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은 본질적으로 모호하다…그리고 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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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스타일은 본질적으로 모호하다…그리고 반역 Life is pain.ting #49. 당신은 어떤 스타일입니까?②

기사입력2022-01-07 10:13

김윤아 작가 (bombbi0401@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스타일은 본질적으로 모호하다. 바로 이 애매모호함 때문에 사람들은 스타일에 매혹되면서 동시에 경멸한다. 흔히 어떤 사람을 두고 그 사람 스타일이 좋다는 말을 사용할 때 그 사람은 스마트하고 우아하며, 복잡하고 어지러운 시대에 딱 맞는 적절한 감각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말은 시류에 영합하는 경박하고, 중심이 없이 모양을 내는 알맹이 없는 어떤 사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스타일은 남한테 자기 자신을 멋있게 보이려는 방식임에는 틀림이 없다. 모양을 낸다는 것은 가볍고 경박하다. 에센스, 즉 실이 없고 허하다. 스타일이 형식이고 겉치레라는 점에서 본시 얄팍하고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깊이는 제거되고 표면은 찬양된다. 그러므로 겉치레나 형식 그 자체가 스타일의 본질이자 에센스다. 혹시 스타일에 깊이가 있거나 심오함이 있다면 그것은 그 얄팍함이나 피상성에 달려있다. 나는 스타일은 깊이가 아니라 오히려 깊이를 부정하거나 깊이가 없는 곳에서 나온다는 것을 소호에서 알았다.

소호(SoHo)

소호는 뉴욕 맨해튼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Houston Street의 남쪽이라는 South of Houston의 앞글자를 딴 거리 이름이다.

60~70년 전 방직공장이 예술가들의 스튜디오가 되고 가장 바람직한 주거공간이 되었으며, 트럭이 드나들던 황량한 창고가 아방가르드 작품들을 전시하는 갤러리나 감각적인 가게로 변했다. 지난 세기 대표적인 공업지구가 그대로 금세기 예술의 메카이자 스타일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공장이나 창고가 갤러리나 유명 브랜드 의류매장으로 변하고, 트럭 운전사나 공장 직원으로 북적거리던 그 지역이 옷 잘 입는 선남선녀들이 몰려다니고 관광객이 득실거리는 번화가가 되어 버렸다.

관광객들은 소호에 옷을 사거나 예술작품을 감상하려고 오지 않는다. 단지 소호니까 오는 것이다. 소호 자체가 현대 예술품처럼 내용 없는 형식이 지배하는, 알맹이 없는 스타일 그 자체로 변해버린 것이다. 흔히 말하는 소호적인 아름다움(Soho Aesthetics)은 이러한 겉치레나 형식이 이전의 모든 역사나 내실로부터 독립해서 그 자체로서 역사가 되고 의미를 가지기 시작하면서 성립됐다.

한때는 소호를 걸어 다니는 것이 즐겁고 쾌적했다. 한마디로 ‘쿨’했다. 화강암을 벽돌처럼 잘라서 깐 코블 길도 좋았고 큼직한 창문이 나있는 5~6층 높이의 지난 세기 공장이나 창고로 사용되었던 건물들도 좋았다. 간판으로 사용하는 깃발이 가을바람에 휘날리고 그 아래 캐주얼하게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광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이 차오르곤 했다.

덧없이 ‘가볍고 경박한’ 현대 예술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를 오가며 따끈따끈한 아방가르드 예술품을 힐끔 구경하는 재미 역시 쏠쏠했다. 갤러리 가고시안이나 페이스의 그 넓은 하얀 벽에 걸려있는 라우센버그의 거대한 몽타주도, 소를 잘라서 소의 잘라진 부분을 전시하는 데미안 허스트의 엽기적인 설치작품을 헬무트 랭이나 요지 야마모토 매장에 걸린 옷가지들을 보듯이 ‘편하게’ 봤다.

스타일은 본질적으로 모호하다. 바로 이 애매모호함 때문에 사람들은 스타일에 매혹되면서 동시에 경멸한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윈도우 쇼핑이 즐거운 이벤트일 수가 있다는 것을 나는 소호에서 비로소 깨달았다. 널찍한 매장에 걸려있는 옷들이 제프리 다이치 프로젝트나 메리 분 갤러리에 설치된 인스톨레이션과 다를 바가 없었다. 모든 상가들이 과거 갤러리 전시처럼 상품을 디스플레이하기 시작했고 아파트들은 예술가들의 스튜디오처럼 꾸며졌다. 철 지난 미니멀리즘은 여전히 바나 식당, 가구점, 의상실을 지배하고 있었다. 소비가 즐거웠고 창조적이기까지 했다. 아이스 티 한잔도 몇 블록 돌아서 딘 앤 델루카(Dean&Delluca)에서 사 먹었다.

나는 이 사치를 과도하게 즐기고 있었다. 천장이 높은 커피숍이나 식당에서 까닭없이 즐거웠고 그 속에 배열된 식탁이나 실내장식에 흥분했다. 어쩌다 방문한 소호에 사는 친구 집에서 나는 ‘문화’를 경험했고 그러면서 뉴요커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책과 예술작품, 고가구, 좋은 음향기기에 둘러싸인 한국 교실 두어 개만한 로프트에서 필립 글라스의 음악을 들으면서 뉴욕 스타일을 보고 경험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미니멀리즘으로 시작한 소호는 90년 중반에 미니멀한 스타일로 넘쳐흐르고 있었다. 미니멀리즘이 ‘맥시멀’했다. 정작 미니멀리즘의 진원지였던 갤러리나 뮤지엄은 반 미니멀리즘의 기치 아래 극도로 표현적이고 자극적인 방향으로 흘러간 지 벌써 오래 전이었다.

소호적인 감수성을 불어넣은 예술 사조는 이미 후기 미니멀리즘을 지나서 페미니즘, 극사실주의, 보디 아트, 추상표현주의를 넘어 모든 주의가 뒤섞인 예술의 백화제방이요 춘추전국시대가 됐다. 내가 ‘감’해서 ‘동’했던 그 소호는 이미 한물간 스타일의 전시장이었다. 스타일이 있다고 믿은 게 다 지나가 버린 스타일의 그림자였다. 역시 보고 느끼고 경험했다고 확신했던 스타일이 거기에 없었다.

스타일은 반역이고 반동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안티 스타일이다. 그 자체를 부정하면서 생명을 부여받는 모순이다. 표면과 장식을 부정하고 기능을 강조해 왔던 바우하우스나 형태 자체를 최소화하려던 미니멀리즘은 결코 반 스타일이나 스타일의 부정을 불러 온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20세기에서 가장 지배적인 스타일이 되었다.

또한 문명 그 자체를 초월하고 무시하던 히피나 스타일 그 자체에 대한 파괴와 전복을 주창하던 펑크도 스타일의 무시나 제거 그 자체를 통해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그리니치 빌리지를 중심으로 60년대를 주름 잡던 비트(Beat)들이나 80년대 중반부터 이스트 빌리지를 지배했던 펑크는 비스타일이나 반 스타일로서 스타일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경우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윤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