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생존 대안 “신뢰받는 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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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우린 중기인 소상공인 생존 대안 “신뢰받는 협동조합” 소상공인정책硏 정태인 교수, 생산자·유통업자·소비자 이익

기사입력2014-03-10 00:00

이창호 기자 (xg13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정태인 원장(소상공인정책연구소 자문위원, 성공회대 교수) ©중기이코노미

중소기업청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올해 200개의 신규 협동조합을 포함해 총 400개의 협동조합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진행된 소상공인 협업화 시범사업 결과, 553개 소상공인협동조합이 설립되고 동네빵네협동조합, 피부미용협동조합, 매생이협동조합 등 모범사례가 등장했으며 평균매출이 6.2% 이상 상승했다고도 밝혔다.

정부뿐만 아니라 지자체에서도 소상공인 협동조합 지원방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민주당이 최근 설립한 소상공인정책연구소가 10대 연구과제 중 하나로 소상공인의 협동조합을 제시하기도 했다.

소상공인정책연구소의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하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은 지난해 발간한 저서 ‘협동의 경제학’에서 협동조합과 사회적경제에 대한 이론과 외국의 사례를 소개한 바 있다. 진보성향의 민간 싱크탱크인 새사연을 이끌면서 성공회대 교수이기도 한 정 원장은 지난해 서울시의 ‘사회적경제 5개년 계획’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을 맡아 최근 눈코 뜰새 없이 바쁘지만 자문위원 위촉에는 흔쾌히 응했다. 정 원장은 이에 대해 “소장인 전순옥 의원이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을 만든다고 하니까 당연히 도와드려야죠”라고 말했다.

“협동조합 네트워크 형성, 소비자·생산자 신뢰얻어야”

협동조합은 유럽과 달리 한국에서 그리 친숙한 존재는 아니다. 협동조합을 구성하는 것과 기업 하나를 공동출자로 설립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정 원장은 “한국은 협동조합 4위 국가”라는 수치를 소개했다. 이유는 농·수·축협이라는 거대한 협동조합이 있기 때문이다. 정 원장은 그러나 “농수축협이 협동조합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협동조합 운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논외의 존재”라며 수치와 협동조합 인식 사이의 괴리를 설명했다.

협동조합은 회원들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기업과 비슷하지만, 협동조합의 7원칙을 보면 적지 않은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국제협동조합연맹이 1995년 정한 협동조합 7원칙은 ▲자발적이고 공개적인 조합원 제도 ▲민주적 운영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 ▲자율과 독립 ▲교육, 연수 및 정보제공 ▲협동조합 간의 협동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 등이다.

정 원장은 “자본주의적 기업들은 단기간에 최대 이익을 얻기 위해 여러 가지 이기적 행위를 하겠지만, 협동조합의 정신은 장기적으로 신뢰관계를 유지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협동조합의 기본원리인 1인1표에 따라 조합원들이 조합운영에 참여하고 협동을 통해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점도 지적했다. “민주적으로 의사소통하고 결정한다는 것은 오랜 훈련이 있어야 가능하다. 협동조합을 만들기는 쉬워도 운영하고 확대해나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상공인들의 협동조합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것은 아니다. 한국에는 농업협동조합을 비롯해 다양한 생산자 협동조합이 존재한다. “하나 하나가 기업이면서 협동조합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공동판매, 공동구매, 공동브랜드를 위해 협동조합을 운영한다”며 “이런 경우는 각 제품의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고 한다.

협동조합을 구성하기 좋은 업종은 “자신이 일정한 자산을 갖고 이를 이용해 사업을 하는 경우다”라며 택시조합을 예로 들었다.

소상공인들이 창업 수단으로 이용하는 프랜차이즈 역시 협동조합 구성이 가능한 업종이라고 말했다. 시스템, 관리방침 등 인프라에 해당하는 것을 대리점주들이 사들인다면 프랜차이즈도 협동조합으로 전환될 수 있고, 이 경우 본사 납입금의 부담을 덜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대리운전기사 협동조합도 구성돼 있지만 인프라를 만들지 못해 아직 활동을 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한다. 정 원장은 서울시의 콜센터 등 인프라 일부를 이용할 수 있게 하면 이런 협동조합들이 활동할 수 있는 근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정 원장은 유럽 사례를 들며 “생산자조합과 유통업자조합이 네트워크를 이룰 경우, 예를 들어 농산물처럼 가격변동이 심한 제품의 가격변동폭을 줄일 수 있다. 생산단가가 오를 때 소비자에게 덜 받고, 생산단가가 내릴 때 생산자에게 더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협동조합의 경제가 생산자와 유통업자,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경제 큰 틀에서 사회적기업과 한 방향

최근에는 협동조합과 함께 사회적기업에 대한 관심과 지원도 높아지고 있다. 또 마을기업 설립에 대한 지원도 늘어난다. 다양한 지원들이 늘어나면서 소상공인들에게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지만, 용어가 난립해 차이점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서울시는 협동조합 상담센터를 운영하며 관련교육을 진행하는 등 협동조합 설립과 운영을 지원하고 있다.<사진=서울시>

정 원장은 “한국에는 안전행정부가 지원하는 마을기업, 고용노동부가 지원하는 사회적기업, 보건복지부가 지원하는 자활기업 그리고 협동조합까지 네 가지 유형이 있는데 속성은 크게 봐서 사회적경제의 범주에 든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적기업육성법에 있는 ‘사회적 목표와 경제적 목표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취지의 규정과 협동조합 7원칙 중 일곱 번째인 ‘공동체에 대한 기여’는 같은 방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협동조합이든 사회적기업이든 적합한 유형을 찾아 협동을 하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고 정 원장은 강조했다.

하지만 소상공인들이 협동조합을 구성한다고 해서 골목상권까지 파고든 대형마트 등 대기업 공세를 이겨낼 수 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정 원장은 소상공인 관련 정책과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민주화”라면서도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입을 막는다고 해서 주민들이 소상공인의 가게를 찾고 물건을 사는 것은 아니다. 자체적으로 매력있는 곳이 돼야 하는데 그런 방법이 협동조합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의 경우 유통시장에 협동조합 상점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어 굳이 대형마트의 진입을 막지 않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정 원장은 협동조합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신뢰”라며 “제품의 질이나 서비스가 소비자들이 믿을만하게 만들어진다면 자본력으로 그걸 깨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는 협동조합 형태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제품의 질이나 서비스의 질을 보장해 소비자의 신뢰를 얻고 생산자와의 신뢰를 맺으면 그것이 사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유통분야뿐만 아니라 건설산업 역시 협동조합 가능성이 많은 분야라며 정 원장은 유럽의 거대 건설협동조합인 이탈리아의 CCC를 예로 들었다. CCC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해외건설도 수주하는 대형업체지만 소자본을 가진 건설업자들이 수평적으로 모인 협동조합이다. 하나의 건물을 지을 때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하도급 형태로 참여하는 건설산업에서 협동조합이 도입될 경우 복잡한 하도급과 재하청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이 없어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여러모로 장점이 있는 협동조합을 확산시키기 위해 “정부는 직접 보조금을 일괄적으로 주는 것보다 사회적금융을 지원하고 사회적금융이 개별 협동조합이나 프로젝트를 지원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정 원장은 제언했다. 특히 “협동조합간 네트워크형성을 지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신뢰는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고 무너질 때는 빨리 무너진다”며 속도전을 벌이는 것보다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