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말 한마디가 불러온 혼란…이번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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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대통령 말 한마디가 불러온 혼란…이번만이 아니다 수능, 취학연령, 주69시간…탄탄히 자리 잡아온 국가시스템 있는데

기사입력2023-06-26 09:46

안호덕 객원 기자 (minju815@hanmail.net) ㅣ다른기사보기

대통령이 던진 수능 난이도 출제방향 지시가 교육계에 큰 혼란을 불러오고 있다. 지난 6월15일 교육부 장관에게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대통령 발언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변별력은 갖추되 학교 수업만 열심히 따라가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출제하고 학교 수업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은 출제에서 배제하라’ 정도의 원론적 내용이었고, 그렇게 특별히 문제가 될 만한 것도 아니었다. 학교에서 다룬 내용을 수능에서 출제하라는 건 어느 정부에서나 매번 있었던 당부였다.

그러나 의례적이던 발언은 킬러 문항의 배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복무 감사과 평가원장 사퇴, 대입국장의 경질, 일타 강사 등 사교육업계 때리기로 확전·비화되면서, 수능을 불과 150여일 앞으로 남겨놓은 수험생과 학부모는 혼돈에 빠지고, 사교육 카르텔로 지목받는 학원가는 좌불안석의 모양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부른 혼란, 의도와 목적의 정당성이 있더라도 여론수렴이나 숙의과정 없는 지도자의 즉흥적인 결정이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단면이라 하겠다.

교육의 중심을 공교육으로 옮겨야 한다는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사교육을 줄이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맞다. 그러나 대통령이 나서서 출제범위를 제한하고, 사정당국·수사당국이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칼을 뽑아드는 모습은 올바른 방향으로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교육위원회나 교육 문제에 있어서 주도적 해결 주체로 나서야 할 교육부는 아예 보이지 않거나, 대통령이 불러온 혼란을 수습하기에도 바쁘다. 이런 걸 두고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일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해 7월29일, 교육부가 초등학교 취학연령을 만5세가 된 다음해로 하향시키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박순애 교육부장관이 대통령에게 업무보고 후, 바로 발표된 정책안은 극심한 혼란과 반대 여론을 불러왔다. 교육부장관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근본 원인을 대통령이 제공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주69시간 노동 혼란도 마찬가지였다. 후보 시절 주120시간 노동도 가능하게 해야 한다며, 기존의 주52시간 노동제를 비판하던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2023년 3월6일 고용노동부는 주69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한 개편안을 내놓았다. 반대 여론이 급속히 팽배하자, 대통령실은 고용노동부가 이 법안으로 주 최대 69시간 근무가 가능해질지 몰랐던 것 같다며 장관에게 책임을 또 넘겼다. 대통령은 주 60시간 근무는 무리라며, MZ세대 의견을 듣고 보완할 점을 검토하라고 지시하며 혼란은 가라 앉았다. 이 또한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된 혼란이었지만 제대로 된 사과조차 없었다.

대통령의 즉흥적인 말 한마디에 극심한 혼란을 가져오는 정책, 의도나 목적과 상관없이 해서는 안 된다. 목적이 과정을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가 지탱되는 근간은 시스템의 합리적 운영이다.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부와 수많은 유관기관들이 있다. 노동부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합리적이고 개혁적인 안이 있다면 관련 기관과 숙의해야 한다. 대통령 지시에 장차관이 우왕좌왕하고, 사정기관·수사기관을 동원해 해결하려는 건 전체주의 국가에서 볼 법한 일이다. 왜 3권 분립과 탄탄히 오랫동안 자리 잡아온 국가시스템을 두고, 대통령은 나홀로 이 혼란을 만들어 내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중기이코노미=안호덕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