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과 위생 나아가 신체와 지식에 관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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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보건과 위생 나아가 신체와 지식에 관한 대화 보건과 위생의 몽타주…차혜림의 ‘사후약방문’과 ‘채집-채굴’

기사입력2024-05-19 10:00

황재민 미술평론가 (inthebox28@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차혜림, ‘사후약방문’(2021) 전시 전경

올해는 연초부터 내리 감기를 앓았다. 기침을 달고 살기도 했고 열이 끓는 바람에 며칠을 누워서 보내기도 했다. 병원을 잘 찾지 않는 습관이 있어 감기 기운이 있어도 개의치 않았는데, 고열로 꼼짝도 못하는 동안 다음부터는 조금이라도 기미가 보이면 병원을 찾으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했다. 감기는 어떻게 감기가 될까?

나처럼 병원을 잘 찾지 않는 사람이라면 감기를 단순한 컨디션 저하로 오인,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반면 병원을 자주 찾는 사람이라면 감기를 빠르게 발견해 치료할 것이다. 감기는 모두 감기일 테지만 어떤 것은 그저 ‘컨디션 저하’이며 어떤 것은 ‘감기’가 된다.

인류학자이자 과학기술학자인 아네마리 몰은 질병이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통상 질병은 하나의 자명한 사실처럼 여겨진다. 질병은 우리 몸에 파묻힌 채 숨어 있다가 병원 등에서의 검사를 통해 발굴된다. 역사가가 문서고에서 잊힌 사료를 발견하듯, 고고학자가 땅 속에서 숨겨진 유물을 발견하듯, 은폐되어 있던 사실이 신체 내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그러나 몰은 질병을 이와 같이 이해하지 않는다. 질병은 여러 층위의 대화를 거치며 성립된다. 의사와 환자와의 대화는 물론이고, 내과 전문의와 외과 전문의와 병리학자 등의 주체가 대화하며 질병의 실체를 더듬어 나간다. 한 사람의 단일한 주체가 질병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주체들의 함께 하기를 통해 질병이 실체화된다는 게 몰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처럼 질병이 대화와 관계 속에서 구성되는 성격의 것이라면, 한 가지 흥미로운 상상을 해보게 된다. 일반적으로 의료 과정에 참여하지 않는 종류의 주체가 이러한 대화의 장에 개입한다면 어떨까?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제3의 누군가가, 예컨대 예술가가 개입한다면?

차혜림, ‘채집-채굴’(2022) 전시 전경

차혜림은 ‘사후약방문’(2021)과 ‘채집-채굴’(2022)이라는 전시로 공중보건이라는 개념에 질문을 던졌다. 보건 그리고 위생, 건강해야 하고 깨끗해야 한다는 것. 더할 나위 없이 지당하고 당연하게만 느껴지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당연함’이 자리 잡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일까? 작가는 한국의 근대를 배경으로 보건과 위생이라는 개념이 성립되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지 추적했고, 기록과 문헌 등 역사적 사료를 파헤치며 작업의 소재로 삼았다.

보건과 위생에 관한 탐구였으니만큼, 차혜림의 작업에서는 병균을 묘사한 이미지나 약재와 같은 이미지가 조형의 형태로 옮겨졌다. 무미건조하게 병균을 표현했던 과학적 이미지는 색과 두께를 얻었고, 산삼과 같은 약재를 그린 선전 이미지는 투명한 배경 위에서 선전의 의미를 잃고 나풀거리게 되었다. 차혜림의 작업은 보건과 위생 담론이 형성되었던 과거를 나름의 방법으로 불러냄으로써, 그것이 인간에 앞서 존재했던 진리가 아니라 역사와 관계 속에서 구성된 지식이라는 점을 새삼 되새긴다. 또한 과학적 이미지와 상업적 이미지를 함께 배치하면서 의외의 몽타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질병을 다루는 의료지식이 대화 속에서 성립하듯 보건과 관련된 사회적 관리의 지식 역시 과학, 광고, 입소문, 민간신앙 등의 대화 속에서 성립될 것이다. 차혜림의 전시는 이와 같은 지식의 참여자로 위치하며, 예외적인 형태의 함께 하기를 상상케 한다. 이것은 보건과 위생 그리고 예술에 관한 대화를, 나아가 신체와 지식에 관한 대화를 이끌어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황재민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