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시대·창조산업, 예술가가 길잡이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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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예술 ㅣ 아트 콜라보레이션 "융합시대·창조산업, 예술가가 길잡이 역할" [기업과 예술의 만남:아트 콜라보레이션] ⑦융합시대 예술가

기사입력2014-03-15 06:00

(주)예술만세 기자 (artmanse21@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융합(Consilience)에 대한 필요성이 사회에서 강조될 때마다 많은 기관과 전문가들은 새로운 융합형 인재를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과연 그 융합형 인재는 누구이며,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명확한 대답은 없다. 그저 스티브 잡스나 빌게이츠 같은 인물들이나 아주 먼 조상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떠오를 뿐이다.

그리고 새로운 산업, 근래에 들어 창조산업으로 인식되는 것에는 이전과는 다른 기적적인 상상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상상’과 ‘창조’라는 단어는 아주 매력적인 단어가 됐고 누구나 이것들을 생성하는 것이 미래를 살아나가는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이 두 가지의 키워드가 익숙한 예술가들과 디자이너들에게는 이러한 현실이 그리 녹록한 것만은 아니다.

KT 광화문 미디어 파사드

예술계에서 ‘상상’과 ‘창조’라는 단어는 지금도 매우 매력적인 단어지만 예술이 말하는 ‘상상’과 ‘창조’는 과학, 경제, 사회가 사용하는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들이 ‘융합’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 수많은 분야에서 이야기되는 ‘상상’과 ‘창조’라는 단어는 도리어 예술가들과 디자이너들의 상상력을 제어하는 피로감으로 몰려온다. 마치 특정 기술이나 첨단 디지털 요소를 접목시켜야만 창조적인 예술인 것으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다.

상상력과 창조성을 바탕으로 한 융합예술

얼마 전부터 거론된 융합예술을 첨단기술산업과 예술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이미 우리의 생활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신사임당의 초충도에 그려진 나비를 실제로 나는 것처럼 구현한 HD영상작업, 온도감지 센서와 디지털 제어 기술을 통해 탄생한 인터렉티브한 디지털 키네틱 벽화 작업, 서울시 곳곳에 구현돼 있는 미디어월 등은 이러한 ‘융합’을 시각지향적인 모델로 지향하고 구현한 디지털 미디어의 적용사례로 들 수 있다.

금호아시아나 외벽 미디어 파사드

그와 더불어 첨단기술의 시각적 구현과 경험에 국한돼 있었던 ‘융합’의 개념을 넘어서 공연예술과 쇼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게임국제대회 등은 기존의 디지털 미디어의 기술을 확산하고 다수의 대중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대형의 퍼포먼스들로 전환됐다. 또 IT기술의 진화된 형식들은 실제적으로 3차, 4차 산업으로 확장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이제는 싸이의 공연이나 전통 부채춤 공연장의 미디어월에서 유명한 작가들의 콜라보레이션 작업들을 보는 것은 익숙한 모습이다. 또 서울에서든 뉴욕에서든 아티스트들이 첨단기술을 접목해 만든 백화점 광고물들을 보는 일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이러한 첨단 기술효과들을 극대화하기 위해 온갖 철학과 이론들을 동원하는 것에 총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미디어 기술을 통해 과도하게 대형화되고 산업화된 결과물에서 나타나는 기술 소비적 형식의 영향(Impulse)들, 이것들은 ‘상상’과 ‘창조’의 미학적 키워드로 풀어낼 수 없는 예술작품이 가지는 예술성, 독창성, 기술성과는 다른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다수의 대중, 즉 전통적인 미학담론과는 별 상관없어 보이지만 생산된 콘텐츠의 수요에 있어서는 파급효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대의 ‘미’적 가치와 판단의 중요한 논의점이 된다.

또한 무한대로 연결되고 퍼져나가는 SNS와 인터넷 환경 속에서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예술의 접목 현상들은 좀 더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최근 융합예술의 현상들이 새로운 시대정신을 표출하고 사회적 변화를 추구하는 에너지로서 상상력과 창조성을 바탕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인지를 비평적인 시각에서 점검해야 한다.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한 레디메이드 작품

마르셀 뒤샹_ 샘 Fontane

현대에 들어서 인간들의 삶에서 기능하는 미적 판단의 가치들은 ‘친근한 것’들을 찾아가는 행위에서 ‘낯선 것’들을 찾아가는 것으로 바뀌었다. ‘낯선 것’을 예술 역사에서 하나의 터닝 포인트로 작동하게 한 것은 바로 뒤샹 작품 <샘 Fontane, 1917>이다. 당시의 프랑스 살롱전에 연속 낙선한 그가 도리어 자신의 작품을 미국 독립 예술가 협회에서 주최한 《앙데팡당전》에 처음 출품하게 되면서 알려진 것이다. 지금도 이 작품은 비록 원본이 아니지만 1960년대 다시 주문 생산되었는데 소변기에 자신의 이름대신 ‘R. MUTT 1917’이라고 서명했다. R. MUTT는 이 변기를 만든 욕실용품 제조업자의 이름이었다.

