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회한이 아닌 희망을 얘기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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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기해년…회한이 아닌 희망을 얘기할 수 있기를 광장을 지킨 촛불이 누구였는지 기억하고, 이들을 지켜주길 바란다

기사입력2019-01-01 00:30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무술년을 보내고 맞은 기해년 새해 첫날, 남북문제를 제외하면 모든게 촛불혁명 이전으로 돌아간 듯하다. 최저임금이 많이 올라 노동자 가계의 살림살이가 좀 피나싶더니, 정부여당이 주도한 근로기준법·최저임금법 개악으로 말짱 도루묵이 됐다.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는 상투적인 말과 함께 줄줄이 법의 심판대에 올랐던 재벌총수들, 이들 모두 회장실로 다시 복귀해 투자를 조건으로 정부와 거래를 한다. 정부는 재벌대기업에 철도·도로 등 국가기간망 건설사업 참여를 보장하고, 예비타당성조사 요건까지 완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1주 52시간 노동상한제 시행이 유예되고, 노동시간 단축에 역행한 탄력근로제 확대가 추진됐던 이유가 분명해졌다. 촛불정부가 촛불의 염원을 외면하고, 국정의 동반자로 노동자가 아닌 재벌대기업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삶은 나아졌는가. ‘소득주도성장’ 실행 로드맵도 없이,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인상한 후폭풍은 올 내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삶을 옥좼다. 최저임금 인상에 앞서 이들의 임금지불 여력을 키우는 사전 정지작업을 못한 관료들의 무능이 빚어낸 참사다. 결국 영세한 소상공인·자영업자와 알바·저임금노동자 간 ‘을들의 전쟁’으로 비화되면서, 촛불정부의 트레이드마크인 ‘소득주도성장’은 그 길을 잃기 시작했다.

뒤늦게 카드수수료 인하·임대료 인상 억제·프랜차이즈 본사 규제·자영업 성장혁신 대책을 내놨지만, 그 효과는 미지수다. 이미 금이 간 그릇에 물을 채우기 위해서는 곱절이상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문재인 정부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선후가 바뀐 정책집행으로 소득주도성장론이 본궤도에 올라보지도 못하고 추락하는 작금의 현실은 특히 안타깝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당부한다. 유난히 추웠던 2016년말, 2017년초 ‘박근혜 퇴진(하야)’을 촉구하며 광장을 사수했던 촛불이 누구였는지를 기억하고, 이들을 지켜주길 바란다.<사진=뉴시스>

대기업 편중의 산업생태계에서 생존 그 자체가 목적인 중소기업 사정은 어떤가. 재벌대기업을 정점으로 서열화된 원하청구조에 균열이 갔다는 징후는 어디에도 없다. 단가후려치기, 중소기업기술 도둑질은 여전히 국정감사장 또는 피해당사자의 폭로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수탈적 행위에 솜방망이 제재가 반복되면서, 대기업의 갑질은 이제 관행이 됐다.

수직 종속적인 원하청구조를 수평 대등한 관계로 바꾸자는 ‘공정경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 아직 유효한지도 의문이다. 재벌대기업과 한몸인 극우·보수 야당을 핑계삼아 입법미비라 변명하지만, 말 그대로 변명일 뿐이다. 대통령과 재벌총수 간 연이은 만남을 보면서, 그 누가 공정경제를 위해 총대를 메겠는가. 더욱이 대통령 스스로도 공정경제 언급을 자제하는 지금.

현금이든 땅이든 주체할 수 없이 많이 가진 자가 자신의 것을 일부라도 내려놔야하는 ‘불편한’ 세상이 됐나. 비정규직과 정규직, 대기업노동자와 중소기업노동자, 가계와 기업, 부자와 빈자 간 소득 및 자산의 극심한 격차를 해소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이란 공동체는 단 한발자국도 전진할 수 없다. 촛불혁명은 형식적 민주주의마저 파괴한 정권을 심판한 것이지만, 경제민주화를 통해 실질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라는 수천만 촛불의 명령이기도 했다.

노동시장과 생산물시장 모두에서 공정한 분배기제가 붕괴된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명확하다. 공정한 조세와 과감한 재정지출을 통해 극단적인 사회양극화를 해소하고, 함께 하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한 일이라곤 국민여론에 떠밀려 종부세와 법인세·소득세를 찔끔 올린게 전부다. 극우 야당 및 언론 타령을 하겠지만, 증세와 재정확대를 통해 복지국가로 가겠다는 비전 제시와 함께 국민을 설득할 용기조차 내지 않았다.

새해 첫날, 희망을 얘기하지 못하고 회한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답답하다. 어쩌면 문재인 정부에 거는 마지막 기대일지 모른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이도 적지 않지만, 아직 기회는 있다. 촛불혁명의 적통을 승계한 대통령이기에, 사실이 아닌 소망의 표현이라고 타박해도 딱히 변명하고픈 생각도 없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당부한다. 유난히 추웠던 2016년말, 2017년초 ‘박근혜 퇴진(하야)’을 촉구하며 전국 곳곳의 광장을 사수했던 촛불이 누구였는지를 기억하고, 이들을 지켜주길 바란다. 해서 기해년을 다 보내고 새로 맞이하는 경자년 새해에는, 회한이 아닌 희망을 얘기할 수 있기를 간절히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