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ELS 불완전판매 책임 투자자에 떠넘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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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홍콩 ELS 불완전판매 책임 투자자에 떠넘기나 금융사 불완전판매 반복…금융당국 대처 이해하기 힘들어

기사입력2024-03-12 14:05

이창호 기자 (xg13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80대의 초고령자 H씨는 은행에서 ELS 상품 5000만원을 가입할 당시 은행의 설명의무 위반 등 불완전판매 사실이 발생했음→ 손실액의 70% 수준 배상 예상”

금융감독원이 11일 발표한 ‘홍콩 H지수 ELS 검사결과(잠정) 및 분쟁조정기준(안)’에 나오는 예시 중 하나다. 분쟁조정기준을 실제 적용했을 경우 금융사가 투자자에게 얼마나 배상하게 되는지 예시를 든 것인데,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투자의 성패는 투자자의 책임이란 점에는 이견이 없겠으나, 금융사의 불완전판매에 대한 책임을 과소하게 책정한 게 아닌지 우려된다. 불완전판매의 재발을 어떻게 막겠다는 것인지 의지를 확인할 수 없다.

홍콩 H지수에 기초한 파생결합증권(ELS)은 5개 은행과 6개 증권사를 모두 합쳐 2023년 12월말 기준으로 잔액이 18.8조원에 달한다. 올해 2월말까지 이미 1.2조원 규모의 손실이 발생했고, 3월부터 6월 사이 3.6조원, 올해 하반기 중 1조원 등 추가로 4.6조원 규모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금감원은 추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손실의 배경에 금융사들의 불완전판매가 있었다는 점이다. 금감원은 H지수 ELS 판매과정에서 “판매사들은 고객 손실위험 확대기에 과도한 영업목표, 부적절한 성과지표 등을 통해 전사적 판매를 독려하면서도 소비자보호를 위한 판매한도 관리, 비예금상품위원회 운영 등에는 소홀해 불완전판매 환경을 조성”했다고 지적했다. 또 본점의 판매시스템 설계 미흡으로 인한 판매규제 위반 및 일선 판매현장의 다양한 불완전판매 사례 등 위법·부당사항이 확인됐다.

불완전판매가 있었으니 투자자 손실에 대해 금융사가 보상하는 것이 당연하고, 금융당국이 서둘러 분쟁조정기준을 만든 것은 마땅한 조치다. 문제는 기준의 적절성이다.

앞선 사례를 자세히 살펴보면, 설명의무 위반에 대해 일괄적으로 기본배상 20%를 정하고, 개별적인 적합성 원칙과 부당권유 금지 원칙 위반(각각 10%p), 가입당시 초고령자(만 80세 이상)인 경우 고령자 보호기준 미준수(15%p)까지 합쳐 70%의 배상비율이 나왔다.

여기서, 고령자가 아니거나 ELS 투자 경험이 있거나, 손실경험이 있거나 가입금액이 5000만원 이상 등의 기준에 해당하면 배상비율이 더 낮아질 수 있다. 예시에는 배상비율이 0%인 경우도 포함됐다.

금감원의 기준대로라면 설명의무 위반에 대한 일괄 기본배상 20%와 내부통제 부실에 따른 공통 가중 10%p는 온전히 금융사의 책임이다. 그런데도, 투자경험이 많은 투자자에게는 배상비율이 30%보다 낮게 적용될 수도 있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설명의무나 내부통제 등 금융사의 책임범위 마저도 투자자에게 떠넘기는 셈이 아니냐는 의문에 금감원이 답해야 한다.

금융회사의 불완전판매로 인한 대규모의 손실 사태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분쟁조정기준 발표 브리핑 모두발언에서 “과거 DLF 및 사모펀드 사태에 이어 또다시 이러한 대규모 투자자 손실사태가 발생한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9년 DLF 사태와 2020년 사모펀드 사태 이후 금융상품 판매와 관련된 소비자보호 규제와 절차도 강화됐다. 2021년 3월부터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시행되기도 했다. 하지만 금감원은 “이러한 소비자보호 장치들이 실제 판매과정에서는 충실히 작동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처럼 소비자보호 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그 책임 중 일부를 투자자에게 떠넘길 수 있는 배상기준안을 마련한 것은 금융당국의 실책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금감원은 배상책임 이외에 금융사의 위법행위에 대한 조치 역시 추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위법행위에 대한 제재는 재발방지 대책과 함께 시행돼야 하겠다. 그런데, 배상책임이 투자자보다 금융사 쪽으로 유리하게 기울었는데, 위법행위에 대한 추후 조치나 재발방지책이 제대로 수립될지 의문이다.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큰 목소리가 헛되이 들리지 않도록 금감원이 시급히 분쟁조정기준을 재검토하고, 금융사에 대한 후속조치에도 속도를 내야한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