이전에도 뒤샹은 기성제품을 예술적 사물로 바라보고 그것을 작품으로서 전시장에 배치하고 설치했다. 이미 그는 1914년 우윳병을 건조할 때 사용하는 철 구조물 <병 건조대>와 1915년 눈을 치울 때 쓰는 삽을 사용한 <부러진 팔 앞에서>라는 것을 전시했고 미술사에서는 이것을 ‘레디메이드’라는 개념과 용어로 일컫는다. 일상의 사물을 예술품의 반열에 올려놓는 것은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함으로써 ‘예술’이 그 당시까지의 ‘재현’적 가치를 넘어서 사유와 상상을 ‘제시’하고 ‘발언’하는 적극적인 의식이라는 것으로 확장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레디메이드 작품들은 현대미술의 기수가 된다. 그러나 뒤샹은 레디메이드 작품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하지 않았다. 뒤샹은 병 건조대를 만든 ‘기술자’ 그리고 아름다운 소변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도자기술 ‘장인’, 이러한 기술과 상품들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상인’들이 그의 작품의 동업자라고 생각했다.

인간을 위한, 인간을 기초로 한 적정기술

‘상상’과 ‘창조’는 ‘융합’을 찾아 머나먼 길을 떠나는 방랑자의 보따리가 아니다. 그것에 대한 필요와 수요는 이미 우리 삶의 공간에 깊숙이 자리잡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지점에서 이미 시작됐다. 뒤샹이 예술작품 속에 공동창작자로서 장인, 기술자, 상인들을 거론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오늘날의 첨단제품 속에서 ‘예술가’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잡스를 ‘창의성(Creative)’을 제외하고 생각할 수 없듯이 애플사가 만든 제품들에서 ‘창의적 디자인’을 제외할 수가 없다. 애플사의 디자이너이자 부사장인 조나단 아이브는 새로운 ‘미’적 의식을 창의적으로 구현하는 ‘예술작품’으로 애플의 제품들을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애플사의 디자인팀에 있었던 수많은 이름없는 ‘디자이너’들이 창조한 ‘사물(Thing)’이 또 다른 영감과 소통을 만들 수 있다고 광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애플사의 첨단제품이 갖는 새로운 기능과 외형 디자인이 예술적 가치로 승화되었다고 완벽한 승리의 깃발을 넘겨줄 수는 없다. 왜냐면 예술이 추구하는 미적 가치는 동시대적인 문제의식을 공감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근원적인 사유와 성찰을 통해 표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종문화회관 미디어 파사드

이러한 지점에서 사회와 함께하는 기술을 마주한 인간이 기술적 대상을 취하는 ‘소비자’가 아니라 기술과 관계를 맺는 ‘사용자’이자 ‘동반자’임을 깨닫도록 하는 기술의 개념이 있다. 그것은 진정한 인간을 위한, 인간을 기초로 한 디자인의 영역으로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이라고 부른다.

그 중 애플사 맥북의 10분의 1도 안되는 가격에 최근 태블릿 PC로도 출시된 ‘XO-1 컴퓨터’는 첨단기술에 소외된 아이들의 교육용 컴퓨터로 사용되고 있다. 이 컴퓨터의 제작자인 앨런 케이는 아이들의 행동을 직접 관찰하고, 아이들이 사회적 구조에 얽매여 사는 어른들과는 다른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성장해간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가능한 직관적인 인간본성에 더 가까운 컴퓨터 이용방법과 인터페이스 방식을 접목시켜 새로운 컴퓨터를 만들어 냈다. 그와 더불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디자인과 가격으로 제작했다. 일명 OLPC(One Laptop Per Child) 프로젝트는 ‘상상’과 ‘창조’의 힘을 그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활용한 적정기술 디자인의 사례다.

‘상상’과 ‘창조’의 그물망 속 접점을 만드는 창작자

오늘과 같은 최첨단의 시대에서도 지구 환경파괴와 자원의 한계, 세계경제의 불균형, 질병과 기아의 문제, 노동과 부의 분배의 문제 등은 새로운 해결점이 제시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어떠한 진보적 기술도 세계에서 동일하게 발생되는 문제들을 해결해 내는 기적의 제품을 만들지 못했다. 그리고 갑자기 100달러짜리 랩톱이 세상을 바꿀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얼마 전 한 신문에 “인공지능(AI)은 이번 세기 인류의 가장 큰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라는 셰인 레그의 말이 실렸다. 레그는 구글이 4억달러를 주고 인수한 영국의 AI업체 딥 마인드의 공동창업자이다. 그는 고도의 첨단기술의 발전, 상용화, 산업화가 도리어 인간의 삶과 역할들을 더 궁핍하고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걱정했다.

칼럼리스트 마틴 울프 역시 2014년 2월5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에 발표한 글에서 “인간과 가축의 물리적 노동력을 대체했던 1차 로봇혁명에 이어 지능을 대체할 2차 로봇혁명이 임박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격변기에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복지 강화보다는 ‘로봇이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을 한 것이다.

필자는 울프의 화두를 받아서 ‘로봇이 할 수 없는 일’ 그것은 ‘상상’과 ‘창조’를 할 수 있는 일이며 그것의 중심은 ‘예술’이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상상’을 통해 예술을 ‘창조’하는 예술가들은 이러한 융합시대의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라 확신한다.

융합시대의 예술가나 디자이너는 첨단기술을 탑재한 미적 사물과 공간을 생산하는 ‘미’의 기술자가 아닌 학문간, 전문분야간의 소통과 교류를 형성하는 공간의 틈새(Niche)를 만드는 창작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창작자들은 특정 영역을 경계짓는 ‘융합’예술가로서 이름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소통과 변화에 대한 동시대적 인식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창조적 에너지로 환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들이 이 세계의 다자간의 에너지를 생성하고 환원할 ‘상상’과 ‘창조’의 그물망 속 접점(Cross point)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성원선 전시기획자, 미술비평가 swonsun@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