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적 자연관과 가치관을 고유양식으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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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동양적 자연관과 가치관을 고유양식으로 표현 [그림을 읽다:한국화] ⑩조선시대 회화의 흐름

기사입력2016-10-27 15:11

오민수 객원 기자 (dat1127@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한국회화사에서 조선시대 회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그 이유는 조선왕조의 숭유억불 정책과 성리학의 발달, 상층문화와 기층문화의 교류 등을 크게 뽑을 수 있는데, 이런 사회적 상황은 실경산수화를 비롯하여 문인화, 풍속화, 민화 등의 생성과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 회화의 전통을 발판으로 중국의 다양한 화법(畵法)들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한국 특유의 미의식을 발휘한 새로운 개성적인 화법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글에서는 조선 초기, 중기, 후기, 말기로 나누어 시기별 특징과 전개된 양상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조선 초기 <몽유도원도>, 중기 <노수서작도>가 대표작

안견 <몽유도원도> 38.7×106.5cm, 비단에 수묵담채 1447년(중요문화재 제1152호, 소장처 : 일본 학교법인 덴리 대학)

조선 초기(1392년~약 1550년)에는 고려시대에 축적되었던 중국의 화풍이 다수 전승되었으나, 중국의 화풍을 철저히 소화하고 수용하여 중국회화와는 완연히 구분되는 특색 있는 독자적 양식을 발전시켰다. 대표 화가로는 안견을 들 수 있는데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이다. 이 작품은 안평대군이 1447년 음력 4월20일에 꿈속에서 도원을 여행한 후 그 내용을 안견으로 하여금 그리게 하고 당시의 명사들을 시켜 찬시를 짓게 한 것으로 당대의 대표적 명사들이 자작시를 자필로 써 넣은 것 등 모두 23편의 찬문이 곁들여져 있다. 그러므로 몽유도원도는 하나의 그림으로서만이 아니라 시, 서, 화 삼절이 모두 갖추어진 일종의 종합예술이다. 이 작품은 세종조의 문화는 물론 조선 초기의 문화를 대변하는 금자탑이라 할 수 있다.

조선 중기(1550년~약 1700년)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정유재란, 정묘호란 등 대란이 잇달아 생기고 사색붕당이 계속되어 정치적으로도 매우 불안한 시대였다. 이 시대에는 강희안 등에 의해 수용되기 시작한 절파계화풍이 김시, 이경윤, 김명국 등에 의해 크게 유행하였고 이정근, 이흥효, 이징 등에 의해 조선 초기의 안견파화풍이 추종되고 있었으며, 이암, 김식, 조속 등에 의해 영모나 화조화 부분에 애틋한 서정적 세계의 한국화가 발전하였다. 묵죽, 묵매, 묵포도 등에서도 이정, 어몽룡, 황집중 등의 대가들이 꽃을 피웠다. 이밖에도 중국 남종 문인화가 전래되어 소극적으로나마 수용되기 시작했다.

조속 <노수서작도> 58.3×113.5cm, 비단에 수묵, 17세기(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

중기의 회화에서 또한 크게 주목되는 것은 조선시대적인 정취를 짙게 풍겨 주는 영모나 화조화가 발달했던 사실이다. 대표 작품으로는 조속의 <노수서작도(老樹棲鵲圖)>이다. 화면을 메우듯이 펼쳐진 나뭇가지들과 엽군(葉群)들, 쌍쌍이 마주 앉은 까치들, 삼각형의 잎새들, 채색을 배제하고 수묵으로만 이루어진 묘사법 등이 돋보이며 이 시대 화조화의 경향을 대변해 준다. 조속의 이러한 화조화는 그의 아들인 조지운과 그 밖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 대두…말기는 김정희의 남종화단이 지배

조선 후기(1700년~약 1850년)의 회화는 명(明)·청대(靑代)의 회화를 소화하면서 보다 뚜렷한 민족적 자아의식을 발현했던 미술로 문인화(文人畵), 남종화(南宗畵)가 본격적으로 유행했다. 또한 남종화법에 기반을 두고 우리나라에 실제로 존재하는 산천을 독특한 화풍으로 표현한 진경산수(眞景山水)가 대두하였다.

