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과 함께 이동노동자 권익 챙겨야 진짜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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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중기 ㅣ 더불어 중기 휴식과 함께 이동노동자 권익 챙겨야 진짜 쉼터 “단순히 쉬기만 하는 곳?”…경기도 ‘이동노동자 쉼터’에 가보니

기사입력2023-12-28 10:29

김범규 기자 (bgk7@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부천시이동노동자쉼터 모습. 198㎡ 규모의 이곳은 기부 받은 각종 물품들을 비롯해 안마의자, 세족기, 신발 살균소독기를 이용할 수 있다. ©중기이코노미

“쉼터의 개념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공간구성부터 이동노동자의 권익까지 바뀔 수 있습니다.”

부천시이동노동자쉼터 박순광 운영실장의 말이다. 박 실장은 중기이코노미와의 인터뷰에서, ‘이동노동자 쉼터’는 단순히 휴식만을 보장하는 단계에서 끝낼 것이 아니라 개별 노동을 하는 이동노동자의 ‘권익’을 보장해 주는 기구로서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 주차나 접근성 문제로 쉼터를 활용하지 못하는 배달노동자까지도 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면에서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대다수의 ‘이동노동자 쉼터’는 쉼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홍보가 미흡해 쉼터의 존재를 모르는 노동자들이 상당했고, 알고 있다 하더라도 현실적인 문제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중기이코노미가 현재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이동노동자 쉼터’를 찾아가 봤다.

“몰라서 못 가고, 알아도 못 간다”…관리 부실에 홍보도 미흡

“네? 그런 곳이 있어요? 어디 있나요? 만약 알았다면 잠깐씩 가서 이용했을 거예요.”

“일해야지 거기서 쉴 시간이 어디 있어요? 알았다 하더라도 이용하지 못했을 겁니다.”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이동노동자 쉼터 인근에서 만난 배달노동자들의 말이다. ‘추위를 피해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알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처럼 두 가지로 갈렸지만, 취재하는 동안 ‘쉼터’의 존재를 아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배달노동자들이 하루에도 수십번씩 드나드는 번화한 길목에 자리 잡고 있는 데다 어디서나 한눈에 보이는 야당역 환승주차장에 위치해 있음에도 ‘이동노동자 쉼터’의 존재를 아는 배달 노동자는 만날 수 없었다.

파주시이동노동자쉼터 전경. 공영주차장 기둥과 주차된 자전거 및 차량에 가려져 쉽게 찾을 수 없다. ©중기이코노미

파주시이동노동자쉼터 실내는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 각종 기기들이 자리하고 있다. ©중기이코노미

생수 냉장고는 한 낮인데도 벌써 비어 있고, 쓰레기통은 넘칠 듯 꽉 차 있었다. ©중기이코노미

파주시이동노동자쉼터에 도착하자마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주소와 위치를 익히 알고 있던 기자조차 쉼터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차량이 나오는 출구의 건너편에 위치해 있는데다 6층짜리 건물을 받치고 있는 기둥에 가려져 있던 탓이다. 게다가 그 어디에도 사인물을 찾아볼 수 없었다. 주차돼 있는 버스와 자전거 사이로 ‘이동노동자 쉼터’라는 간판 불빛만이 보일 뿐이었다.

공영주차장이라는 좋은 입지 조건에도 불구하고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 있어 사인물 없이는 쉼터의 존재를 알기 어려워 보였다. 심지어 쉼터 바로 건너편에 주차한 오토바이를 이용하는 사람에게 쉼터가 있는 것을 알았냐고 묻자, “쉼터가 있었어요?”라며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라워할 정도다.

경기도청 관계자는 최초 개소 시 운영을 시작한다는 내용으로 미디어에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거리에 플래카드를 걸고 유인물을 나눠줬다고 중기이코노미에 설명했다. 하지만, 파주시 상가 건물에서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한 배달노동자는 “홍보방식이 잘못된 것 같다”며, “단 한 번도 지나다니면서 쉼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의아해했다.

일단 파주시이동노동자쉼터에 입장했다. 24시간 무인으로 운영하고 있는 파주시이동노동자쉼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패스 앱을 다운받아 QR코드를 찍어야만 한다. ‘미성년자를 임의로 출입시키면 절대 안 됩니다’라는 문구와 CCTV가 눈에 띄었다. 쉼터 안으로 들어가니 냉난방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커다란 TV와 소파, 생수 냉장고, 테이블이 구비돼 있다. 한편에는 혈압측정기도 보였다. 27㎡(약 8평) 규모를 최대한 활용한 동선이었다.

하지만, 점심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무료로 나눠준다는 생수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고, 쓰레기통은 넘칠 듯 꽉 차 있었다.

