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과 ‘예술’을 소통하기 위해 TV 방송을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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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예술 ㅣ 예술경영 대중과 ‘예술’을 소통하기 위해 TV 방송을 활용 스펙터클한 사건과 TV 시대 그리고 백남준㊤

기사입력2024-04-12 00:0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 홍익대 초빙교수(‘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2024년 4월은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침몰한 지 10년이 지난 때다. 안산시 단원고의 학생들과 교사들, 그리고 일반인 총 304명이 사망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 사건이 더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거대한 세월호라는 배가 조금씩 뒤집히는 것을 전 국민이 실시간으로 봤고, 뒤집힌 배가 며칠에 걸쳐 서서히 가라앉는 것을 기적이 일어나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모든 국민이 밤낮으로 기도하며 봤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대형 참사를 TV를 통해 실시간으로 봤기 때문에 더 충격이 컸다. 나조차도 그 당시 기억이 생생하다. 온종일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그 며칠간을 도저히 잊을 수 없다.

미국은 2001년 9월에 있었던 9·11 테러에 전 국민이 충격에 휩싸였다. 납치된 항공기가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에 부딪히고 2시간 만에 붕괴하는 모습을 미국 전 국민이 TV를 통해 실시간으로 봤다. 이 사건은 미국인을 충격으로 몰아넣었고,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세계의 분위기는 급속도로 변했다.

방송의 힘은 여기에 있다. 실제 사건을 촬영해 다수 사람에게 그대로 보여줄 수 있다는 것. 매스미디어는 이렇게 힘을 얻게 되었다. 백남준은 매스미디어의 힘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백남준을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 기억하지만, 그의 시각예술은 전자와 전파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는 TV가 지닌 실시간성과 확산성을 최초로 예술과 접목한 매스미디어 아티스트다.

1983년 뉴욕 스튜디오에서의 백남준.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임영균>

존 F. 케네디 암살과 TV 시대

1950년대 미국의 가정에서 TV가 일상에 자리 잡아 갔지만, 가장 폭발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1963년이다. 그해 11월22일에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저격당했고, 그 장면이 TV를 통해 방영되면서 미국 대중은 충격에 휩싸였다. 역사상 최초로 방송된 스펙터클한 사건이었다. 이 방송으로 미국 대중의 감정이 하나로 모이는 현상이 나타났고, 그 당시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촉발한 방송매체의 압도적인 힘을 강하게 느꼈다. 이때부터 방송매체의 문화적인 힘에 관한 관심이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백남준은 1964년 독일에서 미국 뉴욕으로 이주하게 된다. 1963년 말에 있었던 대통령 암살 사건에 대한 충격이 여전히 사회 전반에 깔렸을 때였다. 아마도 이런 분위기를 독일이라는 다른 나라에 있다가 미국에 온 백남준이 훨씬 강렬하게 느꼈을 것이다. 이는 1964년 ‘제2회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서 처음 선보인 그의 작품 ‘로봇 K-456’을 통해서도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때 백남준과 샬럿 무어먼은 함께 ‘로봇 오페라’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백남준이 ‘로봇 K-456’을 조정하며 거리를 활보할 때, 무어먼이 그 옆에서 첼로를 연주하는 퍼포먼스였다. 중요한 것은 라디오 스피커가 부착된 로봇 입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이 재생됐다는 사실이다. 이는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이 백남준에게 큰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백남준, ‘로봇 K-456’, 1964.

그는 1969년 미국 최초의 비디오 아트 텔레비전 프로그램 ‘매체는 매체다’에 동료 작가 6인과 함께 참여한다. 그가 매스미디어로서 TV가 대중을 향한 실시간 소통 매체로서의 가능성이 있음을 직감하고, 대중과 예술을 소통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TV 방송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당시 백남준이 공영방송을 예술 매체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에서 공영방송을 지원하는 체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암살 사건 이후, 방송매체의 문화적 영향력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예술의 제작과 향유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국립예술기금은 텔레비전이 예술을 미국 대중에게 널리 소개하는 데 있어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하고 이를 적극 지원했다.

1967년에 제정된 공영방송법은 공영방송이 교육적·문화적 목적으로 매체를 활용하고, 지역사회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전자 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길 원했다. 록펠러 재단과 포드 재단 같은 민간 부문에서도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제작을 지원하기 위해 공영방송국에 자금을 투입했다. 이러한 법적, 제도적 지원과 민간 재단의 지원금이 문화와 예술적 매체로 공영방송을 활용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매체는 매체다’가 바로 이러한 분위기 속에 제작된 프로그램이다. 이것은 포드 재단의 지원금을 받아 WGBH 방송국 프로듀서들이 제작한 프로그램으로, 백남준의 작업을 포함해 6명의 예술가가 제작한 비디오 아트를 보여줬다. (계속,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홍익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