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노사 합의없는 성과상여금 도입은 무효’

프린트

상생파트너 ㅣ 대기업·공기업 대법 ‘노사 합의없는 성과상여금 도입은 무효’ 은행 성과연봉제 도입 가이드라인…은행연합회 조급증 아쉽다

기사입력2016-07-22 14:15

박현진 기자 (kpla123@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금융노사가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은행연합회가 21일 ‘민간은행 성과연봉제 도입 가이드라인’를 공개했다. 이에 앞서 지난 19일 금융노조는 9월 총파업을 위한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 95.7%가 찬성해 파업방침을 선언했다. 금융노조는 지난달 24일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조정중지 결정도 받았다. 합법적인 파업 요건을 충족한 것이다.

금융노사 쟁점 중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점이 성과연봉제다. 성과연봉제 내용 자체는 근로조건이기 때문에 단체협약이든 취업규칙 변경을 통해 도입하는 것이 원칙이다. 금융권이 성과연봉제를 적법하게 도입하기 위해서는 금융노사의 합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금융노사 모두 물러설 여지를 보이지 않고 강대강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판례는 성과상여금 사건이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노사합의 없는 성과상여금제 도입은 무효라는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 다른 쟁점도 있지만 여기서 취급하고자 하는 쟁점은 취업규칙인 ‘간부사원 급여체계’ 변경을 통해 도입한 성과상여금제의 적법성이다.

은행연합회가 21일 ‘민간은행 성과연봉제 도입 가이드라인’를 공개했다. 앞서 지난 19일 금융노조는 9월 총파업을 위한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 95.7%가 찬성해 파업방침을 선언했다. ©중기이코노미

사실관계

롯데호텔(피고)은 2007년 5월경 일률적으로 지급했던 기본급의 800%인 정기상여금을 근로자들의 동의없이 성과에 따라 차등을 두는 성과상여금제를 도입·시행했다. 일부 근로자들(4명의 원고)이 소송을 제기했고, 1심과 2심에서 근로자들이 패했지만 대법원은 근로자들의 손을 들었다.

원고들의 주장과 피고의 항변

원고들의 주장은 이렇다. 성과상여금제로의 변경은 근로조건에 대한 불이익 변경이다. 취업규칙상 불이익한 변경이 유효하려면 근로자의 집단적 의사결정방법에 의한 동의가 필요한데, 동의가 없었으니 무효다. 반면 유효를 주장한 피고들의 주장에 따르면 근로조건의 불이익한 변경에 해당되더라도 간부사원들 과반수 동의를 받았으므로 유효하다. 또 과반수 동의가 없었다 하더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어 유효하다”고 항변했다.

원심(서울고법 2012. 4. 13. 선고 2010나87995)과 1심(서울지법 2010. 8. 26. 선고 2009가합62559)은 판결이유가 좀 다르지만 결론은 같았다. 성과상여금제로의 변경이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것인지 여부에 대해 서울고법은 ‘불이익하다’고 판단했다. 성과상여금 도입으로 인사고과가 저조한 일부 간부사원은 100~200%의 상여금이 감소된 것을 이유로 제시했다. 상여금이 감소된 간부사원은 다수가 아니라 ‘일부’임에도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것으로 판단했다.

성과상여금 도입 과정에서 근로자들의 집단적 동의가 존재했는가 역시 문제가 됐다. 서울고법은 동의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피고는 간부사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와 함께 동의서를 받았다고 주장했고, 실제 그랬다. 그러나 서울고법은 간부대상 설명회와 동의가 근로기준법에서 요구하는 집단적 동의절차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법은 “간부사원 급여체계 변경안에 의해 비록 간부사원만이 직접적인 불이익을 받더라도 장래에는 나머지 3 내지 5급사원에게도 변경된 간부사원 급여체계 변경안의 적용이 예상되므로, 간부사원 급여체계 변경안에 대하여는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나 전체 일반직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가 필요함에도 피고는 이러한 동의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근로조건 불이익 변경’ 그리고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절차 부재’라는 근로자의 주장은 인용됐다. 그럼에도 1, 2심에서 근로자가 패소했다. 이유는 피고가 성과상여금을 도입한 것에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는 것이다. 서울고법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존재한다고 제시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①피고의 2007년도 당기순손실이 434억2991만2350원에 이르는 등 재무상 위험이 있었다는 점 ②경영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상여금 중 일부를 업무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했다는 점 ③일부 나태한 직원들에게는 경종을 울리고 성과가 좋은 직원들에게는 그에 상응한 보상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 ④성과상여금 도입에 관한 사전 설명회를 개최했다는 점 ⑤전체 간부사원들에게 지급되는 상여금 총액은 성과상여금 시행에도 불구하고 감소되지 않았고, 오히려 일부 증가했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문언상 근로조건 불이익이 분명하다면 문언 이외 사정 등을 근거로 한 사회 통념상 합리성을 인정해서는 안된다고 판단했다.<자료=비자트>

