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에서 균형을 찾고 그것을 시각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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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다름’에서 균형을 찾고 그것을 시각화하다 신진 작가 발굴 프로젝트…안토니오 리 작가

기사입력2022-03-06 10:00

김찬용 전시해설가 (art_inside@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조우 Encounter 22FB06 no.01, 60.96×76.2cm, 리넨 위에 혼합재료&유화, 2022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활동했던 르네상스 시대부터 19세기 말까지 500여년의 시간 동안 구상화는 인류의 미술역사를 지배해왔다. 각자의 방식으로 나름의 변화를 시도해 왔지만, 그 시도는 구상에서 추상으로의 변화만큼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산업혁명과 전쟁의 시대를 지나 파블로 피카소, 바실 리 칸딘스키, 피에트 몬드리안 등 20세기의 대가들을 통해 예술가는 더 이상 보이는 가시세계가 아닌 그 이상을 표현하고자 했고, 이러한 도전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김환기, 박서보 등 국내 단색화 화가들을 통해 미술계에서 실험되곤 했다.

첨단 미디어 매체가 등장하며 다소 주춤할 것 같았던 추상미술의 계보를 묵묵히 연구하며 새로운 실험을 선보이고 있는 예술가가 있다. ‘다름’에서 균형을 찾고 그것을 시각화하는 예술가 안토니오 리를 만나보자.

Q. 자신의 작품세계를 소개해달라.

저는 우연한 혹은 막연한 기대속에서 찾아오는 조우(遭遇)로부터 예술적 영감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만의 익숙함과 안정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어느 한 시점에서 그들은 서로 반드시 조우하게 되고, 충돌하거나 융화하면서 알수 없는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갑니다. 저는 이렇게 조우를 통해 발생하는 다양한 영향을 예술적 영감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절제된 자아를 바탕으로 타인과 조우한다면 균형 잡힌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시각예술로 표현합니다. 캔버스 위에 표현된 균형 잡힌 조형의 형태는 제가 바라는 인류의 긍정적인 미래를 간접적으로 시사합니다.

Q. 추상적인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는가?

추상 작품을 만들기 위해 지금의 작품들을 창작한 것은 아닙니다. 작품의 의도에 맞춰서 그림을 그리다 보니 작품이 자연스럽게 추상적인 형태를 띠게 되었습니다. 작품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 자연, 동식물 그리고 더 나아가 과거와 현재, 미래 간의 조우를 포괄적으로 담을 수 있는 조형의 형태를 창조해야만 했습니다. 이 조형은 그 무엇도 아니면서 동시에 그 어떤 것도 될 수 있는 환원적인 형태로 그려졌습니다. 그래서 저의 작품은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의미를 자유롭게 연상할 수 있게끔 유도합니다. 그러다 보니 작품이 자연스럽게 추상적인 형태를 띠게 되었습니다.

Q. 자신의 예술세계가 잘 담긴 대표작을 추천해준다면?

‘조우 Encounter 22FB06 no.01’과 같은 도상의 작품들이 저의 예술세계를 잘 설명해주는 대표작들입니다. 저는 작품에 최대한의 다양성을 부여하기 위해 저의 재현 의지를 극도로 절제한 상태에서 이 조형들의 모양 혹은 대면하는 위치들을 즉흥적으로 창조합니다. 작품 위의 조형들은 다양한 것들이 환원된 형태입니다. 저는 그 조형들이 겹쳐지는 공간과 빈공간의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적절한 위치에 물감을 칠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창조되는 작품은 캔버스 위에 채워짐과 비워짐이 공존하는 절제된 미학을 만들어 냅니다. 다름을 인지하고 포용하기 위해서는 절제된 자아로 그 무엇과 마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작품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조우 Encounter 22JA18 no.01, 60.96×76.2cm, 리넨 위에 혼합재료&유화, 2022년.

Q.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에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한 것 같은데, 계기나 이유가 있는가?

어렸을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집안의 반대와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저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혼자서 그림을 곧 잘 그렸고, 간간이 그림대회에 출전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그 후 군대에 입대했고, 훈련소를 나와 자대 배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 내무반에 바로 윗 선임이 미술학도였습니다. 군생활 동안 그 선임을 통해 그림을 어렵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방법과 예술가는 미술을 어떠한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선임이 제대하고 얼마 후 저도 뒤따라 제대를 하면서 결심했지요. ‘미술 공부를 제대로 시작해야겠다’ 하고요. 그 선임 덕분에 꺼져버린 미술의 불씨가 다시 지펴져 이렇게 미술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Q. 영향을 받거나 좋아하는 예술가가 있는가?

알베르토 부리(Albero Burri). 제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시각예술을 공부하며 늘 찾아보던 작품의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세계는 무한한 우주와도 같습니다. 그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의도를 표현하기 위해서라면 대지의 흙, 철판, 캔버스, 녹아내리는 플라스틱 그리고 검게 타버린 나무조각들까지 재료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작품을 창작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고통이 고스란히 묻어져 있습니다. 끝도 없는 깊은 고통과 고요함 속에서 울려 퍼지는 절규, 그리고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깊은 상처들이 작품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저는 알베르토 부리와 같이 진실된 목소리가 담긴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작가로서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

저의 작품 안에 있는 선과 면으로만 완성된 환원적 구조의 조형들은 관찰자에게 당혹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아직은 추상회화가 낯선 관람객들에게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관람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당혹스러움이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무엇인가와 대면할 때 그것이 너무 쉽게 느껴진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창의적인 관찰을 하는데 있어서 익숙한 느낌은 우리의 시지각 발전을 더디게 합니다. 어떠한 새로운 이미지를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순간이 바로 창의적인 시지각이 발현되는 순간입니다. 저의 작품을 통해 관찰자들이 창의적인 시지각을 발현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