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지물 ‘이윤주도’ ‘낙수효과’ 타령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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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무용지물 ‘이윤주도’ ‘낙수효과’ 타령 경제학자 소득주도 성장론 우려하며 제도혁신 성장론 제기…‘적폐’는 외면

기사입력2017-09-20 13:40

김성화 기자 (rukawasss@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경제정책과 관련해, 언론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표현중 하나가 ‘소득주도 성장’이다. 요약하면 가계소득을 늘려줌으로써 가계의 소비여력을 증대시키고,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의 소비가 늘어 생산과 일자리도 함께 증가해 가계·기업 그리고 국가의 부(富)도 키우는 선순환 생태계를 만들자는 것이다.

가계의 ‘소득주도 성장론’이 등장한 이유는 한국사회 자본주의 도입 이후 줄곧 추구했던 기업의 ‘이윤주도 성장론’이 그 역할을 다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GDP로 평가되는 국가경제가 커지고, 그것 이상 대기업의 국제경쟁력은 강화된 반면 가계는 쪼그라든 현실을 바꾸기 위한 대안이 소득주도 성장론이다. 대기업 성장에 따른 떡고물을 받아먹는 ‘낙수효과’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가계소비를 증대시켜 기업의 성장을 도모하는 ‘분수효과’를 보기 위한 발상의 전환이기도 하다.

<그래픽=김성화 기자> ©중기이코노미

그러나 지난 1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문재인정부 기업정책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에서 발제자인 한국기업법연구소 황인학 수석연구위원은 “국제노동기구 등이 제기한 소득주도 성장은 이론이 아닌, 경제학계에서 아직 인정받지 못한 하나의 가설”이라고 주장했다. 카이스트 경영대학 이병태 교수 역시 “소득주도 성장과 함께 거론되는 ‘포용적 성장’은 하나의 경제지향점이지, 성장이론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날 토론회에선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는 기업정책 관련 개개의 사안에 대한 이런저런 비판이 나왔지만, 결론으로 제시된 대안은 ‘제도혁신 성장론’이다.

황 수석연구위원은 “가설(소득주도 성장론)에 한국경제의 운명을 맡기기에는 불안하고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며 “제도혁신에 더 많은 관심과 역량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도혁신 성장론을 설명하면서 황 수석연구위원은 “인적·물적 자본 같은 전통적 생산요소보다 ▲재산권·계약의 보호 ▲창의적 기업가정신을 가로막지 않는 규제 시스템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질서 ▲기업과 기업가에 대한 사회의 인식과 태도 등의 제도가 경제성장에 더 중요하다”고 했다.

소득주도 성장론이 “경제학계에서 아직 인정받지 않은 가설”이고, 제도혁신 성장론은 “신제도 경제학자들의 역사연구를 통해서 검증된 내용”이라는 황 수석연구위원의 주장이 사실임을 인정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황 수석연구위원이 설명한 제도혁신 성장론으론 우리사회가 당장 해결해야 할 ‘적폐’를 청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도혁신 성장론은 이미 드러난 적폐를 더욱더 공공하게 함으로써 불가역적 상태로 만든다는 점에서 위험하기까지 하다.

지난 1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문재인정부 기업정책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 ©중기이코노미

황 수석연구위원은 ‘재산권과 (사인간) 계약의 보호’를 주장했다. 그러나 재산권 남용과 계약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경제적 강제와 폭력으로 한국경제가 신음하고 있다. 헌법에 따라 재산권은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행사돼야 함에도, 아이들을 볼모로 잡으면서 사립유치원 원장이 내세웠던 주장도 재산권 보호다. 하도급계약서에 명시된 내용이라면서 중소기업이 자신 이외 다른 기업과 거래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 대기업이다. ‘갑질’ 논란으로 최근 우리사회를 들썩이게 만든 프랜차이즈 문제도 본질을 보면 계약의 자유 ‘과잉’ 때문이다.

‘창의적 기업가정신을 가로막지 않는 규제 시스템’도 거론했다. 매출액에서 인텔을 넘어섰고, 영업이익에선 애플을 넘어선 재벌기업이 골목시장에서 떡볶이와 순대를 파는 것이 ‘창의적 기업가 정신’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에게 수백억원 이상의 뇌물을 바쳐 아버지 재산을 통째로 물려받고, 그룹사 경영권까지 욕심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규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질서’가 더 중요하다고도 했다. ‘공정’은 온데간데없고 ‘자유’와 ‘경쟁’만이 넘친 결과가 1:99 사회다. 가계는 가난해졌지만 기업은 부자가 됐다. 불공정한 경쟁을 법·제도로 보장했기에 대기업이 사내유보금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쌓아가는 동안, 중소기업은 최저임금도 지불하지 못할 정도의 한계상황까지 내몰렸다. 정규직이 했던 상시적인 업무를 비정규직에게 넘기고, 절반도 되지않는 임금을 주면서도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는 공정을 뺀 ‘자유’와 ‘경쟁’만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기업과 기업가에 대한 인식과 태도’ 역시 문제 삼았다. 자업자득이다. 한국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재벌총수 중에서 감옥에 갔다오지 않은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야 할 정도다. 멀리갈 것도 없이 문재인정부 출범의 단초는 재벌과 권력의 야합때문이었다. 이같은 정경유착 폐단은 수십년 이상 우리사회를 지배했던 관행이었다. 도대체 기업과 기업가에 대해 어떠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누군가 말했다. 경제를 제일 모르는 것이 경제학자라고. 옆에 있는 근로자와 가계 그리고 중소기업의 현실을 돌아봐야 한다. 가계보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기업의 이윤을 가계로 돌리자는 것이 소득주도 성장이다. 대기업의 곳간에 쌓인 유보금을 조금 덜어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정당한 대금을 치르자는 것이 포용적 성장이다. 언제까지 철지난 이윤주도 성장, 낙수효과 타령만을 반복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