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디스…먹튀기업 제재 심각하게 고민해야”

프린트

Live 중기 ㅣ 지금 중기에선 “하이디스…먹튀기업 제재 심각하게 고민해야” 중국·대만자본에 12년동안 모두 털려…공장폐쇄, 335명 정리해고

기사입력2017-07-25 19:37

김성화 기자 (rukawasss@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하이디스테크놀로지㈜(이하 하이디스)는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와 함께 국내에서 TFT-LCD(초박막 액정표시장치)를 생산했던 회사다. 스마트폰 등의 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수적 기술로 평가되는 FFS(광시야각)원천기술을 보유해 기술력도 인정받었다. 초우량기업이었던 하이디스가 외투자본에 의해 기술이 유출되고, 사실상 근로자 모두가 해고됐던 일련의 과정은 외투자본이라면 무조건 환영했던 정부정책의 실패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1989년 현대전자 LCD사업본부로 사업을 개시한 하이디스는 2001년 현대디스플레이테크놀로지로 분사했고, 2003년 중국 BOE에 매각했다. BOE는 2006년 경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하이디스의 부도를 선언하고, 회생절차를 진행하던 도중 2008년 하이디스를 대만의 E-Ink에 매각했다. 하지만 E-Ink는 2012년 이후 매출액이 줄어 적자가 커졌고, LCD패널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이유로 2015년 1월 공장폐쇄와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정리해고 대상은 당시 377명의 근로자중 지적재산권 관리 및 공장시설 유지 등을 위한 업무를 담당했던 42명을 제외한 335명 전원이었다.

지난 6월16일 수원지방법원은 하이디스의 정리해고에 대해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없는 정리해고’라며 해고노동자 58명이 제기한 해고무효확인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하이디스의 공장폐쇄와 정리해고에 이르는 과정을 좀 더 들여다보면, 경영상 이유로 공장을 폐쇄했다기보다는 E-Ink가 ‘기술만 챙긴 먹튀었다’ 의혹이 제기할 수밖에 없다.

©중기이코노미

E-Ink, 공장인수 후 제품을 팔지않고 기술만 팔아먹어

E-Ink는 하이디스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주장하지만, 하이디스의 기술을 세계시장 경쟁자에게 넘겨주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였다. 2012년에서 2014년 사이, LCD 세계시장 점유율 3위인 Innolux, 4위 Sharp, 5위 AUO, 6위 CPT와 라이선스 공유계약을 맺었으며, 2015년에는 삼성디스플레이와도 공유계약을 맺었다. 매출액이 줄고 적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시점인 2012년부터 E-Ink는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한 것이 아니라, 경쟁사들에게 본격적으로 기술을 팔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25일 국회에서 열린 '하이디스 사태로 본 외투자본 문제점과 입법방향' 토론회에서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하이디스의 기술료수입은 100억원이 되지 않았다. 그랬던 것이 2012년 약 200억원에서 2013년 600억원, 2014년 1200억원, 2015년 1000억원, 2016년 800억원으로 기술료수입이 급증했다. 반대로 R&D 투자액은 2012년 140억원, 2013년과 2014년 80억원, 2015년과 2016년 40억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설비투자 역시 2011년 100억원에서 2012년 20억원으로 급감한 이후 2016년에는 아예 투자를 하지 않았다. 하이디스는 이제 이천사옥에서 지적재산권 관리직원 등으로 구성된 인력만 고용하고, 생산라인 가동은 대만공장에서만 하고 있다.

한지원 연구위원은 “현재 추이로 본다면 하이디스의 기술료수입에 따른 누적 당기순익은 2017년 276억원, 2020년 781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며 “2013년부터 하이디스 매출이 급감한 것은 E-Ink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세계경제 위기와 중국 LCD업체의 과잉투자로 인한 생산단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산 대신 기술특허권 장사로 경영전략을 변경했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BOE, 하이디스의 기술 빼돌려 중국내 2위 기업으로 성장

E-Ink 이전 하이디스를 인수했던 BOE 또한 기술먹튀 의혹의 당사자였다. BOE는 2003년 하이디스 인수 후 2005년 중국에 새로운 생산라인 구축을 완료 한 시점, 이듬해 2006년 하이디스를 부도처리 했다. 한국의 생산기술을 자국으로 이전하기 위해 하이디스를 인수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생산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린 결과, BOE는 브라운관을 만드는 작은 회사에서 첨단 디스플레이부문 중국내 2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세계적 원천기술을 가진 잘나가는 하이디스가 2003년부터 2015년까지, 12년동안 외투자본의 기술먹튀를 위한 제물로 바쳐진 셈이다.

