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가을, 자연이 주는 휴식 ‘영국 풍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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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청명한 가을, 자연이 주는 휴식 ‘영국 풍경화’ 카날렛토, 클로드 로랭, 윌리엄 터너, 존 컨스터블

기사입력2023-09-18 14:25

나무를 애무하는 듯 선선한 바람이 마음도 기분 좋게 하는 가을입니다. 바다로 떠난 사람들이 한여름의 열기를 씻어내려는 듯 이제 생생한 자연을 담으러 산에 오릅니다. 9월 미술관은 풍경화를 보러 가기 좋은 계절입니다.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에 바다를 주제로 한 풍경화가 있었다면, 19세기 영국은 자연을 주제로 한 풍경화로 영국미술의 전통을 세웠습니다.

18세기 유행하기 시작한 영국의 그랜드 투어는 풍경화에 대한 관심을 일으켰습니다. 이탈리아 로마와 나폴리, 특히 베네치아의 ‘그림 같은’ 풍경을 담아가기 위해 그림 엽서 같은 작품을 사들이는 전통이 생겨납니다. 영국인들의 여행 기념품이 된 풍경화의 유행 덕분에 베네치아 화가들은 덩달아 이름을 날리게 되었는데, 대표적인 화가가 조반니 안토니오 카날 즉, 카날렛토입니다.

카날렛토, ‘베네치아 카나렛조 입구’, 1734~1742년, 영국내셔널갤러리

국립중앙박물관 내셔널갤러리 전에서 영국미술이 있는 홀에는 영국 풍경화의 전통과 관련된 4명의 거장의 작품이 함께 전시되고 있습니다. 그 시작을 열었던 화가가 카날렛토입니다.

베네치아 운하의 가정집에서 태어난 카날렛토는 아버지를 따라 오페라 극장 무대를 그리던 화가였지만, 베네치아 영국 주재 대사였던 요셉 스미스의 후원으로 많은 영국인들에게 주문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청명한 하늘과 푸른 바다가 맞닿아 있는 베네치아 운하와 건축물의 고전적인 모습을 풍경화에 담은 카날렛토 그림에 매료되었습니다. 이번 전시회에 걸린 작품 ‘베네치아 카날렛조 입구’는 18세기 그랜드 투어를 통해 영국에 들어온 카날렛토의 전형적인 풍경화입니다.

클로드 로랭, ‘성 우르술라의 출항’, 1641년, 영국내셔널갤러리

풍경화에 끌린 영국인들은 과거의 위대한 풍경화가들, 특히 17세기 프랑스 풍경화가 클로드 로랭의 작품에 감탄했습니다. 1628년경 로마에 정착한 로랭은 폐허가 된 고전 건축물 유적을 바라보며 과거를 상상하고, 장대한 풍경 속에서 역사와 신화를 재현하는 역사 풍경화를 그렸습니다. 그는 역사의 위대함을 기억하기 위해 떠오르는 태양 빛에 물드는 고전 건축물이 서 있는 땅을 그렸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영국 풍경화의 정신적인 토대가 되는 클로드 로랭의 작품 ‘성 우르술라의 출항’이 전시되었습니다. 로마에 순례를 떠난 브리튼의 공주 우르술라의 순교를 담은 이 작품에서 로랭은 아침의 태양이 대기를 비추는 신성함을 그렸습니다. 고전적 건축물과 나무의 묘사가 풍경화의 분위기를 되살려주는 작품입니다.

클로드 로랭의 풍경화는 영국인들 뿐 아니라 화가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선사합니다. 한 화가는 로랭의 작품을 보고, 풍경화에 자신의 미래를 걸었는데 바로 윌리엄 터너입니다.

영국 런던의 코벤트 가든에서 이발사의 아들로 태어난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는 10대부터 천재 소리를 들을 만큼 그림에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는 10대 후반에 일찍이 런던 왕립미술아카데미에 입학하고 26세에 왕립미술원 정회원, 31세에 교수가 되는 성공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왕립미술원 초대원장이었던 조슈아 레이놀즈는 풍경화가 역사화나 초상화보다 낮은 가치를 지니는 장르라 여겼습니다. 윌리엄 터너는 역사화의 배경처럼 그려지는 풍경화를 색채와 대기로 가득 찬 위엄있고 독립된 장르로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윌리엄 터너에게 풍경화의 가능성을 깨닫게 해 준 클로드 로랭을 배우고자 평생을 노력합니다. 클로드 로랭의 풍경화에 담긴 노란 태양 빛이 그림이 살아나도록 생생한 힘을 준다는 인상을 받은 윌리엄 터너는 풍경의 묘사보다 풍경에 자연의 색채를 담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국가에 자기 작품을 기증하는 조건으로 영국내셔널갤러리에 클로드 로랭 작품과 자기 작품을 나란히 걸어달라고 합니다. 클로드 로랭의 ‘시바 여왕의 승선’과 터너의 ‘카르타고 제국의 건국’은 그래서 함께 전시되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회에도 윌리엄 터너의 작품이 걸린 곳에서 클로드 로랭의 작품을 함께 만날 수 있습니다.

윌리엄 터너, ‘헤로와 레안드로스의 이별’, 1837년 이전, 영국내셔널갤러리

윌리엄 터너는 색채가 지배하는 풍경화를 그리기 위해 매년 영국과 유럽을 여행했습니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나라는 스위스와 이탈리아입니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그는 아침 안개에 싸인 대기의 색채를 관찰했습니다. 보이는 풍경을 묘사하기보다 대기의 색채가 그림을 지배하는 터너의 독특한 풍경화는 이렇게 탄생합니다. 그는 자연의 숭고함을 담는 낭만주의 풍경화가입니다. 자연의 거대한 힘을 직접 경험하고 느낀 감각을 그림에 담기 위해 4시간 동안 폭풍우 치는 바다에서 뱃머리에 자신을 묶게 한 적도 있습니다. 위대한 풍경화는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힘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풍경화의 혁명을 가져온 화가가 윌리엄 터너입니다.

‘헤로와 레안드로스의 이별’은 터너의 후기 작품으로 그리스 신화의 헤로와 레안드로스의 이야기입니다. 매일 밤, 바다를 헤엄쳐 헤로에게 찾아오는 레안드로스의 사랑을 이루어주려고 큐피드가 등을 밝혀줍니다. 달빛이 비추는 밤 바다의 풍경에는 신화가 주는 신비로움과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자연의 거대한 세계가 존재합니다. 상상력과 화가의 감성으로 밤의 풍경을 압도적인 색채 속에 담았습니다.

존 컨스터블, ‘스트렛퍼드의 종이 공장’, 1820년, 영국내셔널갤러리

위대한 풍경화가였던 윌리엄 터너만큼 영국인들에게 사랑받는 동시대의 화가 존 컨스터블은 한적하고 소박한 영국의 자연을 소재로 서정적인 풍경화를 정착시켰습니다.

시골 출신으로 자기 고향의 아름다운 자연을 풍경에 담았습니다. 로랭이나 카날렛토처럼 외국 화가들의 풍경화에 만족해야 했던 영국인들에게 영국의 시골에 담긴 소박한 아름다움을 되찾아 준 화가입니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영국 풍경화를 통해 자연이 주는 휴식의 시간을 만나러 길을 나서봅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영국내셔널갤러리 전시회에서 위대한 풍경화를 감상할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랍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이다 미술역사가, ‘인간을 탐구하는 미술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