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작품을 보관하는 세상에서 가장 큰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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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예술작품을 보관하는 세상에서 가장 큰 항아리 네덜란드 로테르담 보이스만 판 뵈닝헨 수장고 ‘The Pot’

기사입력2023-06-25 00:00

네덜란드에는 앙숙인 두 도시가 있습니다. 한 곳은 네덜란드의 전통을 대표하고, 또 다른 한 곳은 네덜란드의 현대를 대표합니다. 축구를 해도 두 도시가 붙으면 도시 전체가 흥분을 하며 필승을 다짐하는 도시, 바로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입니다.

암스테르담은 네덜란드의 수도이며 로테르담은 네덜란드의 도시 2위로 유럽에서 가장 큰 무역항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역의 중심지로 다투었던 네덜란드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현대의 네덜란드 사람들도 여전히 서로를 탐탁치 않게 여기죠.

그런데 네덜란드를 여행하면 암스테르담 도시에 대한 인상은 생각보다 실망스러운 면이 있는데, 로테르담은 기대 이상의 도시라는 인상을 줍니다. 2차 대전으로 피해를 본 로테르담은 도시 전체를 완전히 현대건축으로 새롭게 재건했습니다. 덕분에 유럽의 현대건축을 도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커다란 유리 그릇처럼 생긴 로테르담의 예술작품 수장고 뵈닝헨 더팟(일반적으로 The Pot이라 불린다). <사진=이다>

그 중 단연 돋보이는 건축은 커다란 유리 그릇처럼 생긴 로테르담의 예술작품 수장고 (DEPOT Bojimans Van Beuningen). 뮤지엄 센트럴 광장에 있는 보이만스 판 뵈닝헨 박물관이 개축 공사로 문을 닫으면서, 박물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세계 최초의 개방형 작품 보관소입니다.

뵈닝헨 더팟(일반적으로 ‘The Pot’이라 불린다)을 처음 방문할 때의 전율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뮤지엄 센트럴 광장에 들어서면 오른쪽 구석에서 빛에 반사되고 있는 거대한 유리조각이 보입니다. 그것은 마치 거인 나라의 유리잔 같이 생겼는데, 39.5미터 높이의 수장고 건물입니다. 2017년부터 짓기 시작해 5년 만에 완성한 수장고 더 팟은 그릇 모양으로 1664개의 유리를 붙여 완성했습니다. 자유로운 발상에서 출발한 현대건축의 꿈이 실현되는 도시 로테르담의 명성대로, 예술작품을 보관하고 복원하는 중요한 시설인 수장고는 모든 것을 담겠다는 의지를 담아 그릇 모양으로 탄생했습니다. 이 그릇 모양은 이케아(IKEA)의 4유로짜리 값싼 알루미늄 그릇에서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수장고 건물로 다가갈수록 유리에 비친 자신을 마주하게 됩니다. 더 팟을 방문하면 내가 지금 이 곳에 있다는 걸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순간으로 우리를 맞이합니다.

내부는 더욱 놀랍습니다. 총 6개 층으로 되어 있는 이곳의 중앙은 뚫려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중앙은 투명한 계단들이 복잡하게 설치되어 있죠. 누가 오고 가는지 한 눈에 볼 수 있어, 수장고 내부의 다이나믹한 움직임을 모두 파악할 수 있습니다.

아래층에는 작품을 복원하는 연구소가 있습니다. 3층부터 5층까지 작품 보관실 수장고가 있어 내부에 들어갈 때 관람객들도 겉옷을 벗고 그곳의 흰색 가운을 입어야 하는데 작품을 보관하는 수장고를 개방하다 보니 이물질 침투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입니다.

복원에 대한 정보가 담긴 작품 뒷면 전시 모습. <사진=이다>

이 수장고를 방문하는 이유는 로테르담의 뵈닝헨 미술관이 건물공사 관계로 현재 문을 닫았기 때문입니다. 1849년 프란스 야콥 오토 보이만스의 컬렉션으로 설립된 뵈닝헨 미술관은 네덜란드의 중요한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16세기 작가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작품과 함께 대 피터 뷔루헬의 ‘작은 바벨탑’과 렘브란트, 르네 마그리트와 반고흐까지 네덜란드와 플랑드르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미술관입니다. 건물공사는 2026년까지 진행되기 때문에 꽤 긴 기간 만날 수 없는 작품들을 볼 수 있도록 작품을 보관한 수장고를 일반 관람객에게 개방한 곳입니다.

수장고 뵈닝헨 더팟은 일부 작품만 개방되었는데 작품을 전시하는 방식이 독특합니다. 특수 제작된 투명 강화유리 액자 사이에 작품이 끼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관람자는 작품의 앞모습 뿐 아니라 그림의 뒷 면까지 모두 관람할 수 있습니다. 그림은 미술관의 벽에 걸어둔다는 상식을 깬 이 새로운 설치방식은 복원과정을 함께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하나의 작품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그림의 앞 면 뿐 아니라 액자틀에서 해체된 뒷면도 복원이나 보존 처리가 진행됩니다. 그 과정에서 복원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뒷면에 붓으로 기록됩니다. 하나의 그림을 온전히 감상한다는 것은 그림의 앞면과 역사를 알수 있는 뒷면을 같이 감상할 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장고 더팟이 단순한 수장고가 아닌 작품 복원을 진행하는 곳이기에 이런 방식의 작품 전시가 가능한 것입니다.

뵈닝헨 수장고 더 팟에는 현대 미술작품도 보관되어 있습니다. 달리의 ‘가재모양의 전화기’처럼 21세기 초현실주의 조각작품이 있는가 하면, 이탈리아의 현대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무제’의 작품도 있습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무제’는 바닥을 뚫고 고개를 내민 카텔란의 얼굴이 전시되는 조각입니다. 대개 미술관에서는 그 얼굴만 볼 수 있을 뿐 바닥에 숨겨져 있는 몸 전체를 볼 수 없습니다. 뵈닝헨 더팟에는 그의 작품 전체가 보관되어 있어 더러는 미술관에서 볼 수 없는 그림의 숨겨진 모습도 만날 수 있는 재미가 있는 곳입니다.

로테르담 도시의 전망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옥상에 올라가면 널다란 테라스 카페가 있습니다. 사방이 온통 유리로 되어 있어 로테르담의 맑은 하늘과 맞닿아 있는 야외공간처럼 느껴지는 카페 테라스는 현대적인 시설과 편견을 깨는 발상으로 작품을 만나는 새로운 재미를 주는 이 공간에 또 다른 힐링을 주는 명소입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이다 미술역사가, ‘인간을 탐구하는 미술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