풍속화(風俗畵)가 풍미하였으며, 민화가 사랑받고 널리 유행하였다. 부분적으로 서양화법(西洋畵法)이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남종화법의 전개에는 남종문인화론이 뒷받침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형사(形似)보다는 사의(寫意)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대두되어 참신한 화풍의 태동을 가능케 하였다. 후기의 강세황, 이인상, 신위, 그리고 말기의 김정희 등은 남종화의 유행을 부채질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18세기의 화가들 중에서 남종화의 발전에 누구보다 크게 기여한 인물은 강세황이다. 강세황은 산수화, 자화상을 비롯한 인물화, 화조화, 사군자 등 다양한 그림을 그렸다. 18세기 남종화에 강세황과 쌍벽을 이루었던 인물이 이인상이다. 조선후기에는 화원 출신들도 남종화풍을 구사하였다. 이재관은 도화서에 속하지 않은 화가로 그의 작품을 보면 남종화의 정신세계와 기법을 제대로 소화하여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켰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남종화법을 토대로 발전된 전형적인 한국적 회화가 바로 진경산수화(實景山水畵)이다.

조선시대 말기(1850년~약 1900년)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많은 시련과 혼란이 엄습했던 때로서, 회화에서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던 시기였다. 우선 이 시기에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종래에 융성했던 진경산수화와 풍속화가 급격히 쇠퇴하게 된 점이며, 김정희(金正喜)의 영향력으로 인한 남종화 우월 풍조가 화단을 휩쓸게 되어 남종화가 주도적인 세력으로 미술계를 지배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김정희 <세한도> 23.3×108.3cm, 지본수묵 1844년(국보 제180호, 개인소장)

이 시대에도 전통은 소극적으로 계승되었으나 충분히 활용되지는 못하였음이 진경산수화와 풍속화에서 확인된다. 조선 후기에 그토록 뚜렷하게 자리를 잡고 한국적 화풍의 형성에 기여하였던 진경산수화와 풍속화가 어느 정도 이 시대에도 전해져 일부 화가들이 제작하기는 하였다. 남종화단을 지배했던 김정희의 대표작으로는 <세한도(歲寒圖)>와 <부작란(不作蘭)> 등이 있다.

세한도는 추사가 귀양살이 할 때 변함없이 그를 따르던 한 한역관(漢譯官)에게 그려준 그림이다. 언뜻 보기에는 엉성하게 보이는 작품이지만, 그 엉성하게 그어진 갈필의 먹선과 그 선이 이룬 형태가 그림에 담긴 의미 있는 주제와 어울려 고도의 예술적 에너지를 함축하고 있다. 비스듬히 사선 방향성을 취하며 그려진 집의 좌우에는 각각 나무 두 그루씩이 그려져 화면을 구도적으로 짜임새 있게 묶어 주고 있다. 갈필로 그린 고송의 휘어진 자태와 수직으로 자란 소나무는 한데 어울려 선비의 기개와 예술적 감성이 조화를 이룬 회화적 운치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운치는 이 두 그루의 소나무 다음에 이어서 그린 소박하고 간결하게 형상화된 집의 형태에 의해 훨씬 분위기 있게 강조되고 있다.

조선시대 회화는 오랜 기간 동안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주변 국가들의 다양한 문화를 흡수하며 우리 민족의 독특한 문화로 발전해 왔다. 문화에는 그 민족의 미적 감각과 정신이 담겨 있다. 이러한 문화는 다음 세대의 가치 창조의 원동력이자 전통이 되어 민족의 정체성을 일깨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시대 회화란 우리나라의 동양적 자연관과 가치관, 그리고 민족혼의 정수를 한국의 전통적이고 고유한 양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전통회화는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다양한 문화적 특징과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수많은 대가들을 배출하며 독특한 조선풍의 고전적 조형성을 완성하였고 우리 민족 미술 특유의 민족적 형식미와 독창성을 이끌어 냈다. 또한, 조선시대는 전대에 비하여 가장 많은 미술 유적을 남기고 있어 전통회화 연구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