경기도청 노동권익과 관계자는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시에서 고용한 공공운영인력들이 하루, 이틀꼴로 방문해 청소하고, 소모품 확인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무인으로 출입하는 시스템과 관련해서는 “QR 입력 시 성인인증 시스템을 발급받아 인증할 수 있게 돼 있다”며, “만약 미성년자가 들어가 비행을 저지를 경우 CCTV 관제업체에서 제재한다”고 설명했다.

접근 어렵고 주차 문제로 쉼터 이용 직업군 한정된 곳도 발생

이어 다른 지역의 쉼터로 이동했다. 간이형 쉼터보다 시설 면에서 월등한 거점형 쉼터였지만, 쉼터를 이용하는 이동노동자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 또, 쉼터를 관리하는 상주 관리자의 노동권에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일단, 쉼터를 이용하는 이동노동자의 직업군이 한정돼 있었다. 접근성과 주차 문제 탓이었다. 광명시이동노동자쉼터 관리자는 중기이코노미와의 인터뷰에서 “쉼터 이용자의 대다수는 대리기사”라며, “이전에는 배달노동자들도 왔었지만, 이제 오지 않는다. 포상금을 노리는 파파라치 때문에 배달 라이더들이 5만원에 해당하는 범칙금을 물거나 주의, 경고를 받으니까 올 수가 없다”고 했다.

광명시이동노동자쉼터 전경 ©중기이코노미

광명시이동노동자쉼터는 264㎡ 규모에 안마의자와 각종 취사도구 및 IT 기기들이 들어서 있다. ©중기이코노미

프라이버시를 고려한 전화부스까지 설치돼 있다. ©중기이코노미

철산역의 먹자골목에 위치한 광명시이동노동자쉼터 주변에는 공영주차장이 있지만, 항상 만차 상태다. 설사 이곳에 주차를 하더라도 시에서는 지원해 주지 않는다. 이 관리자에 따르면, 이런 이유로 지난 6월부터 광명시 라이더들이 연합해 돈을 모아 따로 쉼터를 지어 나갔다. 264㎡(약 80평) 규모에 안마의자와 각종 취사도구 및 IT 기기를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주차 문제로 인해 포기한 것이다. 이로 인해 하루에 70명에 달했던 이용자들은 42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주차 시비로 인한 고민이 없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대리기사, 보험설계사, 요양보호사, 프리랜서 강사들은 쉼터 이용에 만족감을 나타냈다.

20년 가까이 대리기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용율(63세) 씨는 중기이코노미에 “추울 때 따뜻하게 콜을 기다릴 수 있어 너무 좋다. 쉼터를 여러 군데 다녀봤지만, 이곳처럼 잘해놓은 곳이 없다”며, “다른 곳은 커피믹스와 물만 있는 곳도 있는데, 이곳은 안마기도 3대나 있고, 화장실도 깨끗하다”며 만족스러워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점도 있다. 쉼터를 관리하는 상주 직원의 계약만료 시점이 3개월로 짧다는 점이다.

광명시이동노동자쉼터 관리자는 “시에서 담당자를 3개월마다 바꾼다. 그러다 보니 이용자들이 또 바뀌었냐며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담당자 역시 관리에 대한 책임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나 역시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처음 이곳에서 일할 때는 계약을 연장해 준다고 하고선 연장해 주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곳을 관리하는 시간대는 총 4타임이 있다. 오전 10시~오후 6시, 오후 2시~밤 10시, 저녁 8시~새벽 4시, 밤 10시~새벽 6시까지인데, 총 4명이 돌아가면서 근무를 선다. 문제는 3주 내내 밤 근무를 해야 한다는 점”이라며, “스케줄을 이렇게 짠 이유에 대해 담당 공무원에게 물었더니 그들의 사이클에 맞췄다고 하더라. 현장 근무자가 피곤한 건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즉, 광명시에서 개인정보 관련 사항과 방문자 응대 등 상주 근로자 교육을 진행하는데, 매주 밤 근무자가 바뀌면 그만큼 교육 담당자의 피로도가 가중된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광명시에 물어봤다. 광명시청 노동권익팀 관계자는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쉼터 관리자 계약은 3개월이고, 일을 잘하면 8개월 연장 계약을 한다. 이렇게 11개월이 총 계약기간이고, 그 이후에는 더 이상 연장이 안 된다”며, “쉼터 근로자 교육은 수시로 나가서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거점형 쉼터를 기본으로 간이형 쉼터 곳곳 설치해 권익 보호해야