25일 국회에서 열린 '하이디스 사태로 본 외투자본 문제점과 입법방향' 토론회에서는 외투자본의 기술유출과 이에 따른 근로자들의 피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중기이코노미

기술력을 가진 하이디스가 외투자본의 먹잇감이 된 것은 외투자본 마음대로 철수해도 받는 불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외투자본이 쉽게 인수해 돈을 벌고, 쉽게 도망가도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얘기다. 이날 토론회에서 국회 산업통산자원위원회 조배숙 의원(국민의당)은 “기업유치를 목표로 외투자본이 들어온다고 하면 법인세 감면에 지원금 등 특혜를 준다. 하지만 막상 이들이 기술만 빼먹고 먹튀하고, 고용문제는 정리하지 않고 철수했을때 근로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는 마련돼 있지 않다. 우리나라 법은 외투자본에 관대하다”고 주장했다.

“견제장치 없어 어려움과 고통은 근로자가 떠안아야 한다”

이어 조 의원은 “미국은 경우 국가경제에 위해로운 부분은 투자를 받지 않는다. 또 불합리한 구조조정이라고 판단될 경우에는 지원금을 회수한다. 프랑스는 종사자 1000명이상 외투기업이 철수할 때, 사용자가 사업인수자를 직접 찾아야 하며, 폐쇄시 정당한 사유를 사용자 측에서 설명하고 입증해야 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외투자본 유치를 위한 여러가지 유인책은 있지만, 합리적 이유없이 철수하는 데 견제장치가 없다. 결국 어려움과 고통은 근로자들이 떠안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날 이찬열 의원(국민의당)도 “이제 정부의 역할이 있어야 되지 않나 생각을 한다. 외투자본 유치한다고 돈만 가지고 들어오면 무조건 좋은 줄 아는 시절도 있었다. 한국인은 평당 몇십만원을 주고 임대할 곳을, 외투자본에는 평당 1원에 임대를 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외투자본들이 혜택을 받은 만큼 이롭게 고용을 창출해줬나 생각해본다면, 꼭 그런것 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먹튀기업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

이어 이 의원은 “하이디스만해도 1년에 로얄티만 1000억원씩 가져가고 있다. 그런 회사가 고용유지 노력을 하지 않는 건 사업경영과 운영목적보다는 짧은 시간에 이익만 얻으려는 생각이다. 정부에서 실질적으로 이런 먹튀기업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라고 주장했다.

현재 20대 국회에는 조배숙의원과 이찬열의원이 각각 발의한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이 계류돼있다. 조배숙의원안은 일정 규모 이상의 외투기업이 폐업하고자 할 때, 미리 산업부장관에게 신고하고, 외국인투자위원회에서 심의하도록 하며, 폐업신고의 내용을 산업부장관이 조사해 그 내용이 거짓인 경우 등에는 시정 등 필요한 조치를 명할 수 있도록 했다. 이찬열의원안은 외투기업이 폐업 또는 사업축소에 따라 상시 근로자수가 10%이상 감소하는 경우, 미리 산업부장관에게 신고하고, 신고의 내용을 외국인투자위원회에 안건으로 상정해 심의하도록 했다.

“(법만 제대로 적용해도) 하이디스 사태 막을 수 있었을 것”

함재규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현재 외촉법 제4조 제2항의 투자제한사유인 ▲국가 안전과 공공질서 유지에 지장을 주는 경우 ▲국민 보건위생 또는 환경보전에 해를 끼치거나 미풍양속에 현저히 어긋나는 경우 ▲대한민국 법령을 위반하는 경우만 엄격히 적용해도 하이디스 사태와 같은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함 부위원장은 ▲단기투자이익을 위한 무리한 구조조정 ▲고율배당, 유상감자 등으로 기업의 성장잠재력을 둔화시킬 우려가 있는 경우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기업 경영안정성을 저해하는 등의 위험이 있는 경우 ▲기술유출, 생산물량 축소, 연구개발기능 해외이전, 공장폐쇄, 대규모 정리해고 등으로 근로자 고용안정을 저해하고 노동기본권 실현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위험이 있는 경우 등도 외국인투자 제한사유로 법제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용채 산업통상자원부 투자정책과장은 “외투기업이 받는 혜택으로는 크게 조세감면, 입지지원, 현금지원 등이 있는데, 전체 외투기업의 5%인 고도기술 기업만 받고 있다. 또 혜택을 주게 되면 경영실적을 보고 체크 해가면서, 허위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자금을 신청한 경우나 현금지원 계약상의 의무를 미이행한 경우 또는 계약기간중 회사의 부도 및 폐업 등으로 해당 사업을 더 이상 영위할 수 없는 경우 환수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