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합의 아닌 법원만 쳐다보는 ‘통상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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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정보 ㅣ 인사노무 노사합의 아닌 법원만 쳐다보는 ‘통상임금’ 대법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사건과 사정따라 다른 판단”

기사입력2014-10-30 00:00

박현진 객원 기자 (kpla123@hanmail.net) ㅣ다른기사보기

노무법인 ‘사람과 사람’ 박현진 공인노무사

“KDB산업은행, 수출입은행, IBK기업은행, KB국민은행 등 10개가 넘는 금융사 노조가 지난 6월 하반기 사측을 상대로 (통상임금)소송을 제기했다”(파이낸셜뉴스, 2014.8.27)

“통상임금 소송이 항공업계에도 확산되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에서…임금체계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경향신문, 2014.8.1.)

지난해 연말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2다89399/2012다94643)이후 정부 또는 국회는 통상임금 관련 지침 또는 입법 등 노사가 수용할 수 있는 후속조치를 내놓지 못했다. 결국 통상임금을 둘러싼 노사 간 분쟁은 제조업을 넘어 산업부문 전반에 이르기까지, 노사자율에 따른 조정 또는 합의방식이 아닌 법원의 결정만 쳐다보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온 지 9개월여의 시간이 흘렀고, 그 기간 동안 통상임금에 대한 하급심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그간 판례의 경향을 대략 정리하자면,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급여를 포함 각종 수당의 통상임금 여부가 ‘재직요건’을 기준으로 갈라지고 있다. 각종 수당(임금) 지급일에 재직자에게만 지급하는 경우에는 통상임금이 아니다. 반면 퇴사자에게 일할 비례하여 지급하는 경우에는 통상임금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최초로 제시했던 ‘재직요건’ 법리가 일관되게 관철되고 있다.

정기상여금 포함 각종 수당의 통상임금 구별기준 ‘재직요건’

통상임금을 둘러싼 노사 간 분쟁은 제조업을 넘어 산업부문 전반에 이르기까지, 노사자율에 따른 조정 또는 합의방식이 아닌 법원의 결정만 쳐다보고 있다. ©비자트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통상임금 관련 최초의 판결은 지난 1월 부산고법의 몫이었다. 부산고법(2012나7816)은 대우여객 근로자 46명이 제소한 통상임금 소송에서 ‘재직자에게만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다’고 판결했다. 이어 지난 5월 수원지법(2012나12440)은 현대그린푸드 근로자가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 항소심에서 ‘재직자에게만 지급하는 휴가비는 통상임금이 아니다’고 판결했다.

대법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법원은 정기상여금을 포함 휴가비, 가족수당, 직책수당, 근속수당, 승무수당, 무사고수당, 장기근속수당, 교통비, 만근수당 등 각종 명목의 수당에 대해 그 명칭에 구애되지 않고, ‘소정 근로의 대가로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된 것이 입증되면 이를 통상임금으로 판단하고 있다

추가임금(정기상여금) 청구, 노사합의가 존재하는 경우 신의칙 항변 인용

통상임금의 징표 또는 요건에 대한 판례의 경향은 비교적 일관된 흐름이 있다. 반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지 않아 결과적으로 미지급된 임금(연장근로수당, 야간근로수당, 휴일수당, 연차수당 및 퇴직금 등)을 추가로 청구한 사건의 경우에는 사정이 좀 복잡하다.

