破邪顯正…적폐정권의 경제패러다임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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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破邪顯正…적폐정권의 경제패러다임 바꿔야 불평등구조 여전 ‘사악함’ 깼다고 말할 수 없어…풀어야 할 숙제 산적

기사입력2017-12-27 13:28

안호덕 객원 기자 (minju815@hanmail.net ) ㅣ다른기사보기

교수신문은 매년 말 사자성어를 선정해 발표하는데, 올해 사자성어로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을 꼽았다. 사악함(邪)을 깨고(破) 바른(正) 것을 드러냈다(顯)는 의미다. 교수신문이 정한 지난 2015년 사자성어는 혼용무도(昏庸無道)로,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때문에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2016년엔 군주민수(君舟民水)인데, 물(水)인 국민(民)이 군주(君)인 배(舟)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지난 3년간의 사자성어를 이어보니 참 절묘하다.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가 무도하게 만든 세상(昏庸無道)을 국민들이 성난 파도가 되어 뒤집으니(君舟民水), 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냈다(破邪顯正). 지난 4년 동안 ‘지록위마’(指鹿爲馬, 2014년 사자성어) ‘사슴을 말’이라면서, ‘도행역시’(倒行逆施, 2013년 사자성어) ’순리를 거슬러 거꾸로 시행한’ 정권을 쫓아낸 것이다. 그래선지 긍정과 희망을 담은 올해 사자성어, 파사현정은 마음에 더욱 와 닿는다.

신년 벽두부터 숨 가쁘게 달려온 1년 아닌가. 엄동설한에도 주말이면 수십만 인파가 광화문에서 ‘정권퇴진’을 외쳤고, 마침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수감으로 귀결됐다. 5월에는 ‘적폐청산’, ‘소득주도 성장론’을 주창하는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다. 문재인 정권은 이전 정권과 차별화된 모습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았고, 수출과 대외여건 호조로 불안했던 경제는 낙관적인 전망으로 바뀌었다. 부패하고 무능한 대통령 탄핵의 결과 새롭게 들어선 촛불정권이다. 1987년 6, 7, 8월 뜨거웠던 여름을 ‘민주항쟁’으로 기술한 역사는 올해 1, 2, 3월 차디찼던 겨울을 ‘촛불항쟁’으로 기록할 것이다.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 소식을 듣고 환호하는 국민들. ©중기이코노미

하지만 변화의 체감은 아직 일부에 그친다. 바꿔도 달라진게 없다는 푸념도 심심찮게 들린다. 여전히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집단이 있고, 사회전반에 걸쳐 낡은 체제를 지키려는 보수회귀 조짐도 빈번하다. 경제사정이 나아진다지만 서민들의 고통은 오히려 커졌다. 고질화된 돈의 동맥경화 현상도 나아질 기미가 없다. 경제가 좋아지면 부자들은 돈방석에 앉고, 경제가 나빠지면 서민들은 허리띠부터 졸라매는 불평등 또한 여전히 진행형이다.

양극화의 잣대로 인용되는 지니계수도 커지고 있다. 빈부격차가 더욱 벌어졌다는 얘기다. 정부가 가계부채 대책을 쏟아내지만 가구당 부채규모가 7000만원을 넘었다. 그럼에도 가계부채를 줄일 방법이나, 서민들이 노동으로 삶을 꾸려나갈 해법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갑질과 독식에 황폐화됐고, 자영업자들 역시 프랜차이즈와 온라인 시장에 밀리고 내수부진까지 겹쳐 빚더미만 쌓여가는 중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도 별로 나아질 기미가 없다.

특히 청년들의 삶은 어떤 미래도 기약할 수 없을 만큼 참담한 수준이다. ‘88만원 세대’가 아니라 ‘77만원 세대’로 전락했다는 통계도 있다. 그런데도 2018년 최저임금액을 둘러싸고 일부 경제지 등 언론은 연일 ‘최저임금 인상 경제위기론’을 선동한다. 대체 청년들에게 얼마의 임금을 지급해야만 경제가 나아지는지 묻고 싶을 지경이다.

월 77만원을 받는 99%의 젊은이와 성과급으로 한번에 수천만원을 받는 1%의 젊은이가 하나의 공동체에 공존한다. 이같은 극단적인 불평등 구조를 내버려 두고 경제가 나아진다고? 빈소리이고, 표준말로 하면 거짓말이다. 이런 극단적 불평등을 방치하고서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의 한해였다고 오롯하게 말할 수 없다.

1%만을 위해 99%가 희생하는 불평등 구조, 넘어서지 않으면 청년들 미래뿐만 아니라 국민들 살림살이조차 내일을 꿈꾸기 어렵다. 이같은 불평등 구조는 적폐로 생존했던 정권이 강요한 경제패러다임이다. 저임금 구조는 바뀌어야 하고 손쉬운 해고는 철회돼야 한다. 노동이 대접받고 정당한 대우로 인간의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파사현정은 국민들을 위한 칭송이지만 여전히 남은 숙제이기도 하다. 내년에는 청년들의 일자리,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좀 나아졌으면 좋겠다. 촛불을 들어 정권을 바꾼 국민들이다. 충분히 그 정도의 대접은 받을 자격이 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