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메이슨 청구서를 왜 국민이 받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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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파트너 ㅣ 대기업·공기업 엘리엇·메이슨 청구서를 왜 국민이 받아야 하나 ‘삼성 불법합병’ 대가 제대로 치르게 하고, 후진적 지배구조 개선을

기사입력2024-05-16 00:00

김은정 객원 기자 (ejcong@pspd.org) ㅣ다른기사보기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이재용 회장 승계 목적의 ‘삼성 불법합병’을 위한 정경유착의 대가를 국민들이 치르는 모양새가 되고 있다.

줄잇는 ‘삼성 불법합병’ 손배해상 청구서

지난 4월11일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미국계 헤지펀드인 메이슨 캐피탈이 한국 정부에게 제기한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절차’(ISDS) 사건에서 3203만 달러(438억원)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중재판정부는 한국 정부의 개입행위로 인해 합병이 승인되었다고 보고, 국민연금에 대한 개입행위와 메이슨의 삼성물산 주식 관련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 및 손실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인정했다.

즉, 삼성 불법합병에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메이슨 측 주장을 일부 받아들인 것이다. 지연이자와 법률비용까지 합치면 배상비용은 약 8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해 6월 역시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의 1300억원 배상 판정에 이은 두 번째 결과다. 당시 엘리엇은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관료와 재벌간의 유착관계로 인해 해외투자자 및 한국의 연금가입자를 포함한 소수주주들이 손실을 입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며, 이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검찰 재직 당시 입증한 바라고 지적했다.

정반대 입장에 있던 이재용 회장과 국민연금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문제를 가장 먼저 제기한 바 있는 홍순탁 회계사에 따르면, “합병비율 결정은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다. 어떤 비율로 합병하든 합병 후 회사의 가치는 동일하기 때문에 합병비율 결정에 따라 어떤 한 주주의 지분율이 올라가면 다른 주주의 지분율은 내려갈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지분가치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합병비율이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라 이재용 일가의 통합 삼성물산에 대한 지분율과 지분가치에는 현격한 차이가 발생한다.

이재용 일가는 합병기준일에 제일모직을 42.2%, (구)삼성물산은 1.4% 보유하고 있었다.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비율이 도출될수록 이재용 일가에게 이득이 된다는 점은 능히 추정할 수 있다. 반면, 국민연금은 합병기준일에 (구)삼성물산을 11.2%, 제일모직을 4.8% 보유하고 있었다. 국민연금은 (구)삼성물산 지분율이 높았기 때문에 (구)삼성물산에 유리한 합병비율이 도출될수록 합병 후 지분가치가 올라가는 상황이었다. 즉, 국민연금은 이재용 일가와 정반대의 입장에 있었고, 이재용 일가에 이득이 생길수록, 국민연금의 손해는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이재용 일가와 국민연금의 이해득실은 1대0.35라는 합병비율에서 결정됐다. 합병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높게, (구)삼성물산의 주식은 낮게 평가되도록 삼성에 의해 주가조작, 분식회계, 거짓공시가 이뤄졌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물론, 삼성 불법합병 관련 1심 재판부는 중재판정부나 기존 대법원 판결에도 배치되는 다른 판단을 내놓았다). 이 뿐만 아니라 합병 성사를 위해 삼성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한 것은 이는 이른바 국정농단 사태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합병비율이 산출된 주가와 합병비율의 적정성을 판단하기 위한 보고서 등이 모두 이재용 회장의 승계를 위해 불법적으로 동원됐다. 이렇게 조작된 근거에 기반해 국민연금은 자신에게 손해를 끼치는 삼성 불법합병을 찬성한 것이다.