미지급된 추가임금 청구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하는 노사간 명시적 또는 묵시적 합의가 있었고, 그 합의에 반해 통상임금을 청구할 경우 기업측에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면 정의와 형평관념에 비추어 신의칙에 위배되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추가임금(복리후생급여, 근로 관련 제수당) 청구, 신의칙 항변 배척

인천국제공항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통상임금 소송에서 지난 4월 서울남부지법(2012가합23000)은 회사 측의 신의칙 항변을 배척했다. 회사 측은 ‘근속수당, 격려금, 교통비, 식비, 직책수당 등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키로 한 단체협약(노사합의)이 존재한다’는 주장과 함께 ‘이들 수당을 통상임금으로 재산정하는 경우 과도한 재정적인 부담을 근거로 신의칙에 반한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법원은 ‘노사합의가 강행법규인 근로기준법에 반해 무효’라는 이유를 들어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정적인 부담 등 경영상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살펴보지도 않았다.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법원은 복리후생급여를 포함 근로의 양·질과 관련성을 갖는 각종 수당의 경우 노사합의가 존재하는 경우에도 신의칙 항변을 배척하고 있다.

경영상 어려움, 재무상태, 매출액 및 자본금 회사 전반의 경영상태로 판단

대법원(사진)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온 지 9개월여의 시간이 흘렀고, 그 기간 동안 통상임금에 대한 하급심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중기이코노미

문제가 복잡해지는 지점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한 노사합의가 존재하고, 신의칙 항변을 인용하여 사용자의 손을 들어줄 수 있는 근거,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구체척인 사건과 사정에 따라 그 때 그 때 다른 판단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 5월 광주지법 순천지원(2011가합3368 판결)은 철강재 포장업체인 누벨 근로자 2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통상임금 소송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판단했다. 그럼에도 회사측의 신의칙 항변을 인용함으로써 결국 승리한 쪽은 회사다. 신의칙 항변을 인용한 근거는 2012년 8850만원의 순이익을 냈지만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면 3억8900만원의 인건비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외버스 회사인 경북코치서비스 근로자들이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에서 지난 5월 대전고등법원(2011나826) 역시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되면 2006~2009년까지 매년 약 17억원에서 23억원 정도를 추가로 부담하게 돼 회사에 큰 재정적 부담이 될 것’이라고 신의칙 항변 인용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2010년 워크아웃에 들어가 2013년에도 적자를 기록한 아시아나항공 통상임금 소송에서 지난 5월 서울중앙지법(2012가합33469)은 ‘경영상의 어려움’은 인정하면서도 회사 측의 신의칙 항변을 배척했다.

법원은 ‘회사의 자본금이 8000억원이 넘는다는 점,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면 연 93억원의 추가 지출이 예상되지만, 이는 전체 인건비(6817억원)의 1.3%에 불과한 점 등을 신의칙 항변 배척 사유로 제시했다.

법원은 누벨의 경우 3억여원, 경북코치서비스의 경우에는 17억원에서 23억원 정도의 추가부담금이 회사 측에 예측하지 못한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한다고 판단했다. 반면 아시아나의 경우 추가부담금이 93억원이었음에도 신의칙 항변을 배척한 것을 보면, 회사의 재무상태 뿐만 아니라 매출액·자본금을 비롯한 회사의 전반적인 경영상태를 살펴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 여부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공공기관의 신의칙 항변, 일반 기업보다 엄격하게 판단

또 하나 고려되는 것이 사기업 또는 공공기관(공기업)인가 하는 점이다. 서울중앙지법(2012가합1000222)은 지난 4월 고용노동부 고용안정센터 직업상담원들이 제기한 통상임금 청구 소송에서 정부측의 신의칙 항변을 배척했다.

정부 측은 ‘추가적인 임금 지급 등으로 중대한 재정적 곤란을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막대한 규모의 예산으로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공적 주체라는 점, 법규에 대한 해석·적용의 책임자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일반 기업보다 정부의 신의칙 인정 여부를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기업에 대한 엄격한 판단은 계속되어 광주도시철도공사 전·현직 근로자 426명이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에서 광주지법은 지난 7월 공사로 하여금 원고들에게 미지급된 수당과 퇴직금 등 모두 13억7000만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통상임금 소송 특히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재산정해 미지급된 임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신의칙 항변의 근거인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입증하기 위해 사용자가 제시하는 경영지표에 대해 근로자들이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노사관계에서 최우선 과제는 과거에도 지금도 여전히 상호신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