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자연의 흔적을 찾아 생명력을 담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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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일상 속 자연의 흔적을 찾아 생명력을 담아내다 신진 작가 발굴 프로젝트…정연주 작가

기사입력2022-05-30 15:20

김찬용 전시해설가 (art_inside@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우리는 아직 자연이 보여준 모습의 10만분의 1도 모른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시대의 천재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남긴 말이다. 물론 아인슈타인의 관점은 과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아직 이해하지 못한 자연의 모습을 은유했을 것이다. 하지만, 비단 과학의 시선에 국한해서 보지 않더라도 우리 일상에는 수많은 자연의 이미지들이 넘쳐난다.

바쁜 일상 속에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자연이 전하는 경이로운 순간들을 가끔 망각하곤 한다. 어쩌면 너무 당연해서 놓치고 있었던 우리 일상 속 자연의 흔적들을 찾아 그 생명력을 담아내는 작가가 있다. 도심 속에 뿌리내린 자연을 통해 현대인의 모습을 은유하는 작가 정연주를 만나보자.

담장, 장지에 혼합재료, 53.0×91.0cm, 2020.

Q. 자신의 작품세계를 소개해 달라.

저는 주로 도심 속에서 자라나는 식물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공물들이 가득한 도심 속에서 공존하는 식물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주로 시멘트 사이나 아파트 화단, 혹은 공사장 펜스 사이에서 주로 마주치곤 합니다. 저는 이런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유로운 형태로 끊임없이 성장하는 식물들을 보면서 생명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식물들은 마치 사회라는 틀에 억압되지 말고 자신이 자라고 싶은 모습으로 자유롭게 성장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 보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생명력이 넘쳐나는 식물들을 사진으로 포착하고 작업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저의 작업은 실재의 자연으로부터 기인한 것임에도 추상으로 인식하고 자연의 상징으로 받아들입니다. 자연의 풍경을 재현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 ‘생명의 성장에너지’라는 자연에 대한 추상관념으로 인식하고자 합니다. 인간이 만든 인공물들의 잔재와 함께 자라는 자연의 풍경들을 그리면서 식물들이 주는 찬란한 생명의 빛이 지치고 무력한 삶에 작은 위안이 되길 바라며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Q. 일상 속 자연을 작품으로 다루게 된 계기가 있는가?

어렸을 때부터 이사를 많이 다녔어요. 계속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되는 생활이 힘들어서 자연스레 정착, 오래됨,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동경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이사를 다니면서도 항상 아파트 화단이나 길거리에는 인공물과 공존하며 자라는 식물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문득 한 장소에서 뿌리를 내리고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며 그저 열심히 자라는 자연의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고 위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자연의 모습은 한 곳에 머물고 싶어 하는 제 소망이기도 하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이 생존하는 동경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Q. 자신의 작품세계가 잘 담긴 대표작을 추천해준다면?

담장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2020년도에 그린 작품으로 지금과 같은 시리즈를 만들 수 있었던 첫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식물의 모습은 제게 가장 많은 생명력을 느끼게 해준 풍경이었습니다. 길을 걷다가 담장 너머로 거대한 식물 덩어리를 보게 되었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방치해 둔건지 빈 공터에서 자라나 담장을 넘어 바닥에 그늘이 생길만큼 크게 자라있었습니다. 담장이라는 인공 구조물의 벽을 넘고 식물들이 자라고 쌓이면서 거대한 형상을 만들어 내는 모습이 가장 자유로운 날것의 자연의 모습이었습니다.

The fence, 장지에 혼합재료, 130.3×194.0cm, 2021.

Q. 감상자는 작품을 통해 무엇을 느끼길 원하는가?

바쁜 현대사회에 치여 조금의 여유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살아가면서도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빠르게 돌아가는 생활에서 길가에 자란 풀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저 인공물들 사이에 공존하는 자연물일 뿐, 생명체라는 것을 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과 자연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적응을 하며 치열하게 생존하는 똑같은 생물입니다. 자연은 멈춰 보이지만 아주 천천히 자라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가 모르는 새 자라고 성장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니 가끔은 주변에 피어있는 자연물들을 보면서 잠깐의 휴식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자신을 되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언제나 빛이 납니다. 작품에서도 볼 수 있듯 생명의 빛이 솟아올라가는 것처럼 생명력 넘치는 자연의 모습을 통해 열심히 살아가려는 모든 사람들이 언제나 찬란히 빛나고 있음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Q. 서양화와 동양화 재료가 섞여 있는 듯한 느낌인데, 작품을 어떻게 제작하는지 소개해 준다면?

저는 주로 장지라는 두꺼운 한지 종류의 동양화 재료를 사용합니다. 한지는 물감이 스며들어가기 때문에 물감의 레이어 층을 두껍게 올려야 색감이 진하게 보입니다. 제 작품은 밑바탕을 먼저 어둡게 깔고 색을 쌓기 때문에 동양화 물감만으로는 색감을 바로 보여주기가 쉽지 않아서 아크릴과 섞어서 사용합니다. 아크릴 물감은 마르면 바로 굳기 때문에 레이어를 쌓기에 용이합니다.

어둠 속에서 출발하는 색의 한 점은 무의식적으로 연속되는 붓 터치에 의해 중첩되고, 밝은 색이 쌓여가면서 식물의 공간감과 깊이감을 만들어 냅니다. 식물이 자라는 형상을 보여주기 위해 그림을 뒤집어 물감을 흘립니다. 그리고 마른 후 다시 뒤집어 물감이 위로 흐른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이렇게 자연이 자라나는 과정을 자연의 법칙을 응용해 생명력을 강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은색물감을 물에 풀어 전체적으로 바름으로써 은은하게 빛나는 느낌으로 마무리합니다.

Q. 작가로서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작업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대중들에게 좀 더 공감이 되고 기억에 오래 남게 할 수 있을까, 자연의 생명력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줘야 효과적으로 느낄수 있을까, 자연의 깊이감을 보여주기 위해 어떤 구도로 들어가면 좋을까 등등 더 좋은 작업을 하기 위해 여러 고민들을 합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아트 페어 전시를 하게 되면서 상업적인 그림과 회화적인 그림에 대해 고민을 다시금 해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예전부터 생각해 봤는데 결국 ‘내 그림을 그리면 된다’라고 결론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업 작가로 지내면서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잘 팔리는 그림은 상업적인 그림이고 잘 팔리지 않는 그림은 회화적인 그림이다‘라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대중들은 이해하기 쉽고 아름다운 작품을 선호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지요. 그렇다고 팔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과연 예술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작품을 대하는 자세는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찬용 전시해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