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육체’는 고통보다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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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그의 육체’는 고통보다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화살 꽂힌 순교자의 아름다운 육체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

기사입력2023-06-12 10:57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몸 이곳저곳에 화살이 꽂혀 있는 남성을 본 적 있는가? 유럽에 있는 미술관에 들러 고전 미술작품을 감상할 때면 자주 보게 되는 장면이 있다. 예수의 탄생이나 십자가 처형, 부활 등 성경에 나오는 상징적인 사건이 대표적이다. 비너스의 탄생과 같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사건도 마찬가지다. 거듭 그려져 우리의 눈에 자주 띈다.

그중 궁금증을 자아내는 그림이 있다. 바로 화살을 맞는 건장한 젊은 남성이 그려진 그림.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만테냐(Andrea Mantegna)와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화가 귀도 레니(Guido Reni), 근세 스페인을 대표하는 3대 화가로 손꼽히는 엘 그레코(El Greco), 이외에도 수많은 화가가 손이 묶인 채 화살을 맞는 남성을 그렸다.

만테냐의 경우, 이 남자를 세 차례나 다른 버전으로 그렸고, 판화로 제작하기도 했다. 패션잡지 ‘에스콰이어’에서는 화살 맞은 남성의 모습을 한 무하마드 알리를 표지로 사용하기도 했고, 시사잡지 ‘슈테른’에서는 화살 대신 연필, 만년필, 컴퍼스 등 필기구가 꽂힌 남성이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딕 데츠너(DickDetzner)가 그린 ‘세인트 스너글 베어(St. Snuggle Bear)’에선 화살 맞은 곰인형이 등장한다. 이렇듯 화살 맞은 혹은 맞는 남성은 자주 그려지고, 패러디되고 있다.

그렇다면 화살을 맞는 남성은 누구일까? 화가들은 왜 화살 맞는 남성을 자주 그렸을까?

안드레아 만테냐, ‘성 세바스찬’, 1456~1459, Oil on panel, 68×30cm,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사진 왼쪽). 안드레아 만테냐, ‘성 세바스찬’, 1480, Oil on canvas, 255×140cm, Musée du Louvre, Paris(사진 가운데). 안드레아 만테냐, ‘성 세바스찬’, 1490, Oil on panel, 210×91cm, Ca' d'Oro, Venice(사진 오른쪽).

◇되살아난 성 세바스티아누스=화살 맞는 남자는 바로 세바스티아누스(Sebastiano)다. 보통 세바스찬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성인(St.) 중에도 그가 그림으로 자주 그려질 정도로 유명한 이유는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났기 때문이다.

프랑스 남부 나르본에서 태어난 그는 열렬한 그리스도인으로 수많은 사람을 개종시켰다. 그는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인을 돕기 위해 인정받던 고향의 삶을 버리고, 283년경에 로마 제국의 군인이 됐다. 이때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그의 동료 막시미아누스를 공동 황제로 승격시켜 함께 로마제국을 다스렸던 시기다.

세바스티아누스는 군인이 되어 붙잡힌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비밀리에 도왔음에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로부터 신임을 얻어 친위대 대장으로까지 임명됐다. 황제는 그가 그리스도인인 줄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교 박해가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에, 그가 감옥에 갇힌 신자들을 돌보아 주던 것이 발각되어 즉시 처형된다. 그는 손발이 묶인 채 화살을 맞게 되고, 그렇게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는 듯 보였다. 모두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성녀 이레네(Irene)가 시신을 수습하러 갔을 때 그는 살아 있었고, 그녀의 극진한 간호 덕분에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렇게 그는 화살을 맞고도 죽지 않은 사람이 됐다.

화살을 맞고도 살아난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드라마틱한 사건은 많은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죽지 않고 살아난 일과 화살을 맞아 생긴 상처는 예수의 부활과 십자가에서 창에 찔려 생긴 그의 상흔을 떠올리게 했다. 이 때문에 많은 화가가 그가 화살에 맞는 장면을 그려왔다.

그런데 화가들은 이 장면이 그저 인상 깊은 사건이라서 그렸던 것일까? 많은 화가가 성 세바스티아누스를 근육질의 탄탄한 육체를 지닌 남성으로 그렸는데, 정말 그가 그런 육체를 지니고 있었을까? 물론 그가 군인이었기 때문에 건장한 몸을 지니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화살을 맞고 있는 그의 육체에서는 고통보다는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그를 그린 화가들은 그저 이 사건을 보여주기 위해 그린 것 같지는 않다. 숨겨진 의도가 있을 것이다. (계속,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