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뽀통령, ‘무민’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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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시장 ㅣ 유럽 핀란드의 뽀통령, ‘무민’을 아시나요 이혜원 기자의 북유럽유랑기 ⑦ 전화 속 예술혼, 국민화가 토베 얀손

기사입력2015-06-10 18:28

이혜원 기자 (dipsy@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하마를 닮은 무민은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트롤을 모델로 했다. <사진=플리커>

한국 어린이들에게 뽀로로가 있다면 핀란드에는 ‘무민’이 있다. 하마를 닮은 무민은 북유럽 신화 속에 등장하는 상상속의 동물, 트롤이다. 트롤은 한국의 도깨비처럼 못된 아이들을 괴롭힌다고 알려져 있지만 무민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 숲과 바다를 다니며 돌이나 조개껍질을 모으는 무민은 모든 일을 낙천적으로 받아들이고 착한 심성을 가진 캐릭터다.

핀란드와 스웨덴에서 무민은 최고의 인기스타다. 무민을 원작으로 한 연극과 오페라도 만들어졌고, 핀란드 난탈리 지역에는 무민 관련 소품들로 꾸민 ‘무민월드’도 있다. 일본에서도 무민에 대한 관심이 높아 후지TV가 이를 기반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고, 도쿄에는 무민을 테마로 한 카페가 있다. 한국도 케이블TV에서 무민 애니메이션을 방영한 바 있지만 자세히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무민을 탄생시킨 주인공은 스웨덴계 핀란드인인 토베 얀손(1914~2001)이다. 이른바 무민의 어머니로 핀란드에서는 국민화가로 꼽힌다. 토베 얀손은 평생 소설과 동화책을 쓰고 삽화와 회화를 그렸다. 내가 핀란드를 찾은 2014년은 토베 얀손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로 핀란드 국립미술관인 아테네움에서 대규모의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를 보기 전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무민’ 두 글자뿐이었지만 꽤 큰 전율을 받고 돌아왔다.

토베 얀손 100주년 기념전시가 열린 헬싱키 아테네움 미술관 내부. ©중기이코노미

헬싱키 아테네움 미술관에서는 미술관 입장권 대신 무민이 그려진 동그란 스티커를 줬다. 기념으로 휴대전화 뒷면에 붙였다. ©중기이코노미

토베 얀손의 작품은 규모 면에서나, 내용 면에서나 의외였다. 어둠이 짙게 깔린 회화 작품들은 아기자기한 동화를 그린 작가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특히 기억에 남는 그림은 침통함에 사로잡힌 가족의 모습을 담은 ‘가족’이다. 한쪽에는 얀손의 어머니가 담배를 피우고, 캔버스 중심에는 검은 옷을 입고 눈을 흘기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전쟁에 나가 생사를 알 수 없는 얀손의 남동생을 걱정하는 마음이 생생하게 담긴 작품이다.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본 그림은 ‘도시의 파티’와 ‘시골의 파티’다. 각각의 작품이 가로로 2미터가 넘는 대작이다. 도시와 시골로 나눠 한 쌍의 그림을 그린 것이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르누아르의 ‘도시의 춤’, ‘시골의 춤’을 연상케 만든다. 도시의 파티를 보면 화려한 무도장에서 춤을 추는 연인들이 있고, 시골의 파티에는 자연을 만끽하는 연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북유럽 신화의 한 장면처럼 몽환적인 분위기다.

얀손은 도시의 파티에도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주변에는 파티에 취한 남녀가 있고, 테이블에 홀로 앉아 담배를 태우는 여성이 바로 토베 얀손이다. 이 그림에서 역시 얀손은 즐겁지 않은 모습이다. 근처에 그려진 조그만 무민 캐릭터가 이 여성이 토베 얀손임을 조용히 귀띔하고 있다.

토베 얀손, 가족, 1942년 작, 개인 소장. <사진=핀란드국립미술관 / Hannu Aaltonen> ©토베 얀손 재단

위가 ‘도시의 파티’, 아래가 ‘시골의 파티’. 1947년 작, 헬싱키미술관 소장. <사진=핀란드국립미술관 / Yehia Eweis> ©토베 얀손 재단

그의 작품에선 어둠이 많이 묻어난다. 한 사람의 인생을 ‘어둡다’는 한 마디로 단정하기는 어렵겠지만 내외적으로 고통이 많았던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얀손이 작품을 활동을 하던 당시 핀란드는 소련과 전쟁 중이었고, 얀손의 남동생은 참전 중이었다. 전쟁은 얀손과 그의 가족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작품에도 자연스럽게 투영됐다는 것이 주변인들의 증언이다.

또 한 가지, 얀손은 동성애자였다. 얀손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삶을 조명한 BBC 보도에 따르면 얀손에게는 기혼자인 동성 연인이 있었다. 당시 핀란드는 동성애가 법적으로 금지돼 있었다. 때문에 얀손은 연인과 자신의 이야기를 무민 동화 속에 풀어냈다. 이후에는 동료 예술가인 툴리키 피에틸라와 연인이 되어 외딴 섬에 집을 짓고 살았다. 그후 무민에는 ‘투티키’라는 새 캐릭터가 등장했다. 툴리키를 모델로 한 것은 물론이다. 지금도 핀란드 무민월드에서는 투티키 분장을 한 여성이 어린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