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바가지 기준…소비자 신고만이 답인가

프린트

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애매한 바가지 기준…소비자 신고만이 답인가 정부·지자체가 합동으로 바가지 단속한다지만, 캠페인 수준에 그쳐

기사입력2023-08-10 11:00

김범규 기자 (bgk7@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광복절을 끼고 3박4일 일정으로 여행지를 알아보다, 결국 베트남으로 가기로 결정했어요. 호텔비용에서 3배 이상 차이가 나니 차라리 국내보단 해외가 낫겠다 싶더군요.”

“주말을 맞아 수도권 외곽에 위치한 식당에서 누룽지 닭백숙을 먹었는데 기본이 8~9만원이었습니다. 물가가 올랐으니 그런가 보다 했어요. 그런데 메뉴명에도 있던 누룽지는 별도라며 1만원을 더 부과하더군요. 먹기 전에 이를 알려주지도 않았어요.”

피서지 ‘바가지’ 요금은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요즘 들어 바가지 상술에 대해 반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이전에는 휴가나 연휴 시즌이면 ‘통상적으로 가격이 오르겠거니’ 하며, 어느 정도는 용인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바가지요금’을 대하는 사회적인 시선이 달라졌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극성수기 물가나 바가지요금이 부담스러워 휴가 일정을 늦추거나, 저렴하고 가까운 해외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바가지 피서지’로 이미지 굳은 국내 관광지=지난 3월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 조치가 해제된 이후, 첫 여름휴가 시즌이다. 하지만, 지역상인과 관광객들은 ‘바가지요금’을 두고 서로 대치상황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 이후 계속되는 소비자 물가상승률에 허리가 휘청이는 소비자와, 코로나로 인해 주춤했던 여행객들을 끌어모으려는 상인들의 이해충돌이 빚은 결과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코로나 이후 외식물가는 지속해서 올랐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3분기 전국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도보다 5.9% 상승해 24년만에 최고 상승폭을 기록했다. 특히 외식물가는 8.7% 상승률을 보이며 평균치를 웃돌았다. 올 2분기까지 이런 상승률은 이어지다 7월 들어서 2.3%로 둔화했지만, 폭우와 폭염의 여파로 식료품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물가는 오히려 올랐다.

여기에 지역축제에 참가한 한 예능프로그램의 출연진에게 옛날 과자 한 봉지(1.52kg)를 7만원에 판매한 전통시장 상인의 모습이 방영돼 논란을 빚었고, 또 다른 지역축제에서는 몇 점 되지 않는 바비큐 한 접시가 5만원에 판매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비판의 대상이 됐다. 최근에는 새만금에서 열린 세계잼버리 현장에서 편의점 GS25가 생수, 얼음 컵 등을 시장가보다 비싸게 팔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이에 여름 휴가철을 맞아 국내보다는 저렴하고 가까운 동남아를 택하거나, 극성수기 물가가 부담스러워 일정을 늦춰 늦은 휴가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시간 조정마저 어려운 경우에는 휴가를 포기하고 집에서 취미를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일명 ‘휴포족’을 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문제는 ‘가격’뿐만이 아니다. 위생·시설관리 및 환급금 지연사태 등 다양한 형태의 소비자 피해 사례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여행사를 통해 항공과 숙박을 예약한 후 계약금을 결제했지만, 여행 출발에 임박해 수술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 의사소견서를 제출한 소비자에게 계약금 환급을 거부하는 사례 ▲펜션 에어컨에 다량의 곰팡이가 발견됐지만, 관리인과도 연락이 되지 않고, 위생 불량으로 컴플레인을 걸어도 제대로 대처를 해주지 않는 사례 ▲항공기 운항 지연으로 미리 예약한 호텔과 투어 일정을 소화하지 못해 손해 배상을 요청했는데도 보상을 거부하거나, 늦게 대처해 소비자의 속을 태우는 사례들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이런 소비자 피해 유형은 매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캠페인 수준보다 높은 ‘바가지’ 대책 필요한데=이처럼 극성수기 국내 여행지에 대한 ‘바가지요금’을 비롯해 각종 괴로움을 호소하는 민원이 이어지면서 정부와 지자체가 나섰다.

현재 행정안전부는 8월말까지 ‘여름철 물가안정 특별대책기간’으로 두고, 지자체·유관기관과 합동으로 물가안정대책을 실시하고 있다. 중점 지역은 대표 피서지인 계곡, 유원지, 해수욕장 등이다.

행안부 지역경제과 관계자는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원래 코로나 이전에는 해수욕장이 문을 여는 7월부터 시행했었는데, 최근 바가지요금이 크게 이슈화돼 평소보다 앞당겨 6월19일부터 실시하고 있다”며, “명동 등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모이는 곳도 대책을 마련해 추진 중이고, 9월에 예정된 반딧불 축제 같은 행사장도 선제적으로 대응해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돌아오는 추석과 관련해서는 추석 한 달 전부터 성수품 인상 점검도 할 예정”이라며, “기후로 인해 농수산물 가격변동 폭은 예측하기 힘들지만, 지자체에 협조를 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문화관광축제를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물가안정을 위해 노력 중이다. 대변인실 관계자는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축제장에서 최대한 착한가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캠페인을 통해 유도하고, 지역 우수사례 발굴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우선, 축제 먹거리 가격과 사진을 제공한다. 이를 관광객은 ‘대한민국 구석구석’ 축제통합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 현장 모니터링을 통해 품목별 가격항목을 보다 세분화해 점검한 후, 그 결과를 하반기에 예정된 2024년 문화관광축제 지정을 위한 심사에서 반영할 예정이다.

