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외진단기 ‘先진입-後평가’…국민이 실험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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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중기 ㅣ 산업뉴스 체외진단기 ‘先진입-後평가’…국민이 실험대상 안전성 평가에 의료업계 참여…로비창구 상설, 이해상충도 문제

기사입력2018-08-27 17:20

조한무 기자 (chohm0113@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정부의 의료분야 규제완화 추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안전성이 높다고 인식되는 체외진단기기에 ‘우선진입-사후평가’제를 적용하겠다는 정부방침에 대해, 안전한 기기라도 정확도가 떨어지면 잘못된 진단과 치료로 이어져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용효과성이 낮은 제품이 시장에 진입하면, 의료비가 폭등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민의) 안전보다 업체이익을 우선한다는건 심각한 문제”

27일 정의당 윤소하 의원과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가 주최한 ‘문재인 정부의 보건의료 혁신성장론 무엇이 문제인가’ 간담회에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형준 정책실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신의료기술의 의료현장 진입규제완화는 보건의료 규제완화정책을 전적으로 산업측면에서만 접근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며 “의료산업에 대한 투자를 독려하고, 의료업계 수익성 강화를 위해 안전장치를 제거하는 것이고, 안전보다 업체이익을 우선한다는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 7월 ‘혁신성장 확산을 위한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의료기기 육성방안)’을 발표했다. 골자는 체외진단기기에 대해 ‘선(先)진입-후(後)평가’제도를 도입하고, 내년부터 시장진입 절차를 단계적으로 간소화한다는 내용이다.

현재 체외진단기기는 기술개발 이후 시장진출까지 의료기기 허가(80일), 기존기술 여부 확인(30~60일), 신의료기술평가(140~250일)까지 최대 390일이 소요된다. 그런데 의료기기 육성방안에 따르면 내년초 감염병 관련 체외진단기기에 사후평가제를 도입, 의료기기 허가만 받으면 즉시 시장진입이 가능하도록 했다. 기술개발에서 시장진출까지 최대 390일 걸렸던 감염병 관련 체외진단기기가 최장 80일이면 상용화된다. 체외진단기기는 인체에서 추출된 검체를 인체 밖에서 검사하는 의료기기이기 때문에, 진단과정에서 안전성 우려가 적다는게 정부의 설명이다.

<자료=보건복지부>

정확하지 않은 의료기기는 안전하지 않다

의료기기 시장진입은 안전성뿐 아니라 정확성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형준 정책실장은 “안전성 우려가 적은 의료기술에 한해 사후평가방식을 적용한다고 하는데, 의료기술에서는 안전성뿐 아니라 정확성도 중요하다. 정부가 예시한 비침습적 체외진단 혈당기기의 경우 안전하다고해도 정확성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 혈당검사결과가 정확하지 않으면. 환자가 당뇨 조절을 제대로 할 수 없어 결과적으로 위험한 의료기기가 된다. 의료기기가 정확도를 갖추지 못하면 제대로 된 진단이 불가능하다. 의료기기 정확성을 시장경쟁에만 맡기면 안전보장이라는 국가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정 정책실장은 이어 “체외진단기기는 채취된 조직세포, 혈액, 소변, 대변, 타액을 이용해 면역화학적 진단 등을 하는 온갖 의료기기를 포괄한다. 체외진단기기를 통한 검사결과는 진단과 치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매우 정확하고 효과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침습적 검사란 인체에 고통을 주지 않고 실시하는 검사를 의미한다. 마취하고 칼로 째는 침습적 방식과 대조된다. 비침습적 체외진단기기는 안전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낮은 정확도로 잘못된 진단과 치료를 야기할 우려가 있다는게 정 정책실장 설명이다.

비용효과성 문제도 지적된다. 정 정책실장은 “안전하다는 이유로 시장진입을 허용하는건 불필요한 소비만 부추기는 꼴이다”며 “기존 의료기기에 비해 비용대비 효과가 더 나은 기술만 인정해야 의료비 폭등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환자와 의료진 사이에는 정보 불균형이 있어, 병원이 수익을 목적으로 비용효과성이 낮은 체외진단기를 추천하면, 의료비 부담 가중 등 환자의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사후) 평가기간까지 환자에게 실험되는 상황을 낳는다”

27일 정의당 윤소하 의원과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문재인 정부의 보건의료 혁신성장론 무엇이 문제인가’ 간담회를 주최했다. ©중기이코노미

사후평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문제제기도 나온다. 정 정책실장은 “사후평가에 따른 퇴출도 쉽지 않다. 의료보험을 혜택을 적용하지 않는 비급여치료의 경우 음성적 사용을 단속할 방법이 없다. 부작용 보고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사실상 한번 의료현장에서 사용이 허가하면 퇴출시킬 근거를 마련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의료보험을 적용하지 않으면. 정부로서는 해당의료기기가 현장에서 얼마나 어떻게 사용되는지 확인할 수 없기에, 위험성을 감지하고 예방하기가 사실상 불가하다는 얘기다.

정 정책실장은 이어 “새로 도입하는 의료기기일수록 철저하게 검증해야 하는데, 사후평가제를 도입하면 평가기간까지 환자에게 실험되는 상황을 낳는다”고 덧붙였다.

규제심사과정 공개는 심사관-업계 간 유착 부추기는 꼴

정부는 의료기기 심의결과 등 규제 진행과정을 기업에게 전면 개방함으로써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신개발제품의 경우 허가심사 전에 개발자가 심사관에게 직접 설명하는 기회를 부여하도록 했다. 관련협회로부터 추천을 받아 첨단기술 전문가를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 등 평가위원군에 추가영입해 위원으로 위촉한다는 방침이다.

이같은 규제심사과정 공개방침에 대해, 심사관과 규제대상인 업계 간 유착관계를 부추기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 정책실장은 “안전성과 효과성을 검증하는 의료기기 허가심사절차에서 의료기기협회 등 이해당사자와 심사관 간 유착을 정당화하는 절차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의료기기업계가 자사 제품에 대해 허가심사를 하는 심사관에게 로비하도록 허용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에서 추진하는 블라인드 방침에도 위배된다”며 “평가위원군에 의료기기업체나 제약업체가 추천하는 전문가가 들어가는건 이해상충 문제를 드러낼 수 있어 상식에 벗어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정형준 정책실장은 이어 “규제심의결과 등은 공익적 목적을 위해 추진될 경우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사항”이라며 “규제심사과정을 일일이 공개하는 것 자체가, 객관적이고 공익적인 평가절차를 무력화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