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임금개편 매뉴얼’ 노사갈등 부추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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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정보 ㅣ 인사노무 정부 ‘임금개편 매뉴얼’ 노사갈등 부추기나 20년전과 차이없어…연봉제 실패원인 등 빠져 실효성 의문

기사입력2014-03-26 06:00

“정부는 연공서열에 따른 현행임금체계를 전면 개편해 노동자의 직무능력에 따라 임금을 차등 지급하는 직무직능급 제도를 내년부터 도입해 실시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기본급과는 별도로 지급하고 있지만 사실상 기본급화되어 있는 상여금에 대해서도 이를 노동자 개인의 직무능력과 생산실적 등과 연계시켜 지급하기로 하는 한편, 호봉승급 역시 직무에서의 업적을 고려해 차등화하기로 했다”

이상의 내용은 지난 20일 고용노동부가 발간·배포한 ‘합리적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에 관한 기사가 아니다. 1993년 6월 한겨레 신문이 보도한 정부의 임금결정체계 개선방안에 관한 기사다.

20년 전 정부의 임금체계 개편안에 관한 기사지만 지난주 고용노동부가 매뉴얼에 담은 내용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새로 발표된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보면, 그동안 임금체계를 개편하고자 한 시도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이유에 대한 분석이나 구체적인 실행방안도 찾아볼 수 없어 실효성이 우려된다.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자료=고용노동부>

20년전부터 성과급 강조…개편 필요성만 강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한국의 지배적인 임금체계는 근속에 따라 임금이 정기 상승하는 연공급이며, 근로자간의 근속기간에 따른 임금격차는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높은 수준이다. 100인 이상 사업체의 71.9%가 연공급제를 운영하고 있는데, 100인 미만 기업이 36.0%인 반면 300인 이상은 79.6%로 기업규모가 클수록 도입 비율이 높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연공급제가 “60세 정년제 및 고령화 추세와 맞지 않는 한계를 안고 있으며”, “중장년 인력 고용에 부담을 느낀 기업은 희망퇴직 등의 형태로 조기퇴직을 실시하는 등 중장년의 고용불안정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기업에선 연공급에 따른 인건비 증가를 우려해 청년들의 신규채용을 주저하고, 정규직으로 채용할 인력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등 일자리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매뉴얼에는 임금체계 개편 방향으로 ▲기본급을 중심으로 임금 구성항목을 단순화 ▲임금결정기준으로서 기존 연공급(호봉제)의 연공성 완화, 대안으로서 직무급·직능급 등의 도입 ▲성과와 연동된 상여금 또는 성과급 비중의 확대 등이 제시됐다.

이같은 방안은 20년전 정부가 추진하던 내용과 큰 차이가 없다. 무엇보다 이같은 임금체계 개편이 이전에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분석을 찾아볼 수 없다.

임금체계 복잡해진 원인 언급없고 성과평가비용 고려안 해

매뉴얼에 따르면 연봉제를 도입한 기업 비율은 97년 3.6%에서 2013년 66.2%로 크게 확대됐으나 “무늬만 연봉제인 사례가 많다”고 한다. 임금에 차등이 없거나 관리자급에만 적용하는 경우를 무늬만 연봉제인 예시로 소개했다.

매뉴얼은 “그간 기업들은 임금이 자동 상승하는 기본급 비율을 낮추는 대신 수당 신설, 상여금 인상, 각종 부가급 등을 통해 임기응변적으로 대응해 왔다”면서 임금체계가 복잡해진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기업 현장에서 성과급 체계를 도입하기 힘든 이유나 각종 수당을 신설한 이유에 대해 분석하지 않은 채 임금체계 개편의 필요성만 강변했을 따름이다.

특히 개편한 임금체계를 운영하는데도 비용이 든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문제점으로 볼 수 있다.

직능급 혹은 직무급 임금체계를 도입하고 성과급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근로자에 대한 평가체제를 개발해야 하며, 매번 임금을 줄 때마다 평가체계를 이용해 임금을 산정해야 한다. 생산직과 영업직, 일반사무직 등 직종에 따라 평가체계가 상이해야 하는데, 명확한 평가치를 얻기 힘든 직종들이 있다는 점이나 평가체계 자체를 운영하는데 비용이 든다는 점 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이번 매뉴얼은 결국 기업현장에서 노사간 신뢰만 해칠 가능성도 엿보인다. 이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비판하고 나섰다.

양대노총 “노사신뢰 해치는”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 비판

한국노총은 지난 19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지금의 복잡한 임금체계는 과거 정부의 임금억제 정책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정부의 임금억제 정책으로 인해 사용자는 기본급을 올리는 대신 각종 수당을 신설했고, 적은 할증급을 지급해 왔다. 그 결과, 자연스레 각종 수당이 생겨나 복잡한 임금체계가 생겼으며 노동자들은 장시간노동에 시달렸다”며 “노사의 생각과 동떨어진 임금체계 개악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노사의 문제는 노사가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는 개입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역시 같은 날 성명서를 통해 “지금까지 연공급적 임금체계는 근속이 높은 노동자들에게 좋은 대우를 해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기업에게 가장 유리한 체계였기 때문에 시행되고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성과급의 비중을 늘리라는 매뉴얼의 조언에 대해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임이 확정되자 이를 회피하기 위한 방안으로 보인다. 즉 상여금의 성격을 부정기적이고 비고정적으로 만들어 아예 통상임금에서 빼버리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고용노동부는 학계·연구기관들의 관련 조사·연구 및 토론을 지원하고, 노사단체·주요기업 실무자 및 전문가 등이 함께 참여하는 포럼 등을 운영해 임금체계 개편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지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라는 점을 알고서도 매뉴얼 발표를 서둘렀어야 했는지, 매뉴얼이 임단협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올 여름이 지나면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