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무인매장 큰 손 ‘알파세대’ 소비주체 우뚝

프린트

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동네 무인매장 큰 손 ‘알파세대’ 소비주체 우뚝 ‘경험’이 ‘소비’로 전이…어른의 축소판, 온·오프라인 넘나들며 소비

기사입력2023-03-29 00:00

김범규 기자 (bgk7@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안녕하세요! 오늘은 지우개를 랜덤 뽑기 해볼게요.”

수십 개의 캐릭터 지우개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하나하나 뜯어보는 이 영상은 업로드한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4만회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맨날 똑같은 캐릭터가 나와 겹친다’고 하소연하는 초등학생의 마음을 간파하며 공감대 쌓기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유튜브의 구독자는 400만명에 육박하는데 놀랍게도 운영자는 초등학생이다.

성인 못지않은 기획력과 채널 운영능력으로 유튜브계의 신성으로 떠오른 이들은 최근 유통가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스마트폰이 일상화된 2010년대 이후 태어나 유아기 때부터 스마트기기를 접하며 살아온 이들 ‘알파세대’는 아날로그 방식보다는 디지털 이용에 더 익숙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겉모습은 아이일지라도, 이들의 삶은 이전 세대가 초등학생이었던 때와는 전혀 다르다.

◇쇼핑과 카페가 익숙한 ‘알파’=평일 오후 2시, 초등학생 고학년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학교 앞 무인 문구점으로 들어간다. 왁자지껄 떠들며 진열대에서 원하는 물건을 고른 뒤 셀프 계산대에 선 모습이 어른 못지않다.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위치한 ‘문구야 놀자’에서 만난 한 초등학생은 “꼭 뭔가를 사지 않더라도 친구들과 아이쇼핑하러 자주 온다”며, “오늘은 음료수와 장난감을 샀고, 이따 학원에서 친구들과 이걸로 놀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도서관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유튜브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동영상 촬영과 편집하는 방법 ▲모자이크 처리와 음성 변조하는 방법 ▲숏컷 제작방법 등을 교육하고 실제로 촬영도 해본다. 이곳에 참여한 초등학생들은 온라인에 영상을 올릴 때 초상권 등 주의해야 할 점, 디지털 매너 등도 함께 배운다.

이처럼 알파세대는 이전 세대가 겪었던 초등학교 생활과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산업계는 알파세대를 이해해야만 한다. 이들의 소비성향을 알아야만 알파세대가 소비의 중심으로 섰을 때 시장을 선점하고, 계속해서 이끌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호주의 리서치기업 맥그린들연구소(Mccrindle Research)는 알파세대가 인류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세대가 될 거라 내다봤다. 전 세계적으로 매주 280만명씩 출생하고 있고, 오는 2025년에는 22억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약 25%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이 수치는 베이비붐 세대를 추월한다. 저출산이 문제인 국내의 알파세대 수는 2025년에 약 550만명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앞으로 기업의 생존전략은 알파세대가 될 수밖에 없다.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둔 국내 기업은 알파세대를 눈여겨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업이 이들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특징을 알아야 한다. 먼저, 이전 세대와 비교했을 때 알파세대가 보이는 가장 특이한 면모는 오로지 디지털만을 사용하는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라는 점이다.

MZ세대를 비롯해 이전 세대는 자라오면서 디지털을 경험하며 능숙해졌지만, 알파세대는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가 없는 세상을 알지 못한다. 이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스마트기기를 접하고, 인공지능 스피커와 얘기한다. 공부 역시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기기를 이용한다. 또한, 이들은 검색 엔진으로 유튜브를 활용한다. 다시 말해, 텍스트보다는 영상에 더 익숙하다는 것이다. 맥그린들연구소에 따르면, 알파세대의 90%는 2살이면 태블릿 다루는 법을 다 익힌다.

초등학생 고학년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학교 앞 무인 문구점으로 들어간다. 왁자지껄 떠들며 진열대에서 원하는 물건을 고른 뒤 셀프 계산대에 선 모습이 어른 못지않다. 이들 알파세대는 이전 세대가 겪었던 초등학교 생활과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SNS로 검증한 뒤 스스로 쇼핑=알파세대가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해서 온라인 세상에만 빠져 있지도 않다. 동네 무인매장이나 다이소 같은 오프라인 매장의 가장 큰 손이 알파세대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아기 때부터 부모를 따라 ‘키즈카페’에 다니며 입장료와 쇼핑의 개념에 익숙해진 이들은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 스스로 물건을 고르고, 구입하는 ‘리틀 소비자’로서 활동을 개시한다.

이런 경험들은 이들의 호기심을 증폭시키고, 혁신적인 기술에 호응하게 했다. 여기에 합리성도 추구한다. 이런 면모는 유아기 때부터 쇼핑을 함께 다닌 이들의 부모로부터 배웠다고 할 수 있다. 40대에 접어든 밀레니얼 세대의 자녀들이라는 뜻에서 ‘미니 밀레니얼’이라 불리기도 하는 알파세대는 부모로부터 틀에 얽매이지 않는 사고방식과 새로운 경험을 중요시하는 가치관, 합리적인 쇼핑방법에 대해 배웠다.

