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거품빼기, 민간주도 공급구조 뜯어고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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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집값 거품빼기, 민간주도 공급구조 뜯어고쳐야 분양원가 공개 등 민간건설사를 통제하는 공공개발 원칙 세워라

기사입력2020-07-20 00:00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두뇌 자체가 아예 마비된 건지. 극우·보수는 물론 개혁·진보 진영 모두로부터 그렇게 두들겨 맞고도, 문제의 본질을 여전히 모른다. 입으로는 투기를 뿌리 뽑아 집값을 잡겠다고 한다. 그런데 몸뚱이는 부동산투기 대상지 이곳저곳 기웃대며, 투기꾼을 불러 모은다. 최근 정부의 주택공급 대책을 접하면서 든 생각이다.

주택공급 택지 마련을 위한 그린벨트 해제 움직임이 광속이다. 그린벨트 해제 논란이 일자,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나서 주택공급 대책 리스트에 “그린벨트 해제 건은 없다”고 공언한 시점이 지난 10일. 불과 사흘 뒤인 14일 홍 부총리가 MBC 뉴스데스크에 출연해, ‘필요하다면’이라 전제했지만 그린벨트 해제 가능성을 내비쳤다. 17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도 KBS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그린벨트 해제 문제에 대해) 당정이 이미 의견을 정리했다”고 거들었다. ‘오락가락’, ‘우왕좌왕’이란 세간의 비판과 함께 그린벨트 해제 방침은 굳어져가는 모양새다.

부동산투기꾼 행보도 빨라졌다. 정부의 그린벨트 해제 ‘검토’를 ‘결정’으로 읽었다. 강남 해제 후보지를 포함 인근 토지·아파트·개인주택 가격이 들썩였다. 시장에 나왔던 매물 대부분이 회수되고, 호가도 1억·2억 올랐다는 언론보도가 줄을 잇는다. 지금 상태라면 그린벨트 개발로 직접 또는 반사 이익을 기대하는 해당 지역주민과, 투기꾼이 뒤엉켜 거대한 부동산투기장으로 변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서민·중산층 주거안정을 목표로 한 주택공급 대책이 투기꾼에게 또다시 먹잇감을 제공한 꼴이다.

가장 손쉬운 방식이다. 그린벨트가 풀리면 집·땅 주인이 반기고, 인근 토지·주택 소유자도 수혜자다. 도심 재개발·재건축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민원도 거의 없다. 환경·생태계 보존론자 일부를 제외하면, 이해관계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시혜적 행정이다. 정부가 두 눈 딱 감고 도장만 찍으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다.

판교·위례·마곡 등 2기 신도시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들 지역 그린벨트 해제 전후 벌어졌던 똑같은 폐해가, 강남 해제 후보지와 인근에서 지금 재현된다. 이들 지역 그린벨트 해제는 2기 신도시와 마찬가지로, 민간건설사와 토건자본에게 천문학적 규모의 부당이득을 안겨준다. 부동산투기꾼 역시 막대한 불로소득을 챙기겠고, 그만큼 뻥튀기된 집값은 실입주자의 추가부담으로 돌아온다.

김헌동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이 16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에서 열린 ‘21대 초선 국회의원 부동산재산 분석 발표’ 기자회견에서 분양가상한제 폐지 영향 등으로 인한 연도별 강남권 아파트 가격변동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건설사와 토건족, 투기세력 등 일부만 배불리는 기존 주택공급 방식으론 집값에 낀 거품을 뺄 수 없다. 집값에 얹어진 과도한 부당이득을 걷어내고, 불로소득을 차단해야만 주택공급가를 낮출 수 있다. 주택공급에 앞서 공급구조 자체를 싹 뜯어고치지 않으면 공급효과는 반감된다. 투기수요 자체를 원천 근절하지 못하면, 공급물량을 아무리 늘려도 수요량을 맞출 수 없다.

2기 신도시 건설을 포함 정부가 해마다 크고 작은 공급대책을 내놔도 주택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이유. 공급량대비 실수요자에게 돌아가는 물량 자체가 제한되는 공급구조의 결함 탓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밑 빠진 독에 죽을둥살둥 물을 쏟아 붓는다.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은 지난 15일 당정협의에서 “3기 신도시 공공택지 36만호를 포함해 총 77만호를 수도권에 공급할 계획”이라며 “앞으로 3년간 수도권 아파트 입주물량이 과거 10년 평균보다 44% 많은 연 18만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77만호가 아니라 100만호를 공급해도, 민간건설사가 시공하고 분양까지 독점한 공급구조에서 분양가는 떨어지지 않는다. 민간건설사의 시공원가를 통제하고, 적정 이윤을 더해 분양가를 산정하는 공공개발 방식만이 분양가를 낮출 수 있다. 민간건설사가 부풀린 분양가는 인근 지역 집값을 끌어올려 버블투성이를 만들었고, 서민이 평생을 저축해도 집을 살 수 없는 주택시장 구조가 됐다.

공급구조 개혁방안으로 환매조건부 분양, 토지임대부 분양 등이 거론된다. 전자는 공공개발로 실수요자에게 원가 수준 또는 그 이하로 주택을 공급하고, 매매할 때는 공공기관에 매각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후자는 토지를 공공이 소유하고, 주택만 분양하는 방식이다. 양자 모두 주택 가수요 여지를 차단함으로써 집값 하락을 유도할 수 있는 강력한 정책수단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한번 훼손하면 원상회복이 불가능한 정책, 그린벨트 해제 검토는 당장 중단돼야한다. 익숙하고 편한 방법을 선택하기보다 집없는 서민의 고통을 헤아려, 부당한 기득권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보여야한다. 3기 신도시 건설에 앞서 민간건설사에 대한 분양원가 공개 의무화, 분양가상한제 전면실시 등 공급구조 개혁안 먼저 마련해라. 그리고 금융과 세제를 동원해 투기수요 억제책를 보다 촘촘하게 다듬어라. 집값에서 낀 거품을 빼고, 왜곡된 부동산시장도 바로 잡겠다는 의지가 진심이라면. 중기이코노미 논설위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