다.

기아차가 지금 당장 해야할 일은 임금체계 단순화와 함께 장시간근로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노동조합과 머리를 맞대는 것이다. 항소를 통해 재판을 끌고가서 천문학적인 규모의 이자을 부담하고, 나아가 국민경제에 불확실성을 증폭시켜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끝으로 기아차노조에 당부한다. ‘강성노조’ ‘귀족노조’ 등 빨간딱지로 인해 가난한자, 비정규직, 중소기업 근로자의 ‘질시’가 현실적으로 존재함을 인정해야 한다. 조합원의 이해와 요구가 최우선인 노조에게 과도한 짐을 지울 수밖에 없는 우리사회 현실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요청한다, 소송의 결과물로 벌이는 ‘잔치’에 기아차 근로자 이외 가난한자·비정규직·중소기업 근로자도 함께 초대해 주기를 간곡하게 요청하고 싶다. 기아차가 부품을 조립해서 수출을 할 수 있는 바탕에는, 이번 소송에 참여하지 못한 천만가까운 중소·하청근로자와 비정규직이 있다. 이들의 땀과 노고를 기억하며, 이들과 함께 공존하고자 할때만이 기아차 근로자의 삶도 나아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