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문턱높아 고금리 이용 中企 금융비용 허덕

프린트

오피니언 ㅣ 사설 은행 문턱높아 고금리 이용 中企 금융비용 허덕 은행간판을 계속 달고 싶다면, 은행의 ‘공적기능’을 강화해야

기사입력2017-07-27 15:50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은행의 최근 경영행태를 ‘전당포식 영업형태’라고 했다. 저축과 투자를 중개함으로써 산업자본을 공급하는 본래적인 의미인 금융의 ‘공적기능’을 강조하는 경제학자의 말이 아니다. 우리나라 금융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면서, 금융감독 기능을 가진 금융감독원을 관할하는 금융위원회 수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26일 취임 후 가진 첫 기자간담회에서 “1998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은행들의 가계대출 비중이 30%가 채 안됐지만, 지난해 말 43%까지 올랐다. 가계대출 문제를 볼 때마다 많은 분들이 ‘과연 은행이라고 할 수 있는가’, ‘심사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느냐’, ‘지나치게 주택담보대출 위주로 전당포식 영업행태’라고 비판한다”면서 “그런 지적이 일리가 없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의 발언은 혁신적인 벤처기업·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등 금융의 공적기능은 외면하고, 손쉬운 가계대출과 부동산금융에 집중하는 은행권의 영업관행을 꼬집은 것이다.

기업대출을 억제하고 가계를 상대로 ‘돈놀이’에 몰두하면서, 은행권은 최근 몇 년동안 ‘사상 최대’란 수식어와 함께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반면 자산격차에 대·중소기업간 임금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극단적인 임금차별이 더해지면서 가계부채는 1400조원에 육박, 이미 임계치를 넘었다.

기업 또한 사정이 다르지 않다. 1%도 채 안되는 대기업을 제외하면, 중소기업·소상공인 대부분은 전년보다 시간당 1060원 오른 최저임금 때문에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정부가 ‘평년’대비 초과 인상된 부분에 대해 지원방안까지 검토하고 있을 정도다. 몇몇 재벌대기업 곳간에는 600조원이 넘는 사내유보금이 쌓여있음에도, 정부가 세금을 동원해 가계·근로자 그리고 중소기업·소상공인, 자영업자에게 생계비를 지급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국민경제가 이 지경까지 이른데 가장 큰 책임은 대기업 수출주도 중심의 산업정책을 고집한 정부에 있다. 또 정부의 부동산투기·부채주도 성장정책에 편승해 상환여력과 무관하게 ‘묻지마’ 식으로 가계에 돈을 공급한 은행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금융위원장도 지적했지만, 은행이 기업 특히 중소기업에 돈을 빌려주지 않은 결과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보자.

지난 25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5월말기준 상호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의 기업대출잔액은 110조569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대비 26조3419억원(31.3%) 늘었다. 기업대출잔액중 중소기업대출은 93조2773억원(84.4%),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가계대출에 따른 이자수익과 서민들로부터 걷은 수수료수익에 몰두하면서, 은행권이 문턱을 높임에 따라 중소기업이 찾아갈 곳은 제2금융권 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실제 지난 5월말기준 중소기업대출 증가율을 보면, 은행은 3.1% 증가에 그쳤지만 제2금융권은 그보다 5배 넘는 15.4%에 이른다. 제2금융권 대출금리는 기업의 신용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은행권에 비해 최소 3배이상, 10%를 상회한다. 영업이익률 10%만해도 탄탄한 기업이라고 평가받는데, 10%이상의 금융비용을 부담하고 있다면 해당기업은 정상적인 경영상태가 아니다. 그러니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규모를 넘어선 중소기업조차도 도시근로자 최저생계비에 미달하는 최저임금도 감당하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자와 수수료가 사실상 은행수익의 ‘전부’인 은행권에 대해 새삼스럽게 선진금융기법을 주문하지는 않겠다. 장기적으론 은행권이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아야겠지만, 금융산업의 공공성 및 기능·역할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지금과 같은 영업관행, 기업대출은 외면하고 가계대출만을 통해 돈을 벌겠다면 은행이란 간판을 달아줄 하등의 이유가 없다. 돈많은 자본가 몇몇에게 전당포 허가증과 함께 영업권을 주고 사업을 하도록 하는 것과, 지금 은행권의 영업방식과는 전혀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은행권은 미국·영국과 같이 자본시장이 복잡해 이름과 내용 그리고 실체도 알 수 없다는 파생상품을 연구하는 것이 필요한 게 아니다. 은행점포 인근에 있는 조그만 공장, 자영업자 그리고 범위를 좀 넓혀 전국에 산재한 혁신적인 벤처기업·중소기업을 발굴해, 이들에게 연구·개발·생산·영업자금을 공급하는 것이 먼저다. 이같은 금융 본래의 기능, 산업자본을 중개하기 위해서 산업구조와 기술수준에 대한 깊은 이해, 국내외시장에 대한 분석 등 실용적인 수준의 투자분석기법을 먼저 선진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경고했다. 최 위원장은 “종소기업대출중 담보대출 비중이 70% 수준이라고 하는데,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며 “금융시스템을 새롭게 정비하고 필요한 부문은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금융위원회는 중소기업이 담보나 보증없이도 자금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기술력·매출전망 등을 토대로 한 평가모형을 개발해 향후 대출심사에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생산적 금융을 위한 금융위원회의 조치와 관계없이 은행권 스스로 기존의 ‘전당포식’ 영업관행을 폐기하고, 각각의 은행에 고유한 투자분석모형을 개발해 적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 또 다시 정부가 제시하는 가이드라인만을 준수하겠다는 안일한 사고를 갖고 있다면, 국민적인 비난과 함께 역풍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은행이 ‘은행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금융위원회만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니다. 지금의 모습에서 은행이 바뀌지 않는다면, 조만간 국민들은 은행이 갖고 있는 독점적인 영업권을 회수하라고 정부에 요구할지 모른다. 은행간판을 계속 달고 싶다면, 간판에 맞는 역할을 하기 위해 깊은 고민을 하고 이와 함께 실천을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