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지 않은 아름다움과 스타일 없는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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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아름답지 않은 아름다움과 스타일 없는 스타일 Life is pain.ting #50. 당신은 어떤 스타일입니까?③

기사입력2022-02-22 09:57

김윤아 작가 (bombbi0401@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소호에서 예닐곱 블록 동북쪽으로 가면 이스트 빌리지가 나온다. 80년대 중반부터 안티 소호(Anti-SoHo Aesthetics)의 중심이 됐던 그 지역은 소호와 모든 게 달랐다. 8가(street)와 3번가(avenue) 동쪽, 이스트 빌리지에서 제일 번화하다는 세인트 막스 플레이스(St. Marks Place)를 아무리 걸어다녀도 눈에 보이는 건 값싼 기념품 따위나 파는 잡화점, 퍽(fuck)이라는 단어로 도배를 한 티셔츠나 모자 가게, 중고 CD가게, 허름한 일본 식당이나 선술집들 그리고 그 사이를 배회하는 물 지난 펑크를 아직도 동경하는 무늬만 펑크인 십대들, 물밀듯이 밀려다니는 관광객들, 주정뱅이들 그리고 동냥하는 거지들만 보였다.

처음 그 지역 갔을 때 스타일은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길에는 아무렇게나 입은 젊은 사람들이 서성거렸고, 리사이클링 하려고 내놓은 신문지나 폐지가 바람에 흩날렸다. 길을 갈 때도 개똥이나 쓰레기 더미를 피하면서 걸었고, 도처에 한푼 달라는 홈리스나 대마초를 사라는 사람들 때문에 항상 긴장하면서 눈치를 보면서 다녔다. 머리를 울긋불긋, 형형색색으로 물들이고 코나 귀뿐만 아니라 배꼽이나 젖가슴에 링을 박고 다니는 사람들이 술에 취한 채 몰려다니는 모습도 보였고, 꽉 죄는 가죽 바지에 등이나 팔뚝뿐만 아니라 얼굴에도 문신을 한 사람들도, 면도칼로 머리를 하얗게 깎은 여자도 보였다.

사람들은 꾸질꾸질했고, 일본 사람처럼 보이는 허름한 옷을 입은 젊은 동양 남녀도 간혹 보였다. 드물게 말쑥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지나칠 때 도리어 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일 정도였다. 거리에는 대마초 연기와 쓰레기가 뒤엉켜 매캐한 냄새가 났고, 정오가 지난 시간에도 인적은 드물었다.

사람들은 오후가 돼야 나다니기 시작하고 늦은 밤이 되면 온 거리가 불을 밝히고 사람들로 넘쳐났다. 상점들도 소호와 달리 조그마했고 음식점이나 술집도 뭔가 너절하고 다닥다닥 붙은 테이블 때문에 좁은 공간은 더 좁아 보였다. 아파트도 낡고 더럽게 보이고 빈 공터나 건물 벽에는 그라피티나 광고전단으로 빽빽하게 덮여 있었다. 사람들은 불량스러우면서 데카당트하게 보였고, 거리는 사람이 넘쳐나도 어둡고 을씨년스러웠다. 소호에 좋아라 하고 다닐 때라 이 지역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일상생활에서 거부감을 주고 추하다고 느껴지던 대상들이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돌변했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그러나 친구들이 이 지역에 살기도 하고 또 저렴한 음식값 때문에 점차 이 지역을 빈번하게 드나들게 됐다. 그러다 문득 길을 걷다가, 허름하게 옷을 입은 여성이 노란 프리지어 다발을 들고 그라피티로 난자된 빌딩 앞을 걸어가는 모습이 명치끝이 저릴 만큼 보기가 좋았다. 그 여성과 꽃만이 아니라 더러운 건물 벽, 매캐한 공기가 바스러지는 저녁 무렵의 석양까지 아주 아름다웠다. 순수한 추상이었다. 아름다울 수 없는 사물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노출이 너무 과도한 옷매무새가 그 자체로서 쿨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바디 피어싱이나 문신을 한 사람을 보는 재미도 나름대로 있었다.

무심하게 지나가다 사람이나 가게들을 눈을 비비고 다시 돌아보는 일이 많아졌다. 갑자기 지조도 없이 소호가 재미 없어지고 오히려 이스트 빌리지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실제로 아파트를 구하러 다니기도 했다. 그 무렵 서서히 이 동네와 대조적인 의상실, 식당, 바(Bar)들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다. 빈티지 옷뿐만 아니라 무명이지만 야심 많은 디자이너가 자기 부띠크를 열기 시작했다. 유기농산물만 취급하는 식료품점이나 허브만 파는 가게들이 들어섰고, 밤이면 어둠침침한 동네에 걸맞지 않게 멀쑥한 사람들이 오고 갔다. ‘물’이 좋아졌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식당, 술집, 의상실이 들어서자 뜻밖에 초라하고 침침하던 이 지역이 묘하게 힙(hip)한 듯이 느껴졌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 각지에서 이민 온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가난한 이 지역의 다닥다닥 붙은 초라한 건물들과 아직도 드문드문 보이는 그라피티, 길 주변에 너덜너덜 붙은 퍼포먼스를 알리는 전단더미가 미래적으로 장식된 가게들과 어울렸다.

소호나 그리니치 빌리지와는 다른 색다른 매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일상생활에서 거부감을 주고 추하다고 느껴지던 대상들이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돌변한 것이다. 소위 아름답지 않은 아름다움과 스타일 없는 스타일이 이 지역에서는 일상적인 현상이었다. 소호에서의 경험과는 반대로 관심조차 없던 사물이나 사람 또는 공간에서 스타일이 발견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스타일은 전략이다. 자연스럽게 흘러다니는 그 스타일도 실상 주도면밀하게 고안되고 계획된 노력의 산물이다. 남 보기에 쿨하게 보이려는 방식이고 모양을 내려는 전략이다. 남들에게 잘 보이기란 아주 어렵다. 엄청난 노력이 수반된다. 겉치레나 꾸미는 가벼움이 얼마나 무겁고, 그 경박함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사람은 안다. 전략이 전략이라고 다른 사람 눈에 드러나면 그것은 더 이상 전략으로서 가치가 없다. 전략으로서 스타일의 핵심은 노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저절로 자기 스타일을 확립하고 보여주는 것이다. 스프레자투라(sprezzatura, 이탈리아 말로 가장된 무심함. 즉 힘든 일을 쉽고 세련되게 해내는 방식을 의미함)라는 것인데, 아무리 어려운 것이라도 쉽게 해내는 것처럼 보이는 게 중요한 것이다.

자기가 스타일리쉬하다고 과시하거나 스타일을 좋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 더 안쓰러운 게 없다. 정말 타고나게 멋있고 감각이 좋은 사람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확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든 노력에서 면제된다. 그러나 그런 조건을 타고나는 사람은 얼마나 되고 자기에게 확신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일까! 그것도 뉴욕에서.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윤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