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R&D 예산 증액” 이럴 거면 왜 깎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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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내년 R&D 예산 증액” 이럴 거면 왜 깎았을까 이해할 수 없는 갈지자 행보에 연구현장만 상처

기사입력2024-04-10 00:00

이창호 기자 (xg13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R&D다운 R&D로의 개혁에 따른 2025년도 R&D 예산 증액은 윤석열 대통령이 작년부터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밝혀온 정부의 공식입장입니다.”

대통령실은 지난주 해명자료를 통해, 내년도 R&D 예산 증액이 일관된 입장이었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최근 정부가 내년도 R&D 예산 증액을 약속하자, 선거용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진데 따른 반박이다.

하지만 내년도 예산을 늘릴 것이면서, 올해 예산은 도대체 왜 삭감했는지 이유를 여전히 알 수 없다. 정부는 당초 올해 R&D 예산을 지난해보다 5조2000억원 삭감하는 예산안을 내놓았고, 국회가 6000억원을 증액해 최종적으로 4조6000억원의 삭감이 이뤄졌다. 1년새 15%가 줄어든 것이다.

이같은 예산 삭감이 사전에 예고된 바도 아니었다. 지난해 9월 기초과학 학회협의체(기과협)는 소속 기초과학 관련 학회들과 공동으로 발표한 성명에서, R&D 예산 삭감이 “정부의 국정목표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당초 정부가 제시한 국정목표에는 R&D 예산을 정부 총지출의 5% 수준에서 유지한다는 내용이 있었고, 지난해 3월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도 5년간 연구개발 부문에 17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R&D 예산 삭감에 대한 정부의 해명 역시 이번 대통령실의 입장과 앞뒤가 맞지 않다. 지난해 9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당시 과기정통부 1차관은 R&D 예산 삭감이 어느날 갑자기 튀어나온 방침이 아니라 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해온 정책이라 해명하며, “대통령께서 지시하신 내용을 제때 이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내년도 예산 증액도 일관된 입장이고, 올해 예산 삭감도 일관된 입장이라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도통 이해가 안된다.

이같은 정부의 방침에 과학기술계는 크게 동요했다. 지난해 10월 과학기술계 연대회의가 교수, 연구원, 포스트닥터, 대학원생 등 현직 연구원 288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R&D 예산 삭감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응답이 98.1%에 이른다. 또, R&D 예산 삭감으로 인해 국가 과학기술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는 응답이 39.7%에 달했다. 현장 연구원의 사기 저하(26.9%), 연구인력 해외유출 심화(13.8%), 대학 이공계 기피 현상(13.1%)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R&D 예산 삭감은 심지어 미래세대의 행동으로까지 연결됐다. 카이스트와 포스텍, 서울대 등의 학부와 대학원 학생회들이 공동으로 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어서 전국의 8개 과학고와 과학영재고 학생회들이 공동으로 성명서를 내놓기까지 했다. 미래세대들의 요구는 하나같이 과학기술의 미래룰 꿈꿀 수 있도록 뒷받침 해달라, R&D 예산 삭감이 연구현장을 뒤흔들 우려가 있으니 이를 철회해 달라는 것이었다.

연구현장부터 미래세대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 각계의 예산 삭감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은 채 예산 삭감을 강행했다. 그런 와중에 내년도 예산 증액이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라는 대통령실의 입장이 나오니, 과연 무엇이 일관된 입장인지 혼란만 커진다.

R&D 예산 증액의 필요성에 대해서야 두말할 나위가 없다. IMF 외환위기라는 전대미문의 충격에서도 R&D 예산은 삭감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내년도 R&D 예산 증액이 일관된 입장이라면, 정부는 지금이라도 추경예산을 편성해 올해 R&D 예산을 우선 원상회복해야한다. 장시간이 소요되고 실패의 경험 조차 소중한 R&D를 예산 삭감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부터 전면 철회했다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과학기술계의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특단의 행동을 촉구한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