‘바가지’는 ‘횡포’라고 할 수 있고, 결국 지역상권을 어둡게 만든다. 바가지요금 근절 대책이 캠페인과 홍보에 국한돼 있는데, 불공정거래에 노출된 소비자의 피해를 막기위해 법제도 마련 등 개선책이 필요해 보인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각 시도에서도 피서지 바가지요금을 점검하고 있다. 충청남도 산업경제실 경제정책과 생활경제팀 관계자는 중기이코노미의 통화에서 “얼마 전 태안지역의 피서지 바가지요금 점검을 나갔었고, 앞으로 보령지역에 나가기 위해 보령시군과 협의 중”이라며, “각 시군에도 물가 점검 차원에서 현장에 나가 점검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각 시군에서 점검 나갔던 내역과 물가점검 캠페인 상황 및 자료들을 격주로 받고 있다. 이를 취합, 정리해 주무부처인 행안부에 제출하고 있다”며, “현재까지 불공정상거래 행위는 발견된 것이 없고, 7월말일 자로 가격 미표시 업소 1건이 발생해 계도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동해시는 ‘피서철 숙박요금 피크제’를 통해 숙박업소 물가안정화에 나섰다. 이 요금제는 7~8월 숙박요금을 평상시 요금의 최대 2배 이내로 책정하고, 이를 시에 사전 신고한 숙박업소의 명단을 시청 홈페이지를 통해 홍보해 주는 제도다. 또한, 소비자의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 객실뿐만 아니라 음식가격 등 품목별 요금표를 정비해 시청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물가 만족도, 음식점 및 숙박시설 등의 서비스 환경 개선을 위한 캠페인도 진행했다. 하반기에는 관광업계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친절 교육도 진행해 관광 서비스 만족도를 높일 방침이다.

양양군도 ‘피서지 물가안정 및 착한가격업소’ 이용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인천시 역시 주요 피서지인 을왕리해수욕장과 동막해수욕장 지역상인들에게 홍보물을 배부하며 바가지요금 및 부당 상행위 근절을, 관광객에게는 착한가격업소를 이용할 것을 독려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서울시도 외국인이 많이 찾는 동대문, 명동, 홍대 등 7대 관광특구를 중심으로 바가지요금 특별점검에 나섰고, 전통시장을 대상으로 가격표시제를 집중적으로 점검했다.

이렇듯 각 시도는 피서지 불공정거래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법률상 강제할 근거가 없어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는다. 실제로 동해시가 추진하는 ‘숙박요금 피크제’는 사업 참여를 포기한 업소도 있었다. 자율가격제를 적용하고 있는 만큼 시에서도 시장가격을 규제할 수는 없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한 관계자도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바가지요금은 분명 잘못된 상행위이지만,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라며, “오히려 가격이 다 똑같으면 담합이라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될 수 있다. 가격 결정권은 장사하는 상인에게 있고, 가격을 올렸다고 해서 법으로 조치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법 규정에도 나와 있지 않다”고 귀띔했다.

‘물가안정법’을 통해 우리나라 물가를 관리하는 기획재정부도 코로나 시기 마스크 수급 문제나 요소수 사태 등 극한상황일 때만 나선다. 즉, 현재 우리나라에는 어느 정도의 수위가 ‘피서지 바가지 물가’인지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없고, 강제하는 법률도 없다는 말이다.

결국 바가지요금과 직면한 소비자들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밖에 없다. 바가지요금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방법은 공시된 가격표를 확인하는 것이다.

행정안전부 지역경제과 관계자는 “바가지요금이라고 특별히 정의된 건 없지만, 현재로서는 지자체에 가격표를 공시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며, “홈페이지에 공시된 가격 외에 추가 요금을 받을 경우에는 바가지요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이럴 경우 지자체에 문의하면, 소비자보호법에 따라 구제가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충남도 생활경제팀 관계자도 “시군마다 피서지 점검반을 편성하고 있고, 전화번호도 비치돼 있다”며, “만약 이상한 점이나 의문사항을 발견할 경우, 전화하면 바로 조치된다”고 말했다.

단, 평상시 요금이 3만원인데, 극성수기 요금이 15만원으로 훌쩍 뛰어올랐다고 해서 바가지요금이라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 현장 관계자들의 말이다. 즉 공시된 가격보다 더 부를 경우를 바가지요금으로 본다.

현재 정부와 지자체는 국내여행 활성화를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하지만, 외국보다 가고 싶은 명품 피서지가 되려면 ‘바가지’부터 확실하게 근절해야 한다. ‘바가지’는 ‘횡포’라고 할 만큼 해당 관광지의 이미지에 타격을 가하고, 내수 활성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결국 지역상권을 어둡게 만들 수 있다. 캠페인과 홍보에 국한돼 있는 바가지요금 근절 대책은 법령 개정을 통해 중앙부처 차원에서 명확한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어 보인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