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청 ‘불법’ 외면…기레기 소리, 그래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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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조달청 ‘불법’ 외면…기레기 소리, 그래서 나와 책임은 없고 언론자유만…사회적 공기(公器) 주장하지 마라

기사입력2020-03-06 13:21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마스크업체 ‘원가 절반 인정·10배 생산’ 정부 요구에 생산중단”(연합뉴스)>, <“정부의 도넘은 ‘슈퍼갑질’에 마스크 생산 포기”…공장 멈췄다(한국경제>, <“손실 감수하며 마스크 못 만들겠다”… 정부 매입에 이덴트 생산 중단 선언(조선일보)>, <“정부, 원가 50%에 생산 10배 요구” 마스크업체 생산중단 선언(중앙일보)>, <“명분도 의욕도 상실” 정부 마스크 대책에 ‘생산 중단’ 선언한 업체(세계일보)>

마스크 ‘대란’을 넘어 ‘광풍’으로까지 치닫는 한 복판, 6일 메이저 일간지·통신사에 걸린 기사제목이다. 이들 언론사 이외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대부분의 매체가 동일·유사한 제목을 달고, 같은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6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한 약국에서 시민들이 2매만 구입 가능한 공적 마스크를 사기위해 줄을 서고 있다.<사진=뉴시스>

그런데 아주 이상하다. 스탈린 치하의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거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나 가능한 사건이, 오늘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 이들 기사에 따르면 조달청이 마스크 생산업체에게 원가의 절반만 주겠다고 통보했다. 그러면서 일일 생산량은 10배 늘리라는 계약을 요구했다. 그래서 업체는 더 이상의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마스크를 생산해야 할 명분도 의욕도 없다며, 생산중단을 선언했다.

문재인 정부로부터 이같은 불법·부당한 처분을 강요당한 업체는 치과 재료 제조·유통사로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이덴트’란 회사다. 신선숙 이덴트 대표이사는 웹사이트에 올린 ‘사과문’을 통해 “정부에서는 마스크업체 전부에 일관된 지침을 적용해, 마스크가 꼭 필요한 의료기관(치괴의원)에 생산 및 판매하고 있는 것조차 불법이란 지침변경으로, 앞으로 (의료기관) 공급이 불가하게 됐다”고 공지했다.

여기서 가질 수밖에 없는 의문. 불법·부당하게 권리를 침해당했으면, 검찰이나 경찰에 고소해 하루라도 빨리 권리구제를 받는 게 최상책이다. 아무 잘못도 없이 생산중단이란 막다른 골목에 몰린 마스크업체, 이덴트가 왜, 소비자에게 사과해야하는가 말이다. 이제라도, 신선숙 대표이사는 조달청의 상급기관인 기획재정부장관에게 민원을 제기할 것을 조언한다. 불법·부당한 처분을 시정해달라고.

정말 정말, 의문이 가시지 않는 부분은, 이덴트 사과문을 근거로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의 정신상태다. 또 기자가 쓴 기사를 감수해, 신문지면 또는 웹사이트에 올린 데스크의 판단력이다. 단언하지만, 이들 기자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기사를 작성했고, 데스크의 게이트키핑 기능은 마비됐다. 만약 기자와 데스크가 맨정신이었다면, 팩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그저 ‘문재인 탄핵’이라고 쓰고 싶었던 거다.

정신 차리고 생각해보자. 기자 A가 통신사에 다니는 고교동기인 B기자에게 하소연을 했다. 내용인 즉, 통신사 사장이 A에게 월급을 절반 깎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도 기가 막힌데, 1일 기사 출고량을 지금보다 10배 써야하지만 2배정도만 늘리라고 요구했다는 거다. 이 말을 들은 B는 특종이다 싶어, 재빨리 기사를 쓴다. 통신사 사장이 노동법을 위반한 범죄자라고. 그리고 그 보도를 접한, 주요 언론사 모두 똑같은 내용의 기사를 쏟아낸다. A는 어떤 생각으로 그같이 읍소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그대로 기사로 전한 B를 포함 기자들 모두가 정상이 아니다.

왜냐고, 제정신이라면 A기자의 발언에 문제가 있음을 알았어야했다. 월급은 절반 깎고 일은 곱절로 하라는 사장이, 지금 한국사회에서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가져야만 제정신인거다. 그리고 그 같은 ‘사실’을 혼자만 아는 게 아니고, 남에게 전할 거라면, 팩트체크 절차를 거쳐야만했다. 사실이 아니라면, 통신사 사장이 하루아침에 악덕사업주란 오명을 뒤집어쓰기 때문이다. 앞서 특정한 기사와 유사한 내용을 담은 모든 기사에는 이덴트의 사과문 내용만 있다. 이덴트에 불법·부당한 처분을 강요한 조달청의 핑계조차, 단 한 줄이 보이지 않는다.

사실관계는 아직 모른다. 분명한 건, 이덴트의 주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조달청이 ‘불법’을 저질렀다는 ‘사실’이다. 입만 열면 사회적 공기(公器)라고 주장한다. 그 같은 자부심이 있다면, 조달청을 향해 불법행위를 하지 말라고 기사를 썼어야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고, 기레기 소리는 그래서 나왔다.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정부가 언론에 재갈을 물리지 말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이들 기자들은 자유권을 남용해, 폭력을 행사했다. 이덴트 주장에 일부 사실이 있더라도, 정부기관인 조달청 나름의 사정이 있다고 추론할 줄 알아야 맨정신을 가진 기자다. 조달청의 주장을 이해해달라는 게 아니다. 이들 기사 속에는 ‘조달청이 왜 그랬어’에 대한 변명정도는 담았어야했다는 말이다.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려면, 그에 걸맞는 책임도 부담할 줄 알아야한다. 그게 싫으면 사회적 공기, 언론자유니 이런 말은 하지 말아야한다. 중기이코노미 논설위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