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페 디엠과 메멘토 모리 그리고 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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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카르페 디엠과 메멘토 모리 그리고 풍선 [그림을 읽다:Artist] <66>기진호 작가

기사입력2017-04-04 17:07

이유미 객원 기자 (kissgallery@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왜 풍선을 그리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럴 때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과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용어를 들어 설명한다. 카르페 디엠, ‘지금을 즐겨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현재에 대한 집중은 죽음을 향해가는 인간이 벌이는 시간적 저항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축제로 향유하고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지 않는 상태에 다다름으로써 영원한 시간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죽음 앞에서 예외일 수가 없다. ‘죽음을 생각하라’는 메멘토 모리는 카르페 디엠의 덧없음을 상기시킨다.

풍선-1, 162.2 x 130.3 cm, 유화, 2012

‘풍선’은 축제가 벌어지는 곳에서 흔히 사용되는 물건이다. 축제의 즐거움을 고조시키면서도 그 순간이 지나면 속절없이 스러지게 될 운명을 지닌 풍선은 카르페 디엠과 메멘토 모리 사이에서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는 인간의 삶을 은유한다. 적절히 부푼 풍선은 욕망 추구와 절제 사이의 균형감을 환기한다. 오색 풍선은 각양각색의 삶을, 그러면서도 유사한 형태로 반복되는 풍선은 별다를 것없는 인생을 표상한다.(작가노트 중)

‘풍선-1, 2, 3’은 풍선 연작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작가는 풍선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삶의 양태를 표현하고자 했다. 풍선은 과도하게 부풀면 터져버리고 덜 부풀면 볼품이 없게 되는 속성을 지닌다. 따라서 풍선은 욕망의 추구와 절제 사이의 긴장감을 환기하는 이중적 메타포를 지닌다. 가지각색의 풍선이 서로 다른 삶의 꿈과 희망을 표현한다면, 동일한 형태의 반복은 획일적인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은유한다.

풍선-3, 72.7x90.9cm, 유화, 2013

‘풍선-1’은 제13회 개인전의 대표작으로서 12개의 풍선이 규칙적으로 배열된 작품이다. 풍선들과 그것들이 만들고 있는 그림자의 반복은 엄격한 편안함을 느끼게 하며, 또한 유사성과 차이의 변주는 화면에 리듬감을 부여한다.

부푼 풍선 사이로 바람 빠진 풍선이 등장한다. 얼핏 쪼그라든 풍선은 관람자로 하여금 욕망한 후에 다다르게 되는 삶의 공허함을 불러일으키는 듯하지만, 바람이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리를 지키는 당당함을 드러내는 매개물이기도 하다. 기껏 바람 한 줌 빠졌을 뿐이다.

형상은 언제나 같지만 매번 새로운 형상이다. 형상은 지루하지만 지루하지 않다. 같지만 새롭고 지루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것, 그것이 형상이다. 이것은 말장난이 아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반복은 고유한 리듬을 낳는다. 그 리듬이 차이를 만들어낸다. 반복과 차이 사이에 리듬이 있다.(중략) 차이로 인해 반복은 무한회귀한다. 반복은 되돌아오면서 미세한 차이를 낳고 다시 자기 난 자리로 돌아가며 반복운동을 한다.(중략)

반복과 반복 사이, 미세한 차이는 각질을 부드럽게 하고 세계를 감싸안는다. 마찬가지로 차이와 차이 사이, 미세한 반복은 교조에의 추락을 막고 다시 세계로 걸어나갈 수 있도록 힘을 준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작업이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반복과 반복 사이, 미세한 차이는 유행의 강박을 견디게 할뿐더러 유행과 세계사이에 가로놓인 심연을 사유하게 한다. 차이와 차이 사이, 미세한 반복은 파편으로 치닫는 세계의 심리적 방어선이기도 하다.(후략) [풍선 연작 평론:이정현]

‘풍선-3’에서 오색 풍선들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이 두둥실 떠 있다. 제각기 다른 빛깔로 부푼 꿈들이 하늘거린다. 이 풍선들이 흩어져 언젠가는 바람이 빠져 결국 사라질 운명이라 한들 어떠랴. 서로 다른 채로 다 함께 공존하는 이 순간은 희망이다.

상황 53.0x65.1cm 유화 2013

이 작품에서는 균일한 크기의 풍선들이 화사하고 산뜻한 색의 구성과 함께 극사실주의와 리얼리즘의 경계에서 반복적 리듬을 자아내며 밀도있는 배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모노톤을 바탕으로 채도와 음영의 대비만으로 견고하면서도 차분한 색의 운율을 형성하고 미니멀리즘에서 볼 수 있을법한 건조하면서도 다소 절제된 조형에 대한 접근은 주관적 감성의 과잉을 경계하는 대신 은근하면서도 다소 우회적인 회화적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듯 보인다. ‘풍선’이란 오브제에 대한 남다른 사유와 이를 화면에 도입하여 일관되게 연작을 이어나간 점은 그가 ‘모티프’에서 고유성을 확보하는데 기여했다.(김정휘 평론)

기진호는 ‘풍선 연작’과 더불어 ‘마네킹 연작’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 생활 곳곳에 존재하는 마네킹은 실재의 대용물이면서 동시에 실재 그 자체로서 존재한다. ‘마네킹 연작’에서 인공물은 자연물을 닮았고, 자연물은 인공물을 닮았다. 말하자면 화가의 화폭에서 마네킹은 실재와 허구, 자연물과 인공물의 경계를 교란하는 존재로 등장하고 있다. 현대적 공간에서 인공과 자연, 그 둘을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상황’은 쇼윈도우에 있는 두 마네킹을 통해 소통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앞쪽의 마네킹에는 입과 귀가 있으나 뒤에 있는 마네킹에는 없거나 불분명하다. 이는 소통에서의 비대칭성 혹은 소통 부재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두 마네킹이 서로 깊이 연루되어 있어 음성언어의 한계를 초월한 깊은 교감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정리=키스갤러리 이유미 아트컨설턴트]

Artist Profile-기진호

1968년 출생

서울교육대학교 졸업

홍익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 전공 졸업

개인전

16회 개최:빛갤러리, 메이준갤러리, 예술의전당(서울), 탐갤러리 외. 서울, 1989~2012

주요 그룹전

아트제주16, 제주도, 2016

블랑블루 호텔 아트페어, 서울, 2014

코리언 모던 아트쇼, 홍콩, 2014

파운틴 아트페어, 뉴욕, 2014

싱가포르 아트페어, 싱가포르,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