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R&D 인식, 예산삭감보다 우려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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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왜곡된 R&D 인식, 예산삭감보다 우려 더 크다 이공계 기피현상·인재유출 등 과학계 타격 발생하면 이미 늦다

기사입력2023-09-27 13:21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국회의원은 26일 성명에서, 언론보도를 인용해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R&D 예산삭감에 대한 세간의 비판을 알고 있다”면서 “국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다 지원할 수는 없다. 국가의 지원은 관련 기업과 연구진이 홀로 설 수 있는 기술 자립력을 갖출 때까지 집중하는 것이 맞다”고 발언한 사실을 밝혔다. 조승래 의원은 “대통령이 이런 그릇된 인식을 갖고 있으니 R&D 예산이 엉망진창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R&D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이 조승래 의원 지적과 같다면, 예산삭감보다 더욱 크게 우려되는 사안이다. 정부는 현재 다수의 연구기관을 직접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정부의 역할을 그저 지원으로만 제한하는 발상은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존재 의의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 결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단순히 시각의 차이라고 볼 수도 없는 것이, R&D에는 기업이 즉각 활용할 수 있는 연구만 있는게 아니다. 기초과학연구는 모든 R&D의 기초에 해당하지만, 실용단계로 넘어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아 시장 영역에 맡겨서는 고사하기 십상인 분야다. 실용적인 기술이라 할지라도 실패의 리스크를 온전히 민간이 지도록 했다가는 누구도 도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R&D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출연연과 기업, 대학 등 민간이 R&D 과정에서 다각도로 협력하는 과정을 정부가 지원하고 뒷받침해야 하는 이유는 이밖에도 더 있다. 그런데, R&D 예산 삭감을 주도한 대통령의 인식이 이러니 내년의 예산삭감뿐만 아니라 R&D를 둘러싼 환경이 더욱 피폐해질 일이 뒤따를까 우려가 커진다.

이와중에 과학계는 계속해서 정부에 예산삭감 철회와 정책기조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5일 기초과학 학회협의체(기과협)는 소속 기초과학 관련 학회들과 공동으로 발표한 성명에서, “이번 발표 내용은 정부의 국정목표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는 문제를 드러냈다”고 꼬집었다. 당초 정부가 국정목표 제시 당시 R&D 예산을 정부 총지출의 5% 수준에서 유지한 사실, 올해 3월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도 5년간 연구개발 부문에 170조를 투자해 2030년에는 과학기술 5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한 사실과 예산삭감이 전혀 맞지 않다는 것이다.

기과협은 “제도변경과 예산삭감의 최대 피해자가 이공계 대학원생과 포스닥 등 학문후속세대가 될 것이며, 그 결과 해외로의 인재 유출이 심각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했다. 또 IMF 이후 나타난 이공계 기피 현상이란 아픈 기억을 꺼내들며, “정부의 근시안적인 정책이 향후 회복하지 못할 상황으로 이어진다면, 과학기술 패권 경쟁에서 인재 양성만이 유일한 희망인 우리에게는 치명타가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래세대가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란 우려는 과학계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다.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 총연합회는 26일 ‘출연연 정부출연금 삭감안 철회 및 원상회복을 위한 호소문’에서, 출연연 정부출연금 중 직접비 최대 28.6% 삭감은 “학생 연구원 감축, 연구활동에 필수적인 실험 및 학술활동 마비 등의 문제를 야기시킬 것으로 예상된다”며 “특히 출연금 직접비의 많은 부분이 학생 연수직 인건비로 사용되고 있음을 고려해 볼 때 천여명 이상의 감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이러한 사태는 전문화된 과학기술 인력의 훈련과 공급에 차질을 빚을 뿐만 아니라 이공계 기피현상을 더욱 심화시켜 국가과학기술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며, “R&D 다운 R&D, 성과를 내는 도전적 R&D를 하기 위해서는 도전성·혁신성·지속성·집중성·체계성이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며, 그 근간에는 안정적 연구비의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과학계의 요구처럼 예산삭감, 그리고 선택과 집중 위주로의 제도변경은 즉각 철회돼야 한다. 아울러, 제도변경이나 예산배분에는 과학계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 대통령부터 R&D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과학계와 R&D의 미래에 타격이 발생한 이후에는 이미 늦다.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연구 현장을 선택해준 미래세대에게 열악한 환경만을 남겨서는 결코 안된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