국내주주들과 국민연금의 손해는 어떻게 하나

진정한 기업 밸류업과 코리아디스카운트의 해소는, 한국 정부의 신뢰를 훼손하고 자본시장 질서를 교란한 삼성 불법합병의 대가를 제대로 치르게 하고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바로잡는데서 시작된다. ©중기이코노미

삼성 불법합병이 더욱 문제인 이유는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참여연대는 삼성 불법합병 과정에서 2015년 5월 작성(평가 기준일 2014년 12월31일)된 딜로이트안진과 삼정KPMG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 검토보고서’를 기반으로 적정 합병비율을 추산하고, 이재용 회장의 부당이익과 국민연금의 손실을 추산한 바 있다. 그결과, 제일모직과 (구)삼성물산의 적정 합병비율은 1:0.35가 아니라, 최소 1:1에서 1:1.36에 달했다. 이를 통해 이재용 일가는 최소 3.1조원~최대 4.1조원의 부당이득을 얻었고, 국민연금은 최소 5200억원~최대 6750억원의 손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손해액은 약 2021.5억원에서 최대 약 3212.2억원인데, 국민연금이 당시 소유한 제일모직 주식을 통한 상쇄효과를 고려하면 손해액은 약 1137.8억원에서 최대 약 1657.8억원으로 추정된다.

또한, 엘리엇과 ISDS 판정에서 중재판정부는 (구)삼성물산의 ‘적정주가’를 6만9300원으로 산정해 엘리엇의 손해를 약 687억원이라고 판단했다. 중재판정부가 산정한 ‘적정주가’로 국민연금의 손해액을 추정하면 2524.9억원이고, 제일모직 지분을 통한 상쇄효과를 고려하면 1357.7억원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점은 추산 방법에 따라 결과에 차이가 있지만, 삼성의 불법합병으로 인해 국민의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존재하는 국민연금이 분명한 손해를 입었다는 사실이다.

이재용 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구상권 청구 시급

정부는 불복절차를 통해 국제상설중재재판소 결정의 부당함을 다투고, 국민의 알권리 보장 및 절차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관련 법령과 중재판정부의 절차명령에 따라 판정문 등 본 사건 관련 정보를 최대한 공개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불복절차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국 정부는 엘리엇과 메이슨에 대한 배상액 2100억원에 더해 불복절차에 소요된 비용까지 물어줘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 배상액을 한국 정부가 부담할 것이 아니라, 불법에 가담하고 이득을 취한 자들에게 물어야 마땅하다. 참여연대 등이 삼성 불법합병과 이를 위한 정경유착에 가담한 이재용 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 등에게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정부가 이를 위해 나서지 않는다면, 이재용 회장은 합병으로 인해 수 조원의 부당이익을 얻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뒤집어 쓰게 된다. 이게 바로 ‘이익의 사유화, 위험의 사회화’이다.

엘리엇과 메이슨의 청구서는 국민들이 아니라 뇌물을 제공했던 이재용 회장과 삼성, 뇌물을 받고 국민연금에 외압을 행사한 박근혜 정권, 국민노후자산의 수탁자로서 임무를 배신한 당시 국민연금기금 책임자의 손에 쥐어주어야 한다. 그것이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진정한 ‘기업 밸류업’은 후진 지배구조 개선부터

이재용 회장의 승계를 위해 불법합병이 이뤄지고 국민연금이 동원된 것은 그야말로 저열한 정경유착의 결과다. 또한 코리아디스카운트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형편없는 지배구조 탓이기도 하다.

삼성 불법합병으로 국민연금이 잃은 국민 노후자금의 손실을 보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사회의 중요한 과제는 앞으로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정부는 기존 판결과 중재판정부 등을 기반으로 삼성 불법합병으로 인한 손해를 추산하고, 손해배상 청구를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엘리엇은 “현 정부가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계속해서 부패와 싸워 나가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대한민국이 보다 투명하고 믿을 만한 외국인 투자처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일개 외국 헤지펀드에게 우리가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요즘 윤석열 대통령은 목 놓아 기업 밸류업을 외치고 있다. 진정한 기업 밸류업과 코리아디스카운트의 해소는, 한국 정부의 신뢰를 훼손하고 자본시장 질서를 교란한 삼성 불법합병의 대가를 제대로 치르게 하고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바로잡는데서 시작된다.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에 손을 대지 않은채, 정경유착으로 인한 손해를 국민들의 혈세로 부담한다면, 경제정의와 경제민주화는 그만큼 또 후퇴할 것이다. 또한 코리아디스카운트로 인한 기업가치 평가 절하는 해결되지 않고, 외국인 투자자 소송은 반복될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