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서 정주권 보장…‘안정적으로 머물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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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헌법에서 정주권 보장…‘안정적으로 머물 권리’ 구체적으로 명시 안돼 “강제퇴거 일상화, 하위법률 임대인 중심 설계”

기사입력2018-02-06 12:12

조한무 기자 (chohm0113@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강제퇴거는 재개발이나 재건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세입자는 집주인이 요구하는 임대료를 지불하지 못하면 쫓겨난다. 한 집에 안정적으로 머무를 수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헌법에 ‘주거권’과 ‘정주권’을 추가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강제퇴거 일상화…“주거권, 헌법에 미약하게 규정됐기 때문”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실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5일 개최한 ‘사회권 보장과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한 개헌 포럼’에서 ‘집걱정없는세상’ 최창우 대표는 “재개발이나 재건축뿐만 아니라 임대인에 의해 세입자가 강제로 퇴거당하는 현상이 일상화돼 있다”며 “주거권 보장이 헌법에 미약하게 규정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정주권 개념에 대해 “한 곳에 오래 머무를 권리다. 세입자는 집에 원하는 만큼 살 수 있어야 하고, 상인은 한 곳에서 장사를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정주권 개념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주거권이 불안한 한국 현실을 보여준다”고 했다. 헌법이 주거권과 정주권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강제퇴거가 만연해 있는 것이고, 헌법이 ‘세입자가 머물 권리’를 보장하기 않았기에 하위법률이 임대인 중심으로 설계됐다는 지적이다.

헌법 제34조…‘인간다운 생활’에 ‘머물 권리’를 포함해야

따라서 최 대표는 헌법에 주거권과 정주권을 명시해 ‘집에 머물러 살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법 제34조는 모든 국민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으며, 국가에 대해 사회보장과 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최 대표의 주장은 제34조에 ‘모든 국민은 주거권과 정주권을 보장받는다’는 내용을 추가해 ‘인간다운 생활’에 ‘머물 권리’를 포함하자는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김남근 부회장도 제34조가 주거권을 보장하기에 미흡하다고 지적하고, 제34조 제1항에 명시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부회장은 “주거는 의·식·주라는 기본생활을 이루는 영역의 하나”이라며 “인간다운 권리에 주거가 포함된다는 점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가령 ‘모든 국민은 의·식·주 등 기본생활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로 수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픽=조한무 기자>

헌법 제35조…“쾌적한 주거와 안정적 주거가 함께 보장돼야”

환경권을 규정하는 제35조를 개정하자는 주장도 이어졌다. 최 대표는 제35조 제1항은 ‘국민은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안정적 주거권을 보장한다고 해석하기엔 무리라는 설명이다. 그는 제35조 제1항을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주거환경과 생태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로 개정하고, ‘국가는 모든 국민에 주거권, 정주권, 생태환경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조항을 추가해야 한다고 했다.

민변 김 부회장도 “쾌적한 주거와 안정적 주거가 함께 보장돼야 한다”며 “안정적으로 생활할 집이 없는 상황에서 쾌적함만을 강조하는 것은 순서가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쾌적함’과 ‘안정’이란 주거권 핵심내용을 각각 ‘적합한 최저주거기준’과 ‘적정한 주거비용’이란 구체적 정책지표를 헌법에 담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상희 교수도 제35조를 개정,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별도로 설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구체적으론 가구원수에 맞는 최저주거기준을 법률fh 정하도록 하고, 실거주자 소유를 원칙으로 하며, 최소한의 주거비를 기준으로 임대료와 임대조건을 제한하는 방안이다.

헌법 제14조…‘이전의 자유’외 ‘이전하지 않을 권리’도 추가해야

거주이전의 자유를 명시한 헌법 제14조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다. 민변 김 부회장은 “거주이전의 자유는 이전만 자유로운 게 아니라, 현재 주거에서 이전하지 않을 권리도 포함해야 한다”며 정주권을 명확히 규정할 것을 주문했다.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재 국회에서 진행 중인 개헌논의에서 정주권이 배제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권 의원은 “정주권을 헌법에서 추구하면, 주거 불안정성이 극심한 세입자에 대한 권리를 강화하고 사회적 약자의 주거안정과 주거수준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이 나올 수 있다”며 “젠트리피케이션 등 소상공인의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방안도 함께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