현재 경기도는 13곳의 이동노동자 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다. 경기도는 2026년까지 간이 이동노동자 쉼터를 추가로 설치해, 총 32개의 이동노동자 쉼터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일요일과 공휴일은 운영하지 않고, 일정 규모 이상의 거점형 쉼터보다는 비용과 접근성 측면에서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경기도청 노동권익과 관계자는 중기이코노미에 “쉼터가 모든 이동노동자를 만족시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사무실 형태의 거점형 쉼터는 주차공간이 부족해 배달라이더나 택배기사는 사용하기 어렵다. 간이형 쉼터를 늘리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했다. 이어 “시에서도 공영주차장과 붙어있어 어느 정도 주차공간이 확보되고, 대중교통으로도 이용하기 쉬운 곳에 있어 접근성도 더 좋은 곳으로 선정하고 있다”며, “이동노동자 관련 단체나 협회와 논의하는 등 장소 선정에 고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예산에 대한 문제도 거론했다. 이 관계자는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컨테이너형으로 돼 있는 간이형 쉼터에 들어가는 예산은 기본 2000만~4000만원”이라며, “부지비용과 건설비용까지 만만치 않게 비용이 드는 거점형 쉼터는 간이형 쉼터에 비해 최소 몇 배에서 최대 몇십 배까지 든다”고 말했다. 즉, 경기도와 시·군이 1:1 부담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시·군의 예산 상황에 따라 운영비에 차이가 나 쉼터마다 규모나 방식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부천시이동노동자쉼터에서 이동노동자가 커피를 마시고 있다. ©중기이코노미

하지만, 쉼터를 이용하는 노동자와 쉼터 관리자는 간이형 쉼터만 늘리는 방식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부천시이동노동자쉼터에서 만난 박순광 운영실장은 중기이코노미와의 인터뷰에서 “경기도에서 2022년 이후로 간이형 쉼터를 늘리는 방향을 내놓고 있는데, 우리의 생각은 다르다”라며, “간이형 쉼터는 거점형 쉼터를 보조하는 형태로는 유용하지만, 간이형 쉼터만 있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쉼터의 역할을 어떻게 삼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간이형 쉼터를 늘린다는 뜻은 쉼터라는 공간을 이동노동자가 잠깐 머물러서 차 한잔 마시고 가는 그런 곳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다양한 플랫폼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있는데, 다들 근무시간도 노동의 방식도 다르다. 즉, 개별 노동을 하는 이들을 위해 쉼터라는 공간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즉, 쉼터에서 동료를 만나고, 정보를 교환하고, 그들의 권익을 실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부천시이동노동자쉼터는 이런 운영실장의 의견에 따라 이동노동자의 권익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공간 구성과 프로그램을 짰다. 경기도에서 7번째 쉼터인 이곳은 2021년 7월1일 198㎡(약 60평) 규모로 개설했다.

우선, 부천시이동노동자쉼터는 이용자에게 한 시간 주차지원을 해준다. 30분 주차비용이 1500원인 주차타워에 입주해 있는 상황에서는 파격적인 대우다. 여름에는 냉장고에 얼음물 생수로 채워 놓고, 겨울에는 핫팩을 무료로 나눠준다. 인근 병원에서 기증받은 구급함과 마스크, 우산도 사계절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출입문 한편에는 탁송 대리 일을 하는 이동노동자에게 기부받은 ‘외발 전동휠 거치대’가 놓여 있다. 높이나 폭이 각기 다른 전동휠의 특징에 맞게 거치대의 높이와 넓이도 다양하게 준비돼 있다. 또한, 전동휠을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강습도 때때로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쉼터 안쪽으로 들어가면 커피믹스 자판기, 커피머신, 안마의자, 세족기, 신발 살균소독기가 놓여 있고, 경기도 거점형 쉼터의 의무사항인 여성휴게소도 별도로 꾸며져 있다. 이와 함께 한쪽 벽면에는 대리기사를 위한 무료 셔틀 노선·시간표를 비롯해 법률상담, 노무상담, 손해사정상담 및 보자기, 공예, 꽃꽂이 수업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박순광 운영실장에 따르면, 이용자들이 가장 많은 시간대는 새벽 1시~2시, 4시~5시다. 특히 겨울철에 이용자가 가장 많다. 저녁 9시 이후로 방문하는 이동노동자는 80~90명이고, 주간 이용자까지 합하면 100~110명이 하루에 이곳을 이용한다.

박 실장은 “처음에는 한 달 이용자가 100명이었는데, 지금은 하루 이용자가 100명이 넘어가니 꽤 많이 알려진 셈”이라며, “매주 거리로 나가서 직접 배달노동자와 대리기사들을 만나 홍보하는 것을 일차적으로 하고, 이동노동자가 활동하는 온라인 카페 13곳과 오픈채팅방에서 활동하고 있다. 또,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카카오 채널을 만들어 사업홍보도 직접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곳을 이용하는 이동노동자들은 여러 곳에 쉼터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한다고 했다. 박순광 부천시이동노동자쉼터 운영실장은 “현재 부천에 쉼터가 이곳뿐이다. 이 지역은 인천과 경계지역에 있다. 부천역을 중심으로 한 구도심에서는 여기까지 오기 쉽지 않다”며, “구도심 쪽에 쉼터가 설치돼야 한다. 그리고, 거점형 쉼터를 기본으로 간이형 쉼터를 곳곳에 설치해 이동노동자의 권익은 지키면서, 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한 형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