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지시”라 R&D 예산삭감을 강행한다니

프린트

오피니언 ㅣ 사설 “대통령 지시”라 R&D 예산삭감을 강행한다니 과학기술 현재와 미래의 주역들보다 대통령 말이 더 중한가

기사입력2023-09-08 13:46

R&D(연구개발) 예산삭감 파장이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당장 진행되는 연구가 중단될 판이라고 호소하고, 연구기관들은 연구자 유지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대통령 지시라며, 강경한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조성경 과기정통부 1차관은 7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R&D 예산삭감에 대해 “대통령께서 지시하신 내용을 제때 이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돌연 예산을 깎은 것이 아니란 취지와 동시에, 대통령의 지시사항이니 재고의 여지가 없다는 완고한 입장을 읽을 수 있다.

정부의 강경대응 기조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은 이 뿐만이 아니다. 과기정통부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에 속한 계약직 연구원과 대학원생들이 예산삭감으로 쫒겨날 판이라는 지난 7일 언론 보도에 대해 부정하지 않았다.

같은 날 보도해명 자료를 통해 “비효율을 없애고 선진R&D 체계로 혁신할 수 있도록 출연(연) 연구현장과 소통하며 2024년도 예산 분배를 함께 해나갈 계획”이라면서, “비효율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출연(연) 연수인력 등 미래세대의 안정적 연구활동이 유지될 수 있도록 연구현장과 긴밀히 소통하며 노력하겠다”고 밝힐 뿐이다. 계약직 연구원과 대학원생들이 쫒겨날 일 없다는 해명도 아니고, 쫒겨나지 않도록 조치하겠다는 약속도 아니다. R&D 예산삭감이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는 맥락이 느껴진다.

하지만 과학계는 정부의 R&D 예산삭감이 감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정부출연 연구기관 25곳의 사업비는 총 25% 삭감됐다. 개별 기관들은 올해보다 20~30% 가량 삭감된 예산으로 내년도 연구를 진행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에 연구자들이 하나로 뭉쳐 반대 목소리를 내기에 이르렀다. 지난 5일 전국공공연구노조와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조, (사)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 등 과학기술단체들이 모여 국가 과학기술 바로 세우기 과학기술계 연대회의를 결성했다. 이들은 출범 기자회견문을 통해 “현 정부는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묵묵히 이바지해온 연구 현장을 비도덕적 카르텔로 매도하며 예산삭감을 강행하고 있다”며, 정부의 사과와 예산의 원상회복을 촉구했다.

아울러 “연구사업에 상대평가를 도입해 하위 20% 사업을 강제 구조조정하고 연구수당 및 능률성과급을 축소 하겠다는 등 각종 제도 개악을 예고했다”며, “이는 명백히 과학기술을 무시하고 연구 현장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미래 과학기술계의 주역들 역시 행동에 나섰다. KAIST 학부 총학생회와 대학원 총학생회 등 주요 이공계 및 연구중심대학 학부와 대학원 총학생회들은 공동으로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정부출연 연구기관 및 이공계 연구중심대학에 대한 R&D 예산삭감 재고”를 요청했다.

이들은 “R&D 예산삭감은 연구 환경을 급격히 악화시키고, 연구 몰입 환경에 지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출연연에서는 연구비에 맞춰 인력을 배분하고 계획을 세우는데, 예산이 삭감될 시 연구 내용이 달라지고 질적인 면에서 하락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출연연의 예산과 인력에 대해 정부는 일방적인 통보 혹은 규제를 가하는 것이 아닌 과학자들을 과학기술정책의 주체로서 존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대통령의 말을 떠받드느라 이같은 과학기술계 현장의 목소리를 전혀 듣고 있지 않은 듯하다. 과학기술의 현재와 미래 주역들보다 대통령의 말을 더 중요시한 결과 R&D와 과학기술, 그리고 한국 경제의 미래가 훼손될 위기에 처해있다. 정부의 강경대응에서 미래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진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