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은 조이고, 도망간 고기는 잡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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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그물은 조이고, 도망간 고기는 잡을 때 금산분리와 일감 몰아주기 피해가는 재벌들

기사입력2014-01-21 11:30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주)두산이 해외의 손자회사를 통해 금융계열사인 두산캐피탈을 지배하고 있다. 금산분리의 행위제한 규정에도 걸리지 않는다. 공정거래법이 지배의 주체를 ‘국내회사’로만 한정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내용상’으로 금융사를 지배한다 해도 ‘법적’으로 제재할 근거가 없다. 정해진 기간에 더해 2년을 유예받고도 과징금 부과대상이 된지 몇 달만에 이뤄진 일이다.

‘일감 몰아주기’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에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내부거래 비중이 60%에 이르는 현대엠코가 현대엔지니어링에 합병되면서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35%대에서 16%로 떨어졌다.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를 막기 위한 규제(비상장기업의 경우 20%)에서 안전하게 벗어났다. 삼성SNS와 삼성에버랜드는 다른 방법으로 규제대상에서 벗어나거나 벗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개정안은 다음달 14일 시행된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해외법인에 의한 두산캐피탈 지배가 “지분매각이 잘 이뤄지지 않아 취해진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한다. “탈법 상태로 놓아두는 것보다는 적법한 상태로 만들어 놓고 후속 매각작업을 진행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론적으로 다른 지주회사가 똑같은 방법을 동원해 금융사를 지배한다해도 제재할 근거가 현재는 없다.

현대차그룹에서는 엔지니어링과 엠코 합병을 “글로벌 성장전략”으로 설명하지만, 상황이 너무 공교롭다. 따라서 이번 합병을 규제 회피와 후세 승계를 위한 사전포석으로 해석하는 이가 많다.

금산분리와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적어도 기업의 자유로운 경영행위를 옥죄는 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의 성격이 강하다.

금산분리는 비금융 지주사의 입김을 막아주는 차단막이다. 안전성과 수익성보다 지주사 경영진의 의견이 앞서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금융사가 기침을 하면 나라경제는 몸살을 앓는다. 독립적인 경영이 필요한 또다른 이유다. IMF 체제와 카드대란만으로도 수업료는 이미 충분히 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총수 일가의 사적 이익으로부터 기업경영의 독립성을 막아주는 최소한의 장치다. 제일기획과 국내 광고업계 선두를 다투는 이노션의 현대차그룹 내부거래 비율은 50%에 가깝다. 삼우는 사돈지간인 현대차그룹의 내부거래 비율이 85%를 넘는데, 현대차그룹 사돈이 인수한 이래 수십배의 기적적인 성장세를 시현했다. 문제는 이들과 거래한 계열사, 이들과 경쟁한 업체들에게 자유시장체제의 근간인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결정’,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 이뤄졌는지다.

이익추구를 최선의 목표로 해야 할 개별 기업에게 산업 및 국가의 경쟁력, 옳고 그름과 수치심 따위를 기대할 수 없다. 정부당국이 해야 할 일이다. 대상업체를 포함한 국가전체에 법안이 가진 정신이 유효하고 사회적 동의를 받았다면, 효율성 올리기에 집중해야 한다. 헐거워진 그물을 조이고 빠져나간 고기는 다시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