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스’ 다른 美 집단소송… 삐끗하면 벼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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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중기 ㅣ 산업뉴스 ‘클래스’ 다른 美 집단소송… 삐끗하면 벼랑길 한-미 제도, 적용범위·소송요건 등 달라 기업들 주의해야

기사입력2015-01-30 00:00

채송화 기자 (songhwa0123@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2013년 현대기아차는 북미 판매 차종의 연비를 과장해 표기해 미국 소비자들로부터 집단소송을 당했다가, 총 3억9500만달러(약 4191억원)를 보상하기로 합의했다. 현대차는 2011~2013년형 해당 모델 구매자들에게 2억1000만달러를, 기아차는 1억8500만달러를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2013년 대한항공은 미주 노선 항공료를 담합한 혐의로 미국 승객들로부터 집단소송을 당했다. 이에 담합기간으로 추정되는 2000년 1월1일~2007년 8월1일 미국에서 대한항공 항공권을 구입한 피해자들에게 6500만달러(약727억원)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28일 열린 ‘미국과 한국의 집단소송 현황과 대응방안 세미나’. ©중기이코노미

우리나라에서는 담합 등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위를 한 기업은 과징금을 부과받을 뿐 개인 소비자에게 직접 보상을 할 의무를 지지는 없다. 하지만 소비자가 쉽게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미국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국에선 소송감이 되지도 않을 사건으로도 미국에선 수백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피해액을 보상해야할 수 있다.

지난 28일 대한상공회의소, 법무법인 율촌, 미국 로펌 Gibson Dunn 등이 공동개최한 ‘미국과 한국의 집단소송 현황과 대응방안 세미나’에서 율촌의 윤용석 대표변호사는 “우리나라에는 집단소송이 가능한 분야가 증권밖에 없어 큰 부담이 되지 않는 반면, 미국은 제조물책임·환경·증권 등 집단소송의 범위가 매우 넓다”며 “원고의 범위가 명확히 한정되지 않고 보상액도 거액이어서 익숙지 않은 우리나라 기업들은 자칫 치명적인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집단소송 적용범위, 한국 ‘증권만’ vs 미국 ‘제한 無’

이날 율촌은 집단소송제도(Class Action)를 ‘원인이나 쟁점을 공통으로 하는 다수인들의 집단 가운데서 대표자가 나와 그가 그 집단에 속하는 총원을 대표해 위법행위의 금지나 손해배상 등을 청구하는 소송’으로 정의했다. 비슷한 피해를 입은 다수를 대표한 일부가 원고측 대리인으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대리인이 승소하게 되면 판결의 효력이 다른 원고들 모두에게 미친다는 것이다.

율촌 김세연 변호사는 “미국에서 집단소송이 진행되기 위해서 원고측은 ▲다수성 ▲공통성 ▲적절성 ▲전형성 등의 요건을 갖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원고측에 해당하는 사람의 수가 다수여야 하며(다수성), 이들에게 공통적인 법적쟁점(공통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원고측을 대표하는 대리인은 소송의 피해를 입은 당사자 중 하나여야 하며, 구성원 중 가장 공평하고 적절하게 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적절성·전형성)을 증명해야 한다.

집단소송 제도의 한미간 차이점

©중기이코노미

김 변호사는 “원고 대리인이 전형성·적절성을 충족하지 못했던 사례로 애플 아이튠즈 집단소송을 말할 수 있다. 특정기간에 아이팟을 구입한 사람들이 제소한 사건이었는데 정작 원고 대리인은 이 기간에 구매한 사람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다른 대리인을 찾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집단소송법은 증권관련 분야에 유일하게 적용되고 있는 반면 미국은 적용범위에 제한이 전혀 없다. 소비자에게 피해를 일으킨 행위라면 분야에 상관없이 일정 요건을 갖추면 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05년 국내 최초로 제정·시행된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한 손해배상에 대해 집단소송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집단소송 당사자는 총원, 구성원, 대표당사자로 이뤄진다. 총원은 손해의 보전에 관해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는 피해자 전원, 구성원은 총원을 구성하는 각각의 피해자를 의미한다. 대표당사자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 절차를 수행하는 1인 또는 수인의 구성원이다

한편 소송허가 조건도 한미 집단소송 간에 큰 차이가 있다. 국내 집단소송의 경우 소송을 허가받기 위해서는구성원이 50인 이상이어야 한다. 구성원 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 미국에 비해 상당히 어려운 조건이다. 미국도 집단소송 제기 요건으로 ‘다수성’을 갖추도록 하고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정확한 수를 정하고 있지 않다.

율촌 정태학 변호사는 “우리나라 증권관련 집단소송 허가요건을 살펴보면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중요쟁점이 모든 구성원에 공통돼야 하고 ▲해당 소송이 총원의 권리 실현이나 이익보호에 적합하고 효율적인 수단이어야 하며 ▲청구가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의 적용범위에 해당해야 하는 등에서는 미국과 비슷하다”면서도 “구성원이 50인 이상이 돼야 한다는 우리 법률의 요건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고 설명했다.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제기된 증권관련 집단소송 건수는 8건으로 10건이 채 되지 않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美 ·韓 로펌 함께 활용하는 것이 유리할 수도

미국과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우리 기업의 집단소송 노출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법률 전문가들은 한미 제도상의 상이점에 따라, 미국 로펌과 한국 로펌을 함께 활용하면 유리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율촌 이영석 변호사는 “미국에서 집단소송 당하게 되면 당연히 미국 로펌을 선정하지만 한국 로펌을 함께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며 “집단소송 경험이 있는 대기업들보다 경험이 일천한 중견·중소기업에겐 특히 이러한 방법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로펌이 유능한 미국 로펌을 선정하는 것을 돕고 생소할 수 있는 미국의 소송절차에 대해 중요한 사항을 단계별로 짚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국내 로펌이 미국 로펌과 함께 상의해 소송전략 수립을 도울 수 있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전략을 세울 때 미국 소송절차 외에도 국내 소송범위에 대한 이슈들까지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영업을 하지 않는 기업의 경우, 미국 판결에서 패소했어도 한국에서 집행을 당하지 않으면 당장 손해를 입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미국의 법, 한국의 법, 집행 이슈 등을 모두 고려하는 종합적인 전략수립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비용 문제로 국내 로펌과 미국 로펌을 모두 선임하는 것을 망설이는 기업들도 있다”며 “한국 로펌이 미국 로펌이 하는 역할이 달라 업무를 분담할 수 있고, 한국 로펌이 기업이 미국 로펌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 등을 대신 조절해 줄 수도 있어 오히려 경제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