서울고법의 결론은 ‘근로조건 불이익 변경’이 존재했고,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절차’도 없었다는 점은 ‘위법’하지만, 성과상여금 도입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어 적법하다는 것이다.

대법원(2015. 8.13. 선고 2012다43522)의 최종결론

대법원은 서울고법과 다른 결론을 냈다. 대법원이 집중적으로 심리한 부분은 ‘사회통념상 합리성’ 존재 여부였다.

대법원은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려면 실질적으로는 근로자에게 불리하지 아니하는 등 근로자를 보호하려는 근로기준법의 입법취지에 어긋나지 않아야 하므로, 여기에서 말하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의 유무는 ▲취업규칙의 변경 전후를 비교하여 취업규칙의 변경내용 자체로 인하여 근로자가 입게 되는 불이익의 정도 ▲사용자 측의 변경 필요성의 내용과 정도 ▲변경 후의 취업규칙 내용의 상당성 ▲대상(代償) 조치 등을 포함한 다른 근로조건의 개선상황 ▲취업규칙 변경에 따라 발생할 경쟁력 강화 등 사용자측의 이익 증대 또는 손실감소를 장기적으로 근로자들도 함께 향유할 수 있는지에 관한 해당 기업의 경영행태 ▲노동조합 등과의 교섭경위 및 노동조합이나 다른 근로자의 대응 ▲동종 사항에 관한 국내의 일반적인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는 기존 법리를 제시했다.

이어 대법원은 근로조건 불이익 변경시 근로자의 동의를 요건으로 하는 근로기준법 제94조 입법취지에 비춰 “변경 전후의 문언을 기준으로 하여 취업규칙이 근로자에게 불이익하게 변경되었음이 명백하다면, 취업규칙의 내용 이외의 사정이나 상황을 근거로 하여 그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보는 것은, 이를 제한적으로 엄격하게 해석·적용하여야 한다(대법원 2010. 1. 28. 선고 2009다32362 판결 등 참조)”고 밝혔다. 문언상 근로조건 불이익이 분명하다면 문언 이외 사정 등을 근거로 한 사회 통념상 합리성을 인정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불이익이 분명하다면 ‘사회통념상 합리성’ 제한 적용

‘사회통념상의 합리성’에 대한 대법원의 제한적이고 엄격한 해석·적용은 판결이유에 잘 나타났다. 판결이유에서 대법원은 “취업규칙 개정의 필요성과 정도가 긴박하거나 중대하였다고 인정할만한 객관적인 자료도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피고가 제시한 2007년 434억원 이상의 당기순손실도 근로자의 동의가 필요치 않을 정도로 긴박하거나 중대하다고 보지 않았다. 또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절차에 대한 2심의 결론과 같은 이유를 들어 이 사건 성과상여금제 도입에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금융권에 성과연봉제가 도입될 수 있을지 아직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노동조합이 반대하는 한 법리적인 측면만 고려한다면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그리고 성과연봉제는 성과가 높은 직원에게 그에 맞는 보상을, 성과가 낮은 직원에게는 개선의 기회를 주어 조직 전체의 성과를 크게 하고자 하는 수단이다. 억지수단을 조직에 도입한들 그것이 제대로 굴러갈리 없다는 점에서 은행연합회의 조급증은 좀 아쉽다.