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대신 칼로 그린 ‘밝고 힘찬’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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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붓 대신 칼로 그린 ‘밝고 힘찬’ 세계 [그림을 읽다:Artist] <56>이해은 작가

기사입력2016-08-12 12:20

이유미 객원 기자 (kissgallery@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Now Iam Surfing, 65x50cm, oil on canvas, 2016

나는 여행 중에 어떤 장면을 담아두려고 스케치를 한다. 왔다갔다는 표시를 해두고 싶은 것이다. 지금 보고 있는 것에 대한 세세한 기억을 담아두기 위해서 앞집의 대문모양이나 테라스에 널려있는 나의 물건들을 스케치한다. 그렇게 스케치를 하는 순간만큼은 몇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또 그런 기억들은 작업의 아주 중요한 소재가 되고 있다.

2012년부터 비행기를 타고 여행다운 여행을 가 본적이 한 번도 없다. 일상은 어떻게 보면 영원히 나올 수 없는 감옥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매일 지니고 있는 비행기 티켓 같기도 하다.

What a pleasant day, 73x61cm, oil on canvas, 2016

상상의 나래를 펼치려면 나를 탄탄하게 지탱해주는 안전벨트 같은 역할을 하는 일상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일상이 뒷받침 해준 덕에 나온 나만의 상상의 세계다.

나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나 자신을 정말 행복하게 만드는 작업을 먼저 한다. 마치 시를 쓰듯이 그동안 해왔던 스케치를 가지고 색 조합을 하며 영감을 떠올리고 이미지들을 엮어서 만들어본다.

이번 작품들은 붓 대신 나이프를 주로 썼다. 주로 다리가 있는 풍경, 윈드서핑, 숲에 둘러싸인 마을 이미지다. ‘Knife’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칼’인데 어감이 참 섬뜩하다. 나는 그 의미를 좀 다르게 해석해보았다.

Nice red bridge, 72.5x53cm, oil on canvas, 2016

사람이 살아있는 것은 칼과 닮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딘 칼날을 늘 날카롭게 해야 칼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세상이 그럴 듯하게 움직이려면 사소하고 소소한 일상 따위는 조금도 봐주지 않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것이 인간다운 삶인가? 그러한 아이러니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칼같이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칼이 갖는 무서운 이미지보다는 그 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 그림을 보면 굉장히 밝고 힘차고 리듬감이 넘친다. 붓 대신 칼로 그리니까 새로운 세계가 캔버스에 펼쳐지는 느낌이다. (작가노트 중)[정리=키스갤러리 이유미 아트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