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권하는 정부…가계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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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빚 권하는 정부…가계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가계부채 방치해선 안돼…“정부 정책과 사회경제적 구조 원인 크다”

기사입력2023-12-19 11:10

김은정 객원 기자 (ejcong@pspd.org) ㅣ다른기사보기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경고합니다. 마지막입니다. 이번에는 문 앞에서 끝나지만 다음에는 계고(戒告) 합니다.”

이달 초 주택담보대출을 갚지 못해 집이 경매로 넘어간 뒤 낙찰자로부터 퇴거 요구를 받다, 결국 가족을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었던 한 직장인의 아파트 현관에 붙어 있던 문구다. 감당할 수 없는 빚은 결코 문 앞에서 끝나지 않고, 기어코 문 턱을 넘어 한 가족을 몰살했다. 지난 13일에는 전북 익산에서 자영업을 하며 억대의 빚을 진 일가족 4명이 숨진채 발견됐다. 지난 9월에도 송파구에서 일가족 5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 바 있다. 이들 가족은 빚독촉을 피해 3개월 넘게 도피생활을 했다고 하는데, 이들이 거주하던 주택의 우편함에는 가스요금 독촉장이 쌓여있었다고 한다.

가족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살해 후 자살’ 사례의 공식적 통계는 없다. 다만, 경찰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 2021년 자살을 한 사람들의 원인 중 22.5%가 경제적 문제에 의한 것이었다. 또한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실이 지난 2022년 보건복지부 등을 통해 입수한 ‘2013년~2020년 자살전수조사보고서에 따르면, 8년간 자녀를 살해한 후 자살한 부모는 총 160명인데, 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원인도 경제적 문제(34.3%)였다.

경매로 넘어간 집 앞에 붙어 있던 ‘마지막 경고’를 본 채무자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비록 남의 돈을 빌려서 이뤄낸 것이기는 하나, 소위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뤄놓고도 결국 꿈이 절망으로 바뀌고 다시 삶의 의지까지 잃게 되는 과정이 먹먹함을 남긴다.

삶의 마지막 의지 마저 빼앗아 가는 빚…가계에만 가혹

우리 사회는 빚을 지고 갚지 못하는 이들에게 유독 야박하다. ‘빚을 졌으면 어떻게든 갚아야 한다’는 시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빚을 졌으면 갚아야 한다. 하지만 빚을 못 갚았다고 해서 그것이 곧 죽을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건 돈을 빌려주는 쪽에서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금융회사들은 대출을 할 때 신용도에 따라 이자율을 달리 정한다. 신용도가 낮은 차주에게는 더 높은 이자율을 적용하는 식이다. 이자율은 달리 말하자면,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일종의 보험료를 포함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들은 보험료를 실컷 받아가 놓고, 채무자가 돈을 갚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채무를 조정하는데 협력하기보다 상환을 독촉하거나 채권을 추심기관에 팔아넘기기에 급급하다.

지난해에는 정부가 청년들을 상대로 특례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도입하겠다고 하자, 일각에서 ‘빚내서 투자한 사람들의 빚까지 나랏돈으로 탕감해 주는 것이냐’는 논란이 일어난 바 있다. 채무조정을 하는데 채무가 발생한 원인에 따라 그 방식을 달리할 수도 없는 일이고, 채무조정은 채권자와 채무자의 권리관계를 조정하는 것이지 나랏돈이 들어가는 일도 아니다. 게다가 실제로 신복위를 찾아서 채무조정을 신청했던 청년들의 신청사유 중 절반 이상이 생계비 부족과 실직 등의 사유였으며, 투자로 인한 연체가 원인이었던 인원은 전체의 0.8%에 불과했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수준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정부와 국회의 직무유기가 빚에 허덕이는 가계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더 늦지 않게 한계채무자와 사회적 지원 사각지대에 놓인 가계를 보호하기 위해 나서야 할 것이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더 나아가 국민경제 전반을 놓고 보더라도, 부족한 인적자원이 부채로 인해 경제생활을 하지 못한 상황을 방치하는 것보다는 채무조정을 통해 조속히 인력시장에 복귀하도록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앞에 소개했던 사건은 소위 빚진 사람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얼마나 가혹한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가계부채의 원인은 탐욕보다 ‘구조적 원인’에 기인한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가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아주 심각한 수준에 달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중 절반 이상은 주택담보대출로 인한 부채다. 우리 가계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 빚을 동원해서라도 내 집 마련을 하겠다는 결정을 두고 누군가는 탐욕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주거불안과 때를 놓치면 금방 치솟아 버리는 집값을 보면서도 가계에서 빚을 동원해서 내 집 마련에 나서는 것을 탐욕이라고만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역대 정권이 주거안정을 약속하며 서로 번갈아 가며 권력을 취한 와중에도 전월세 시장을 안정시키고, 공공임대주택을 충분히 확보하면서 주택가격을 안정시켰던 성공사례가 없었다는 점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주거는 인간 생활의 아주 기본적인 요소다. 주거불안이 계속된다면 큰 빚을 내서라도 삶을 안정시키고 싶어 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역대 정권은 주거불안의 근원을 해결하기보다는 주거불안으로 인해 우려하는 대중들의 마음을 이용하기 바빴다. 주거불안을 해결하고 싶은 가계의 요구와 부동산 가격을 계속 올리고 싶은 정권 이해가 잘 맞아 떨어진 정책이 바로 ‘빚내서 집사라’ 정책이다.

그 결과가 세계에서 세번째로 높은 GDP대비 가계부채 비율이자, 세계 최고수준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0년 81%로 주요 43개국 중 14번째 수준이었지만, 2022년 4분기 기준으로는 스위스(128.3%), 호주(111.8%)에 이어 세 번째를 차지하는 수준(105.0%)까지 치솟았다. 우리나라의 가계빚 부담 정도와 증가 속도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가계가 이를 감당할 수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2021년 기준 ‘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6.5%다. 부채를 갚을 수 있는 상환 능력은 결국 가처분 소득인데, 이보다 두 배가 넘는 빚을 지고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결국 아파트 문 앞에 계고장이 붙는 일이 벌어지는게 아니겠나.

채무 조정과 재기 지원 부족…잇따른 참극을 초래했다

현재 국회에는 ▲불법사금융 대출의 이자뿐만 아니라 원금상환도 금지하는 대부업법 개정안, ▲대출 실행 시 상환가능 범위를 넘어선 과잉대출이 실행되지 않도록 하는 불공정·과잉대출규제법 제정안, ▲과도하고 불공정한 추심으로부터 채무자 보호를 강화하는 채권추심법 개정안, ▲파산자의 직업차별 조항을 삭제하는 각 상임위 법안들, ▲개인회생 채무자의 주거권 보장과 신속한 빚 청산과 사회적 재기를 위한 채무자회생법 개정안 등이 계류되어 있지만 관련 논의가 활발하지 않다. 감당하기 어려운 빚에 허덕이는 가계를 위한 대책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수준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작금의 가계부채 문제는 정부 정책과 사회경제적 구조에 그 원인이 크다. 어쩌면 일가족을 사망에 이르게 한 아파트 문 앞 경고장은 경매물건을 낙찰받은 사람이 아니라 정부와 정치권이 붙인 게 아닌지 모르겠다. 정부와 국회의 직무유기가 빚에 허덕이는 가계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더 늦지 않게 한계채무자와 사회적 지원 사각지대에 놓인 가계를 보호하기 위해 나서야 할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