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공화국’이란 오만·독선이 사고를 자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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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삼성공화국’이란 오만·독선이 사고를 자초했다 ‘法위에 삼성’을 고집한다면, 기흥사업장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기사입력2018-09-06 19:32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지난 4일 발생한 이산화탄소 유출사고 처리과정을 보면서, ‘法위에 삼성’임을 새삼 절감한다. 날개도 제대로 펴지 못했던 20대 청춘이 목숨을 잃었다. 누군가의 금쪽같은 아들이었을 20대 젊은이와 어느 집안의 버팀목이었을 50대 가장이, 지금도 병상에서 사경을 헤맨다.

사고발생 다음날,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은 사고당한 직원과 가족에게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를 위한 근본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다짐했다. 사고발생 사업장 최고책임자로서 나름 예의와 형식을 갖춘 사과를 받아들이고 싶다. 재발방지 대책 약속 또한 믿고 싶지만, 그게 잘 안된다. 동일한 사고가 계속되고 관례처럼 반복되는 삼성의 사과를 보면서, 진정성을 엿볼 수 없어서 그렇다.

2014년 3월 수원 생산기술연구소에서 소화용 이산화탄소가 누출돼 협력업체 노동자가 사망했다. 이 사고는 이번 기흥사업장 사고와 동일하다. 당시 사고원인을 제대로 규명하고 그에 따른 예방대책을 세웠다면, 이번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동일한 사고가 재발한 현실을 보면, 당시 조사 및 처리 과정이 부실했을거라 추정하는 것은 합리적인 의심이다. 이런 의심은 이번 기흥사업장 사고발생 이후, 삼성전자의 대응을 보고 확신으로 변했다.

4일 오후 기흥사업장 6-3라인 지하1층 이산화탄소 저장창고에서 ‘화재진화용 이산화탄소 분사 시스템’이 작동했고, 이산화탄소 유출로 협력업체 노동자 3명이 쓰러졌다. 사고발생 직후 삼성전자는 전산시스템을 통해 이산화탄소 분출 사실을 확인하고, 사고현장에 자체 소방대를 출동시켰다.

이산화탄소 분사 시스템은 화재가 감지되면, 이산화탄소를 자동으로 분출하는 장치다. 따라서 소방대가 현장 상황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삼성전자는 화재발생 매뉴얼에 따른 조치를 행해야만 했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화재발생이 의심되는 당시, 사고현장 건물 3층의 생산라인 가동을 중지하지 않았다. 당시 3층 생산라인에는 30여명의 노동자가 근무했다. 만약 분사 시스템 오작동이 아닌 실제 화재가 발생했다면, 대형참사가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제 삼성전자에게 물어야 한다. 전산시스템을 통해 이산화탄소 분출 사실을 확인하고도, 사고발생 건물에서 작업중이던 노동자들을 대피시키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인지. 기우지만, 생산라인 중단에 따른 손실 등을 이유로 노동자들의 안전과 생명을 외면했다는 수사결과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또 하나 규명돼야 할 사실은 사고를 당한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적절한 응급조치를 받았는가 하는 점이다.

사고발생 직후 삼성전자 소방대는 사고당한 노동자 3명을 자체 차량을 이용해 인근병원으로 이송했다.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삼성전자는 사고발생 2시간이 지나서야 소방당국에 사고발생 사실을 신고했다. 삼성전자가 사고발생 직후 119에 신고했다면, 사고를 당한 노동자들은 국가가 ‘공인’한 의료진으로부터 응급조치를 받을 수 있었다. 삼성전자의 늑장신고와, 지금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2명 노동자의 병세 간 인과관계가 없는지도 살펴야 할 대목이다.

긴급한 상황에 출동시간 등을 고려해, 삼성전자 소방대가 사고현장에 먼저 도착한 것이라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삼성전자 소방대가 응급조치를 했다고, 119 의료진의 추가적인 조치가 불필요한건 아니기 때문이다. 삼성 소방대 인력의 의료전문성이 119 인력보다 우수하다고 볼 객관적인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생사를 넘나드는 골든타임에 놓인 노동자들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삼성 소방대가 행한 응급조치에 문제는 없는지도 규명해야 할 대상이다.

이번 기흥사업장 사고 수습과정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삼성전자가 독단적인 판단으로 사고현장을 오염시켰다는 점이다. 한사람이 죽고, 2명을 의식불명 상태로 만든 중대한 사고현장이다. 사고원인을 알기 위한 출발점은 ‘현장’인데, 삼성전자가 그 현장을 훼손했다.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련법 위반 사실을 은폐할 목적으로, 삼성전자가 현장을 손봤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가 관련법 규정에 맞게 현장을 정리하는 사례는 다반사다.

이번 기흥사업장 사고와 그 수습과정을 보면서, 삼성의 오만과 독선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3명이 사상한 중대한 사고현장을 2시간이상 국가가 아닌 삼성이 통제했다. 소방기본법에 따라 관계당국에 신고해 사고당한 노동자의 생명권을 보호해야 함에도, 삼성전자 독단으로 처리하고 사후 통보하는 오만함을 보였다. 사고현장을 훼손함으로써 사고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수립하는데 걸림돌까지 만들었다.

이 모든게 국가권력을 경시하는 삼성 특유의 유아독존적 사고와 무관하지 않다. ‘삼성공화국’이란 말이 회자될 정도로 삼성의 방자함을 방치했던 정부의 업보이기도 하다. 삼성 스스로 삼성공화국이란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제2·제3의 기흥사업장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10여년이상 계속되다, 최근 가닥을 잡은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직업병 논란도 같은 맥락이다. 삼성 스스로 ‘法위에 삼성’을 자처하지 말고, 법을 준수하겠다는 겸손함을 보여야 한다. 무엇보다 지금은 관계당국과 더불어 사고원인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그에 따른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힘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