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버린 생산일보…“희망 내려놓기엔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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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중기 ㅣ 지금 중기에선 멈춰버린 생산일보…“희망 내려놓기엔 아직” “경협 사명감” 의류업체 법인장 “대체부지 구하지만 재가동 믿음”

기사입력2016-04-11 00:00

[개성공단 입주기업 피해실태⑥]사무실 한 쪽 벽면에 있는 ‘일별 생산실적판’은 2월5일을 끝으로 비어있다. 그날 그날의 생산계획과 생산인력 등을 기록해 두는 ‘생산일보’다. 5일은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이었다. 명절 휴일이 끝나면 11일부터 다시 조업을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전날인 10일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전면 가동중단 조치를 발표했다.

‘일별 생산실적판’이 설 연휴 직전인 2월5일을 끝으로 비어있다. 설 연휴 마지막날인 2월10일 우리 정부는 개성공단 전면 가동중단 조치를 발표했다. ©중기이코노미

A기업 최연식 개성공단 법인장은 “마른 하늘에 이런 날벼락도 없을 것”이라며 비통해 했다. 최 법인장은 “한동안 잠을 못 잤다. 눈을 감으면 북측 근로자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른다”고 했다. 그에게서 개성공단은 ‘정지된 화면’ 마냥 멈춰있다.

◇봉인된 제품·원부자재 쓸모없게 돼버려=이 업체는 슈페리어·형지엘리트·코오롱FnC·세정 등 유명 의류패션기업에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납품하고 있다. 지난 2007년 11월 개성공단에 입주한 이후 대북사업에만 100% 전념했다. 5940㎡ 부지에 3층 건물을 지어 700여명의 북측 근로자들을 고용할 만큼 꽤 큰 규모다. 미싱 등 기계장치류만 600대에 달했다.

북측 근로자들이 개성공단서 일하고 있을 당시 모습<사진=A업체>

하지만 더 이상 개성공단에서 생산할 수가 없게 됐다. 피해규모만도 대략 100억원대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개성공단에 남겨둔 10만여장에 달하는 완제품과 원·부자재 등은 ‘봉인’돼 있다. 사실상 쓸모없게 돼 버린 셈이다.

게다가 회사는 2개월 가까이 아무런 생산을 할 수가 없어, 개성공단 주재원 6명을 포함해 직원 16명을 권고사직할 수 밖에 없었다. 더 이상 버텨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최 법인장은 “지난 2013년 개성공단이 6개월동안 중단될 당시에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졌다”며 “당시 직원들 모두 도시락을 먹으며 극복해 냈지만, 지금은 그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개성공단서 8년간 일했다는 A업체 최연식 개성공단 법인장 ©중기이코노미

◇“한민족 동질감…개성공단은 희망의 땅”=최 법인장은 젊은 시절부터 의류업종 한 길만 걸어온 장인이다. 개성공단에 입주할 당시부터 줄곧 개성에서 머물렀다.

“월요일 아침에 개성에 입경하면 토요일 오후에 출경한다. 그동안 개성공단내 사택에서 지냈다”면서 “주말때만 가족들과 만날 수 있지만, 뭔가 남북한간 경제협력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사명감때문인지 가족들도 응원해 주곤 했다”고 말했다.

그 또한 북한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그는 “처음에 우리만의 경영방식을 적용하는데 마찰이 없진 않았다”면서 “마음의 문을 열고 대화를 하면서 하나둘 양보하고 맞춰가는 과정을 통해 가슴 한쪽에서 한민족의 동질감같은 걸 느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한번은 새벽 2시까지 철야작업을 하면서 묵묵히 일을 하는 북측 근로자들의 성실함에 감명을 받기도 했다.

8년동안 개성공단에서 살다시피한 그는 “값싼 노동력과 물류비용 등을 고려할 때, 개성공단만큼 경쟁력있는 곳은 드물다”며 “돈을 벌기 위해 (개성공단에) 들어갔지만,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그것이 통일의 초석이든, 남북경협 모델이든, 그 무엇으로 부르든 ‘희망의 땅’임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