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내면의 성찰…한국적 모더니즘 새 시대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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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인간 내면의 성찰…한국적 모더니즘 새 시대 열다 외롭고 고독했던 1세대 모더니스트 장욱진

기사입력2024-02-25 10:00

김현성 객원 기자 (artbrunch@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가족’, 1973, 캔버스에 유채, 17.9×25.8cm. <사진=갤러리현대>

장욱진은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그의 그림은 대부분 손바닥 크기만큼 작고 소박하기 그지없다. 보통 새벽녘에 등을 활처럼 구부리고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데, 화구도 그림 그리기에 딱 필요한만큼만 쓴다.

작가의 맏딸인 장경수 경운미술관 관장은 “아버지는 늘 외롭고 고독했던 사람”이라고 했다. 가장으로서의 못다한 책임감이 그 이유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가족을 그린 그의 작품에서 작가 자신은 작게, 부인은 가장 크게 그려넣었던 걸까.

장욱진은 1917년 충남 연기군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도쿄의 제국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했고, 해방 직후에는 국립중앙박물관과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장욱진의 작품세계는 초기인 청년기와 중기, 후기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는데 청년기에는 전통적인 한국의 풍경과 인물을 모티브로 사용했다. 특히 ‘공기놀이’와 ‘소녀’ 같은 작품은 당시의 향토색 경향과 연결되어 있다. 유학 시절에는 유럽의 현대미술과 비잔틴, 로마네스크, 이집트, 중동의 고대 미술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가로수’, 1978, 캔버스에 유채, 30×40cm. <사진=갤러리현대>

중기 작품세계를 보여줬던 1950년부터 1974년 기간에는 6.25전쟁과 덕소에서의 생활이 그의 예술에 영향을 미쳤다. 덕소에서 머물던 시기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모색했던 시기로 볼 수 있다. ‘자화상’과 같은 작품에서는 그의 평화롭고 한가로운 심상이 드러나지만 또다른 작품에서는 붓놀림이 더 강렬해졌고 질감도 한층 더 두터워졌으며 추상적인 면구성을 펼쳐보이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전통적인 요소의 현대적 변형을 탐구했던 모더니스트들의 모임인 ‘신사실파’에 참여하기도 했다.

장욱진의 후기 작품세계는 1975년부터 그가 세상을 떠난 1990년까지를 아우른다. 수안보에 머물던 이 시기에 그린 작품들은 수묵화나 산수화가 절정을 이루지만, 실제 작업에서는 현실 풍경이 줄어들고 더 환상적이고 관념적인 경향을 보인다. ‘강변풍경’과 같은 작품에서는 마치 동화 속 세계를 연상시키는 신비롭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후기 작품들은 무(無)에 가까운 생략과 압축이 눈에 띄는데, 인간 내면에 대한 성찰을 통해 한국적 모더니즘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림은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툭툭 튀어나온다. 마음속으로부터.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이 밝은 거울이나 맑은 바다처럼 순수하게 비어 있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잡다한 얼룩과 찌꺼기들이 많다. 기쁨, 슬픔, 욕심, 집념들이 엉겨서 열병(熱病)처럼 끓고 있다. 그것을 하나하나 지워 간다. 다 지워 내고 나면 조그만 마음만 남는다. 어린이의 그것처럼 조그만. 그런 마음이 돼야 붓을 든다(장욱진, 경향화랑, 주간경향, 1979. 10. 7.).” (정리=중기이코노미 객원 예술만세 김현성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