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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기자수첩

가습기 살균제 사건…속속 드러나는 증거조작

‘진실을 은폐할 방법은 없다’는 교훈 남기는 재판을 기대하며 

기사입력2019-04-12 12:04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건 재판과정에서, 각종 증거를 조작하고 인멸한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피해자들의 비통한 마음이 더욱 커지고 있다.  


애경산업 전 대표이사 등은 2016년 검찰수사에 대비해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불리한 자료를 폐기했다. 관련 자료를 삭제하고, 하드디스크를 파괴하거나 노트북을 교체했다. 고객 클레임 처리를 담당했던 직원의 이메일을 삭제하고, 시험보고서를 직원의 처갓집 다락방에 숨기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노을공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추모의 숲에서 사회적 참사 특조위 최예용 부위원장을 비롯한 특조위원들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및 유족들이 피해자들의 넋을 기리며 식수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진상규명이 늦어진 이유 또한 증거조작이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는 2011년 처음 알려졌지만, 검찰이 수사에 나선 시점은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16년이었다. 임산부나 영유아들이 폐질환에 걸리거나 심지어 사망하는 일까지 벌어졌지만 검찰수사는 개시되지 못했다.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의 연구보고서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연구보고서 역시 조작된 정황이 드러났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최근 이 연구보고서가 불리한 데이터를 축소하는 등 연구윤리를 위반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연구보고서를 작성한 교수는 실험결과 조작혐의로 1심에서 유죄,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고 대법원 최종심을 앞두고 있다. 대법원 확정판결에 앞서 진실이 규명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최근 기소된 SK케미칼 임직원들 역시 증거인멸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역시 살균제에 쓰인 성분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실험결과를 은폐했다.   


서울대에 연구보고서를 의뢰하고, 가장 많은 피해자를 발생시킨 옥시레킷벤키저의 전 임직원들은 이미 재판을 통해 처벌이 확정됐다. 당시 대법원이 판결문을 통해 인정한 피해자 중 사망자만 73명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 사망자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정부에 피해를 신고한 사람이 6000명을 훌쩍 넘겼는데, 이 중 목숨을 잃은 피해자만 1000명 이상이다. 신고자 중 피해자로 인정받은 비율이 낮은 까닭은 환경부가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은 2017년에야 제정됐다.

 

피해자 규모의 방대함이나 살인방조 나아가 기업에 의한 살인이란 점에서,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잊혀져서는 안된다. 진실을 영원히 은폐할 방법은 없고, 은폐 대신 솔직한 고백과 용서를 선택하는 편이 낫다는 교훈이, 이 사건 진상과 함께 남아 앞으로도 기억되기를 희망한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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