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내놓은 ‘2023년 금융소비 트렌드와 금융 기회 보고서’에 따르면, 알파세대는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풍족하게 태어나 용돈 관리교육까지 받은 세대라고 정의했다. 즉, 알파세대는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만, 지출을 대하는 태도는 어른 못지 않게 깐깐하다는 말이다.

이와 함께 알파세대는 빠르게 변화한 사회 속에서 살아왔다. 우선 워라밸을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가족과의 여가 시간을 즐기고, 학기 중에는 현장학습이라는 이유로 학교 출석 대신 부모와 해외여행을 떠난다. 게다가 2012년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적으로 열풍이었던 시기에 태어나 평생을 한류의 문화 바람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문화 대국의 시민이라는 자부심까지 있다.

SNS에 자기 얼굴이 노출되는 것에도 익숙하다. 세어런팅(Sharenting, Share+Parenting)이라고 해서 친한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SNS에 자녀의 양육과정을 올리고 타인과 공유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부모를 어린 시절부터 봐왔기 때문이다.

알파세대가 자신의 소비가 합리적인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 먼저 살펴보는 채널은 유튜브와 틱톡이다. 또래 친구들이 운영하는 채널이나 관련 물건에 대해 리뷰하는 채널을 통해 ‘과연 내 돈을 써도 될 것인가’를 따져보기 위해서다. 1차로 합격점을 받으면 그들만의 쇼핑 공간에서 쇼핑하고, 온라인상에서 또래 친구들과 신상 아이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소비주체로서 의사를 표현한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소비=산업계는 이런 알파세대의 움직임에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미래 디지털 콘텐츠 소비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ICT데이터사이언스연구본부 하승희 연구원이 작년 8월 발표한 ‘알파세대의 등장과 미디어 이용행태 분석’에 따르면, 이런 알파세대의 소비경향이 명확히 드러난다.

연구소가 지난 1년간 유료 애플리케이션 구입 경험과 애플리케이션 내 아이템·확장 기능 구입 경험에 관해 묻자, 알파세대는 각각 5.8%, 15.3%가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Z세대(1.0%, 0.5%)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스마트기기 애플리케이션 총지출 금액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Z세대는 1만원~1만5000원 미만(69.6%)이 가장 많았고, 5000~1만원 미만(30.4%) 순으로 집계됐다. 반면, 알파세대는 1만원~1만5000원(30.0%%), 3만원~3만5000원(22.3%), 5000원~1만원(21.6%), 1만5000원~2만원(12.1%), 5000원 미만(10.6%), 3만5000원 이상(3.5%)까지 지출의 폭이 컸다.

이에 알파세대의 트렌드 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 편의점 업계가 이들을 공략한 디지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알파세대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함이다.

이마트24는 편의점 업계 최초로 게임을 하면서 혜택까지 받을 수 있는 자체 모바일앱인 ‘이버스(E-verse)’를 작년 11월 오픈했다. 이 앱은 온·오프라인을 연결한다는 점에서 알파세대에게 주목받고 있다. 특히 리워드 로열티 NFT 기술과 AI 알고리즘을 조합한 앱 환경은 재미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이마트24 상품 다른 그림 찾기’, ‘이프레쏘 원두커피 만들기’, ‘우주 배송’ 등 이마트24가 연상되는 게임을 하면 오프라인 매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을 획득할 수 있다. 현재 이버스는 일간 활성 사용자가 4배 이상 증가했으며, 체류시간은 10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벤트 쿠폰 사용량도 하루 7000건 이상 보여 게이머들의 매장 이동도 원활한 것으로 나타났다.

GS25는 메타버스 플랫폼인 로블록스(Roblox)에 시뮬레이션 게임 ‘모여봐 GS25’를 선뵀다. ‘모여봐 GS25’는 매니저·진열원·배달원·계산원·청소부 등 자신의 역할에 따라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고, 여기서 획득한 재화로 나만의 편의점을 만들어가는 게임이다. 세븐일레븐도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만나볼 수 있다. SKT가 운영하는 ‘이프랜드(ifland)’에 입점했고, 이전에는 모바일 게임업체 ‘해긴’과 손잡고 게임형 메타버스 ‘플레이투게더’에 세븐일레븐 카이아선점을 오픈하기도 했다.

명품업계도 알파세대를 주목하고 있다. 알파세대가 중요한 소비 주체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컨설팅기업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오는 2030년에는 MZ세대와 알파세대가 세계 명품 소비의 80%를 점유할 것으로 바라봤다. Z세대가 처음 명품을 구매한 나이는 밀레니얼 세대보다 3~5세 빠른 약 15세로 나이대도 점점 어려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이는 SNS 영향과 온라인으로 명품을 구매하기 쉬워진 환경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매년 가격이 올라가는 명품 브랜드를 구입해 SNS로 과시한 뒤 프리미엄을 붙여 팔 수 있다는 점도 이들에게 메리트로 다가왔다고 분석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